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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트럼프, 시진핑의 ‘완승’

미국의 무모한 관세전쟁의 끝은 원상복구…중국, 대두·희토류 카드로 실질적 승리
등록 2025-11-06 22:09 수정 2025-11-07 17: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30일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 내 의전시설인 나래마루에 마련된 정상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10월30일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 내 의전시설인 나래마루에 마련된 정상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거의 모든 점에 합의했다. 10점 만점에 12점짜리 회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0월30일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에 딸린 의전시설인 나래마루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걸 다 얻었으니 ‘승리’라 할 만하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원래 미국이 갖고 있던 것이란 점이다. 세계를 요동치게 한 미-중 관세전쟁의 목표가 ‘원상 복구’였던가? 두고두고 기억될 회담이다.

트럼프가 얻은 것은 원래 미국 것

6년4개월여 만에 마주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2시간 가까이 회담에 임했다. 미국 백악관이 11월1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중국 쪽은 회담에서 △미국산 대두 수입 재개 △희토류 수출 통제 잠정 중단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원료물질 미국 유입 통제 강화 △대미 보복관세 인하 및 미국 기업 제재 중단 등에 합의했다. 이에 맞춰 미국 쪽도 △대중 보복관세 10% 인하 △중국 선적 화물선 항만 수수료 징수 연기 △미국산 첨단기술 중국 기업 이전 통제 강화 조치 잠정 중단 등을 하기로 했다. ‘휴전’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양쪽이 원하는 것을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미국 농무부의 자료를 보면, 2024년 미국의 농산물 수출 총액은 1764억달러다. 최대 수출 품목은 대두로, 수출 총액은 244억7천만달러에 이른다. 전체 농산물 수출액의 13.9%에 이르는 규모다. 미국산 대두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다. 중국의 2024년 미국산 대두 수입 총액은 126억4천만달러에 이른다. 미국 대두 수출 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는 뜻이다. 중국에 이어 미국산 대두 수입 2위인 유럽연합의 수입 총액은 24억5천만달러로 중국의 5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미국 대두 농가의 중국 의존도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정전’ 상태였던 미-중 무역전쟁은 다시 불타올랐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첨단기술 접근권 차단 조치에 중국은 대대적인 보복조처로 맞섰다. 대표적인 게 2025년 5월 시작된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이다. 미국산 대두는 통상 9월부터 수확한다. 저장 창고에 대두는 넘쳐나는데 최대 수입국은 문을 걸어 잠갔다. 물건이 넘쳐나니 국제시장에서 가격은 폭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 농민으로선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선거를 앞두고 경제위기로 골머리를 앓던, ‘남미의 트럼프’를 자처하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돕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는 10월9일 2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즉각 돈을 풀었다. 아르헨티나산 대두에 부과됐던 수출세 26%도 사라졌다. 대두 수출 경쟁국에 ‘보조금’을 지급한 꼴이다. 곧바로 중국이 아르헨티나산 대두 100만t을 수입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대두 농가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5년 10월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에 딸린 의전시설인 나래마루에 마련된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25년 10월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부산 김해공항 공군기지에 딸린 의전시설인 나래마루에 마련된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 관세 으름장에도 “중국 경제 5.2% 성장”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6월26일 공개한 투표 성향 분석 자료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도시보다 농촌에서 지지율이 월등히 높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맞붙은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은 도시 지역에서 70% 대 24%로 뒤졌지만, 농촌에선 34% 대 59%로 앞서면서 당선됐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겨룬 2024년 대선에선 도시(65% 대 33%)와 농촌(29% 대 69%) 모두에서 지지율을 더욱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분별한 관세·외교 정책으로 강력한 지지기반을 스스로 잠식한 꼴이다.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반도체와 방위산업 분야의 핵심 소재다. 중국 상무부는 10월9일 ‘2025년 제62호 공고’를 내놨다. 외국 방위산업과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산 희토류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수출 규제안이다. 미국이 자국산 기술과 장비를 사용한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규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이었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최신 자료를 보면, 중국은 전세계 희토류 채굴량의 70%와 정제량의 92%를 차지한다. 국제 희토류 시장을 중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중국산 제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산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 통제 강화도 예고했다. 미-중 무역협상을 주도하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중국과 세계 간의 대결이다. 저들은 자유세계 전체의 공급망과 산업 기반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희토류 카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중국은 이번 회담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간 잠정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유효기간 1년짜리 강력한 협상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는 뜻이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한 관세전쟁에 나서기 전까지 중국은 미국산 대두를 수입하고 희토류 수출도 통제하지 않았다.

“중국 경제는 2025년 3분기 동안 5.2% 성장률을 달성했다. 상품 무역 수출입도 4% 증가했다. 중국 경제는 넓은 바다와 같다. 규모와 탄력성, 잠재력이 모두 크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전하거나, 그들을 대체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자기 일을 잘 처리하고 더 나은 스스로가 돼 세계 각국과 발전 기회를 공유하는 데 집중하겠다.”

중국 외교부는 10월30일 미-중 정상회담 직후 낸 보도자료에서 시 주석이 회담에서 한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9월 내놓은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 잠정보고서에서 중국 경제가 2025년 4.9%, 2026년엔 4.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미국의 성장률은 2025년 1.8%, 2026년엔 1.5%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시 주석은 회담에서 “대결보다 대화가 낫다. 중-미 간 각 채널과 층위에서 소통을 유지하고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는 여전히 많은 난제가 있다. 중국과 미국은 대국으로서 함께 책임감을 보여줘야 한다. 양국과 세계에 유익한 큰일, 실질적인 일, 좋은 일을 함께 더 많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NYT “시진핑 주석, 트럼프에 ‘설교’라도 하는 듯”

미국 뉴욕타임스는 10월30일 이렇게 짚었다. “분명한 점은 중국이 협상의 지렛대를 갈수록 과감하게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걸 즐기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무역전쟁을 둘러싼 ‘최근의 우여곡절’이 미-중 양국에 교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마치 ‘설교’라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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