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란 맘다니 미국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가 2025년 11월4일 밤(현지시각) 당선이 확정된 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오늘 밤 뉴욕에서 해는 저물었지만, 유진 데브스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류의 더 나은 내일의 새벽을 볼 수 있다’고.”
2025년 11월4일 밤(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장 당선자로 확정된 조란 맘다니는 환호하는 지지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맘다니가 당선 일성으로 유진 데브스를 입에 올리자 장내에 함성이 터져나왔다. 미국의 전설적 노동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유진 데브스는 노동계급을 대표해 다섯 차례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맘다니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부유하고 권력과 유착된 자들은 오랜 세월 뉴욕의 노동계급에 ‘권력은 너희 손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창고에서 상자를 나르느라 손가락에 멍이 들고, 배달 자전거 핸들을 잡느라 손바닥이 갈라지고, 주방에서 일하느라 손목에 화상을 입어도, 그 손으로 권력을 잡을 순 없었다. 그런데 지난 12개월여 동안 여러분은 뭔가 중요한 것에 겁 없이 달려들었다. 오늘 밤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는 그걸 쟁취했다. 미래가 우리 손에 있다. 우리가 정치적 왕조를 전복했다. 다수를 저버리고 소수에게만 응답하던 정치의 시대는 끝났다.”
조란 콰메 맘다니는 1991년 10월18일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인도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간 이름 ‘콰메’는 가나의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을 지낸 콰메 은크루마에게서 따왔다. 부모 모두 아프리카에 기반을 둔 이민자 집안 출신이어서다. 탈식민주의 연구자이던 아버지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 무슬림이다. 인도 북서부 펀자브 출신 힌두교도인 어머니는 ‘살람 봄베이’(1988년)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감독이다. 5살 때 케이프타운대학 교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주한 맘다니는 아버지가 컬럼비아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7살 때 뉴욕에 정착했다. 그는 2025년 6월10일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특혜받은 성장기를 보냈다. 부족함을 모르고 컸다”고 말했다.
18세기에 개교한 인문학 명문대학 보든칼리지(미국 메인주)에 진학한 맘다니는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연합’(SJP) 지부 창설을 주도했다. 2014년 대학 졸업 뒤 뉴욕으로 귀향한 그는 주거권 활동가와 힙합 가수를 겸업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이 돌풍을 일으킨 2016년 대선 이후 꾸려진 ‘민주적 사회주의자’(DSA) 그룹에 적극 참여한 그는, 2020년 6월 뉴욕주 하원의원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5선 현역 의원을 누르고 후보로 선출됐다. 그해 11월 치른 선거에서 주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2022년과 2024년엔 각각 경쟁 후보 없이 무투표 당선됐다.
2024년 10월 뉴욕시장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맘다니는 정치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다. 뉴욕시장 후보 민주당 경선에서 그는 3선 뉴욕 주지사 출신의 거물 정치인 앤드루 쿠오모와 맞붙었다. 맘다니는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유쾌한 유세’를 이어갔다. 그가 뉴욕 인구 250만 명이 거주하는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의 임대료 동결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양복을 입고 한겨울 바다로 뛰어드는 영상이 2025년 초부터 소셜미디어를 달궜다. 그는 △시내버스 무료 승차 △무상 육아 △아파트 임대료 동결을 3대 공약으로 내걸고 뉴욕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했다. 6월24일 치른 민주당 경선에서 맘다니(43.8%)는 쿠오모(36.1%)를 누르고 후보로 선출됐다. 30대 무명 정치인이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다.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고 봤다. 선거캠프를 차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뉴욕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정치인 대부분은 유권자에게 ‘이런 문제가 중요하다, 저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교한다. 반대로 우리는 시민들이 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생활물가, 생활물가, 생활물가’ 얘기를 가장 많이 했다.”
본선을 한 달여 앞둔 10월1일 맘다니는 에이비시(A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임대료 낼 돈이 없고, 육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식료품값은 너무 비싸고, 2.9달러인 버스값도 부담스럽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선거 전략을 미국에서 가장 생활물가가 비싼 뉴욕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는 쪽으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산주의자냐”는 질문엔 “아니, 민주적 사회주의자다. 나는 모든 사람이 존엄하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민주적 사회주의가 뭐냐”는 물음엔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수십 년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려보자. 민주주의면 어떻고, 민주적 사회주의면 어떤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신의 자식들을 위해 부의 분배가 더욱 공정해지면 된다”고 답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식 정치인이란 뜻이냐”는 추가 질문에 “말하자면 그렇다. 그쪽 정치인들보다 내 피부색이 좀 짙긴 하지만”이라며 웃었다.

2025년 11월4일(현지시각)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미국 뉴욕시장에 당선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맘다니가 민주당 후보로 정해진 직후부터 “100% 미치광이 공산주의자”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압박 수위를 높였다. 맘다니가 당선되면 뉴욕시에 대한 연방예산 지원을 중단한다는 위협이 대표적이다. 맘다니는 에이비시 방송 인터뷰에서 “화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짓이 아니다. 정작 화가 나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법으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걸 정상이라 여기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태도다.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출신인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끝까지 맘다니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무소속 출마를 저울질하던 에릭 애덤스 현 시장(민주당)은 9월28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영상 메시지를 내어 “정치권에서 극단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우리 자녀들이 뉴욕과 미국을 증오하는 식으로 과격화하고 있다. 과감한 개혁은 필요하고 환영하지만, 우리가 오랜 세월 함께 건설한 체제를 파괴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맘다니에 대한 ‘저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막판에 민주당 경선 패배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쿠오모에게 표를 주라”고 노골적으로 ‘선거 개입’에 나섰다. 선거 구도는 ‘맘다니 대 트럼프’로 바뀌었다. 유권자는 유례없는 조기투표 참여로 화답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시장 선거 조기투표 참여자가 73만5천 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4년 전 시장선거 때보다 네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1월4일 치른 선거에서 맘다니는 50.4%를 득표해 쿠오모(41.6%)를 꺾고 제111대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자본의 심장에 붉은 장미가 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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