
2026년 4월12일 치른 헝가리 총선 개표 결과 신생 정당인 티서가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피데스를 압도적으로 꺾고 승리하자 수도 부다페스트의 거리로 수많은 시민이 나와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선거 결과 인종차별주의자, 파시스트, 그리고 평화와 재통합에 반대하는 분리독립주의자들이 대거 당선된다면 어떨까? 바로 그게 딜레마다.”
미국 언론인 겸 국제정치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1997년 11월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1996년 9월14일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 하루 전날, 미국 외교관 리처드 홀브룩이 한 말을 인용했다. 홀브룩은 3년7개월여에 걸친 보스니아 전쟁을 끝낸 데이턴협정(1995년 12월)을 중재한 당사자다. 자카리아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이 딜레마는 옛 유고슬라비아에 국한된 게 아닌 세계적 현상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이 일상적으로 헌법적 제한을 무시해 권력을 남용하고, 시민의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정권은 선거를 통해 재집권하는 경우도 많다. 페루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까지, 시에라리온에서 슬로바키아까지, 파키스탄에서 필리핀까지 불길한 현상이 번지고 있다. 바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지금도 지구촌 도처에서 발견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2000년 3월 처음 집권한 푸틴 대통령은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2008년 5월 자신의 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긴다. 메드베데프 정권 4년 동안 스스로 총리가 돼 전권을 휘두른 푸틴 대통령은 2012년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다시 연임 제한에 걸린 2000년엔 아예 개헌에 나섰다. 찬성 약 78%로 압도적으로 통과된 새 헌법을 통해 기존 재임 기간은 백지화됐다.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늘고, 3연임까지 가능하게 됐다. 1952년생인 푸틴 대통령은 84살이 되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1922~1952년 집권한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보다 6년 많은, 무려 36년을 집권할 수 있게 된 게다.

2026년 4월12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투표를 마친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제2의 푸틴’을 꿈꿨을까? 그는 개혁 성향의 20대 청년 변호사 시절인 1988년 3월 공산주의청년단에 맞서 ‘청년민주동맹’(피데스) 창당을 주도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다. 자유로운 선거와 소련군 철수는 당시 피데스의 양대 구호였다. 냉전의 끝자락이었다. 헝가리 정치권도 급격히 달라졌다. 일당 독재는 다당제 민주주의로 바뀌었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행했다. 국영기업 민영화는 고용·노동시장에 충격파를 던졌다. 사회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해졌다.
1990년 3월 헝가리 주둔 소련군이 철수를 시작했다. 한 달 뒤 다당제 도입 뒤 첫 총선이 치러졌다. 신생 피데스는 전체 386석 가운데 22석을 차지하며, 일약 원내 5당으로 떠올랐다. 오르반은 원내총무를 거쳐 1993년 4월 당대표에 올랐다. 이후 집단지도체제를 기반으로 한 급진적 자유주의 청년단체였던 피데스는 중도우파 대중정당으로 변신했다. 이에 반발한 창당 주도 세력 일부가 탈당했다.
내분 속에 치러진 1994년 5월 총선에서 피데스는 20석을 얻는 데 그쳤다. 1998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오르반은 중도우파 정당 연대체인 ‘헝가리민주포럼’을 꾸리고 선거 연대를 추진했다. 개표 결과 피데스는 148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오르반은 중도우파 연립정권을 구성해 첫 집권에 성공했다. 그의 나이 35살 때다.
집권 직후부터 오르반 총리는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회 회기를 제한하거나,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에서 단순 과반으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대표적 사례다. 야권의 반발이 거세졌다. 오르반 총리 측근의 비리 사건까지 터지면서 연정 내부에서도 불만이 쌓여갔다. 반면 집권 이전 15%까지 치솟았던 물가인상률은 7%대까지 낮췄고, 경제성장률도 3~5%대를 꾸준히 유지했다. 1999년 3월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으로 안보를 다지기도 했다. 2002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188석까지 의석을 늘렸다. 하지만 과반 의석 확보엔 실패해 10석 적은 사회주의당 주도 좌파연정에 정권을 내줬다.
8년을 야권에서 보낸 오르반 총리는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가 절반을 훌쩍 넘는 263석을 차지하며 권좌에 복귀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회주의당 주도 좌파연정의 무능력이 압승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재집권한 오르반 총리는 곧바로 개헌에 착수했다. 새 헌법은 전통적 가치와 민족주의, 기독교 정신을 강조했다. 결선투표제는 폐지됐고, 의회 의석수는 기존 386석에서 199석으로 축소됐다. 대외정책도 대폭 수정했다. 한때 ‘소련군 철수’를 외쳤던 오르반 총리는 러시아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의 자금지원을 받은 뒤 러시아 기업이 헝가리에 핵발전소를 건설한 게 대표적 사례다.
2014년 4월 총선에서 피데스는 전체 199석 가운데 133석을 얻었다. 오르반 총리는 거칠 게 없어 보였다. 그해 7월 루마니아를 방문한 그는 현지 대학생 행사에 참석해 자신의 정치 이념을 담은 연설을 내놨다. 당시 연설에서 그는 2008년 금융위기를 “두 차례 세계대전과 소련 붕괴에 견줄 만한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어 ‘새로운 공동체’ 건설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유주의적 도그마와 서구 중심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러시아, 반유럽을 기치로 내건 오르반 총리식 ‘비자유주의’ 선언이자, 이후 강화될 △반이민 △사법부 독립 유린 △언론·시민사회·성소수자 탄압 등 권위주의적 억압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유럽 극우 진영의 구심점이자 유럽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피데스는 2018년, 2022년 총선에서 내리 승리했다.

2026년 4월12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총선 투표를 마친 신생 정당 티서의 머저르 페테르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REUTERS
2026년 4월12일 다시 헝가리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피데스 소속 의원으로 활동하다 2024년 탈당한 머저르 페테르가 창당한 티서(존중과 자유당)는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에서 줄곧 피데스를 먼발치에서 앞서 나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 막판 제이디 밴스 부통령까지 급파해 오르반 총리의 유세를 지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르반 정권의 ‘비자유주의’에 지친 유권자가 대거 투표장으로 향했다. 2022년 약 69%를 기록했던 투표율은 사상 최고치인 79%를 넘어섰다. 피데스는 기존 135석에서 79석을 잃은 5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신생정당 티서는 무려 137석을 얻어 압도적 다수당이 됐다. 부다페스트의 거리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오르반 총리는 개표 중반 일찌감치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다만 그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자유주의’란 유령이 지구촌 곳곳을 배회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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