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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이란, 핏빛 소식만

시위 18일차 사망자만 2615명, 체포 시위대 1만8천 명 넘어… 전문가 “트럼프의 무책임한 선동이 ‘무자비한 시위 탄압’ 배후”
등록 2026-01-15 22:28 수정 2026-01-16 12:21
2026년 1월8일 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6년 1월8일 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란은 철저히 고립됐다. 바깥세상과 연결된 모든 통로가 막혔다. 그나마 전해지는 소식은 온통 살풍경이다. 이란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가?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가 그랜드 바자르(시장)에서 첫 시위가 벌어진 건 2025년 12월28일이다. 미국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밀가루와 조리용 기름, 의약품 등 수입에 의존하는 생필품 가격이 폭등한 터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바자르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점포와 사무실 문을 닫아걸고 거리로 나섰다. 첫날 시위는 평화롭게 끝났다.

환율 폭락과 생필품 가격 폭등으로 시위 ‘폭발’

이튿날인 12월29일 모하마드 레자 파르진 이란중앙은행(CBI) 총재가 전격 사임했다. 2022년 12월 파르진 총재 취임 당시 환율은 달러당 43만리알이었다. 그가 사임한 날 리알화 가치는 달러당 142만리알까지 폭락한 상태였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들은 이란 정부 통계를 따 “2025년 이란에서 식료품 가격은 72%, 의약품 가격은 50% 치솟았다”고 전했다. 이날도 시위는 이어졌다.

1979년 1월 부패한 친미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혁명의 도화선도 바자르였다.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이란에선 대규모 시위가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2009년 6월 대통령 선거 당시 부정선거 논란 속에 개혁파인 미르호세인 무사비 후보가 참패하자, 그의 상징색인 ‘초록’의 물결이 온 나라 거리에서 출렁였다. 2022년 9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수감됐던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살)가 사흘 만에 숨지자 분노한 시민들이 다시 거리를 가득 메웠다. ‘히잡 시위’는 2024년 7월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2026년 1월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엔겔라브 광장에 ‘이란은 우리의 조국’이라 적힌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EPA 연합뉴스

2026년 1월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엔겔라브 광장에 ‘이란은 우리의 조국’이라 적힌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EPA 연합뉴스


“시위대의 합법적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2025년 12월30일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이렇게 밝혔다. 그는 “국민의 삶이 곧 국정이다. 통화·금융체계를 정비하고, 소비자가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바자르에서 시작된 시위는 대학가를 거쳐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다. 파르스 통신 등 관영매체들이 “시위의 정치화”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시위가 닷새째로 접어든 2026년 1월1일 첫 사망자 발생 소식이 전해졌다. 전날 밤 시위대와 진압경찰 간 충돌 과정에서 21살 청년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국은 숨진 청년이 “진압경찰의 일원”이라고 발표했다. 시위대 쪽은 “함께 시위하던 청년이 희생됐다”고 반박했다. 상황이 격해지고 있었다. 이날 이란 남서부를 방문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현지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신께서 성서 쿠란을 통해 명하셨다. 국민이 직면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침묵하던 아야톨라 왜 탄압 나섰나

“이란 당국이 늘 그랬듯 평화적 시위대를 총을 쏴 죽인다면 미국이 그들을 구출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월2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침묵하던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월3일 첫 공식 반응을 내놨다. 그는 국영방송을 통해 “시위대와는 대화해야 하지만, 폭도와 대화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폭도가 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나섰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영향력을 잃었다. 1월8일 이란 정부는 인터넷과 전화를 차단했다. 고립된 이란에서 핏빛 소식이 줄을 이었다.

앞서 2025년 6월13일 새벽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는 이란의 핵시설, 군사기지, 사회기반시설, 민간인 주거지역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다. 이란도 반격에 나섰지만, 이스라엘 쪽에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6월21일엔 미국도 가담했다. 미군 폭격기가 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 지역 이란의 3대 핵시설에 벙커버스터를 투하했다. 이에 맞서 이란군은 6월23일 카타르 도하 외곽의 알우데이드 미군 공군기지로 탄도미사일 14발을 발사했다. 이란은 미국 쪽에 발사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 미국 쪽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쟁은 개전 12일째를 맞은 6월24일 끝났다. ‘12일 전쟁’으로 한때 중동을 호령하던 이란이 얼마나 취약해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2026년 1월1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관제 시위 참석자들이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2026년 1월1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관제 시위 참석자들이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무능력과 부패, 치명적인 경제제재가 맞물려 이란 경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만성적인 물가 인상과 실업률 상승, 중산층 붕괴와 빈곤층 확대가 이어졌다. ‘12일 전쟁’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전쟁 이후 6개월 동안 리알화 가치는 40% 이상 급락했고, 물가는 60% 가까이 급등했다. 폭격으로 핵프로그램이 취약해져, 제재 해제를 위한 이란의 협상력도 약해졌다. 자본 이탈이 뒤를 이었다. 이란 정부 입장에서 보면, 시위대가 거리로 나서게 한 경제적 어려움은 외세의 위협과 긴밀히 맞물려 있는 셈이다.”

이란 전문가인 발리 나스르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중동학)는 2026년 1월9일 논평 전문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짚었다. 이란은 아직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전쟁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 ‘12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쪽은 이란 국민에게 ‘봉기’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1월13일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시위를 지속하라. 정부기관을 점령하라”고 부추겼다. 나스르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란의 경제적 어려움 외세 위협과 긴밀히 맞물려”

“‘아랍의 봄’ 당시 리비아와 시리아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는 시위대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반정부 시위는 빠르게 외국군이 주도하는 정권교체 추진으로 변질됐고, 결국 내전과 국가 자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란 혁명수비대 병력의 상당수는 시리아 내전 참전자다. 그들은 평화적인 시위가 외부 세력의 지원 속에 얼마나 빠르게 내전으로 휩쓸릴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리비아와 시리아 같은 운명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번 시위 사태 탄압의 배후란 뜻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 인권활동가 집단이 펴내는 ‘인권활동가통신’(HRANA)은 2025년 12월28일 첫 시위 발생 이후 이란 내부 활동가들이 보낸 자료를 토대로 일간 단위로 상황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시위 18일째를 맞은 1월14일 이 매체가 전한 현지 상황을 들어보자. “지난 18일 동안 이란 전역 187개 지역에서 모두 617차례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모두 26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체포된 시위대는 적어도 1만8470명에 이른다.”

사실로 확인되면, 이슬람공화국 역사상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될 터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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