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베이징으로 급파된 가나이 마사아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왼쪽)이 2025년 11월18일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시아 국장과 회담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대만 문제를 두고 중-일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중국의 예상 밖 거친 대응에 일본 쪽은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직후인 2017년부터 한국이 경험한 이른바 ‘한한령’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내용을 따져보자.
2025년 11월7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가 열렸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중국이 대만을 해상 봉쇄할 경우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며, 이른바 ‘대만 유사(전쟁이나 재해 등 긴급상황)’에 대한 과거 발언을 따져 물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해상 봉쇄를 풀기 위해 미군이 오면 이를 막기 위해 (중국이) 무력을 행사하는 사태도 가정할 수 있다. (중국이) 전함을 사용해 무력행사한다면,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존립 위기 사태’는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전제다.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주변국 사태 등으로 일본 영토와 국민에게 심각한 위협이 생기면 이에 공동 대응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무력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한다”고 선언하고, 군대 보유와 교전권까지 부정한다. ‘전수방위’(공격은 하지 않고 오로지 방어만 한다) 원칙이다. 하지만 2019년 10월1일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내각회의를 통해 기존의 헌법 해석을 뒤집으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 이에 따라 자위대는 국외 무력분쟁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 강경 보수파의 숙원이었다.
일본 현직 총리가 대만 유사시를 존립 위기 사태라고 공식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우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온 다카이치 총리가 지지층을 의식해 내놓은 발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 성향의 일본유신회와 연립정부를 구성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국가’의 걸림돌인 헌법 제9조 개정을 염두에 둔 양당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른바 ‘대만 유사는 곧 일본의 유사’란 주장은 일부 머리 나쁜 정치꾼들이 선택한 죽음의 길이다. 멋대로 들이민 그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 각오는 돼 있는가?”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11월8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글을 올려 이렇게 주장했다. 다카이치 총리를 겨냥한 ‘극언’이었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뒤 첫 정례브리핑이 열린 11월10일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지도자가 며칠 전 국회에서 대만과 관련해 공공연히 잘못된 발언을 하고 무력 개입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중국 쪽은 이에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며, 일본 쪽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하고 강력 항의했다.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며, 어떤 방식으로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통일을 이룰지는 전적으로 중국의 내정에 속한다.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

2025년 10월21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도쿄의 총리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상황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국 쪽은 한발 더 나아갔다. 린 대변인은 11월13일 브리핑에서 다카이치 총리에게 ‘대만 유사’ 발언 철회를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이자 대만 광복 80주년이다. 일본은 한때 대만을 식민 통치하며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은 군국주의 역사상 여러 차례 이른바 ‘존망 위기’를 구실로 대외 침략을 감행했고, ‘자위권 행사’를 이유로 ‘9·18 사변’(1931년 만주사변)을 감행해 중국 침략 전쟁을 일으켰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전세계인에게 심각한 재앙을 초래했다. 오늘 일본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이른바 ‘존망 위기’를 다시 거론한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군국주의의 전철을 반복하려는 것인가? 다시 중국과 아시아인의 적이 되려는 건가? 전후 국제질서의 전복을 기도하는 건가? 일본 쪽에 엄중히 경고한다. 역사적 책임을 깊이 반성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하거나 도발로 선을 넘는 잘못된 언행을 즉시 중단하라. 대만 문제를 두고 불장난하지 말라.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다.”
중국 쪽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외교부가 나서 자국민의 일본 여행 자제를 요청(11월14일)하더니, 교육부가 일본 유학 자제령(11월16일)을 내렸다. 2025년 들어 9월까지 일본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약 748만 명에 이른다. 2024년 말 현재 일본 내 전체 유학생의 36.7%(12만3485명)가 중국인이다. 11월17일엔 다가오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11월22~23일)에서 중-일 회담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11월19일엔 중국 쪽이 불과 2주 전 재개했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시켰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전방위적 압박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일본 쪽은 11월17일 가나이 마사아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베이징으로 급파했다. 11월18일 가나이 국장과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시아 국장이 회담을 마친 뒤 외교부 청사를 나서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이례적으로 인민복 차림을 한 류 국장은 자세를 곧추세운 채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가나이 국장은 자세를 반쯤 숙이고 두 손으로 가방을 들었다. 일본 쪽에선 “교사가 학생을 야단치는 모습이라도 연출하려는 거냐”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정작 중국 누리꾼들은 “중국 쪽은 5·4 운동(1919년) 당시 청년 복장을 하고 일본 관리를 만났다. 주권을 지키려는 태도는 100년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는 글과 함께 관련 사진을 퍼날랐다.

2025년 11월17일 중국 수도 베이징의 거리에서 한 남성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 발언을 비판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다. AP 연합뉴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 발언은 집권 이전부터 공개적으로 밝힌 입장이긴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무모한 발언이다. 말의 무게를 의식해야 한다.” 일본 일간 마이니치신문은 11월11일치 사설에서 이렇게 짚었다. 갓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로선 ‘대만 유사’ 발언 취소는 선택지가 아니다. 중국 쪽은 보복 대응의 수위를 계속 높여갈 게다. 갈등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외교를 섣불리 국내 정치적 목적에 동원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외교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중국은 미국만큼 자국 중심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세밀하고 신중한 접근 없이는, 누구든 오늘의 일본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월17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만 문제와 함께 “중국을 겨냥한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발언” 등 일본 극우세력의 ‘혐중 활동’까지 문제 삼았다. 마냥 ‘남의 일’은 아닌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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