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직무가 정지된 패통탄 친나왓 타이 총리가 2025년 7월8일 각료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향해 웃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타이 헌법재판소가 총리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군부와 결탁한 정당은 곧바로 연립정부에서 발을 뺐다. 야권은 의회 해산을 요구했다. 거리로 왕당파 시위대가 몰려나왔다. ‘익숙한 살풍경’을 예감한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1932년 절대군주제 폐지로 입헌군주제 국가가 된 타이에선 그간 13차례 ‘성공한 쿠데타’가 벌어졌다. 가장 최근의 쿠데타는 2014년에 벌어졌다. 타이 정국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나?
2025년 5월28일 타이~캄보디아~라오스 국경이 만나는 이른바 ‘에메랄드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타이군과 캄보디아군이 충돌했다. 이 사건으로 캄보디아군 병사 1명이 숨졌다. 인도차이나(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점령했던 프랑스가 1950년대 물러가면서 멋대로 획정한 약 800㎞에 이르는 국경지대에서 타이와 캄보디아는 오랜 세월 갈등해왔다. 양국 간 국경 충돌로 2008년 이후에만 모두 28명이 목숨을 잃은 터다. 두 나라 국경 지역에서 아연 긴장감이 고조됐다.
캄보디아 정부는 6월13일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타이 방면 국경 검문소를 폐쇄했다. 타이 드라마와 영화의 텔레비전 방영도 금지했다. 38년간 철권을 휘두른 뒤 아들 훈 마네트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상왕’ 노릇을 하고 있는 훈 센 전 총리 겸 상원의장은 타이 상품 불매 운동을 촉구했다. 위기감이 커지고 있었다. 6월15일 패통탄 친나왓 타이 총리가 훈 센 의장과 16분 남짓 전화 통화를 하고 국경분쟁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훈 센 의장은 통화를 녹음해 자국 정치인 80여 명과 공유했다. 공유된 통화 내용은 6월18일 유출됐다. 타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패통탄 총리의 부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와 훈 센 의장은 오랜 세월 막역한 관계를 맺어왔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9월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된 뒤 훈 센 의장의 경제자문역을 맡아 캄보디아에 머무르기도 했을 정도다. 패통탄 총리가 6월18일 통화에서 훈 센 의장을 ‘삼촌’이라 부른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다. 패통탄 총리는 통화에서 국경 지역을 관할하는 타이군 제2사령관 분씬 팟깡을 ‘반대파’로 규정하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분씬 사령관은 “캄보디아와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강경 대응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협상 전술로 한 말이다. 군부와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신뢰의 문제가 생겼으니 훈 센 의장과 더는 개인적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 패통탄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해명했다. 논란은 더욱 번졌다. 6월28일엔 시위대 수천 명이 수도 방콕의 거리로 쏟아져나와 패통탄 총리의 해임을 촉구했다. 군부가 지명한 상원의원 36명은 패통탄 총리가 ‘헌법상의 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헌법재판소는 7월1일 청원에 대한 조사 착수를 결정하고 패통탄 총리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일사천리였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같은 일이 무한 반복되는 느낌이다. 이번 일도 과거에 벌어졌던 일과 똑같다. 언제나 세상이 좀 나아질 것인지….” 싱가포르 공영방송 채널뉴스아시아(CNA)는 7월1일 60대 방콕 시민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실제 ‘통화 유출’ 사건 이후 벌어진 타이 정치권의 상황을 보면 ‘기시감’이 뚜렷하다.
2006년 4월 총선에서 탁신 당시 총리가 이끈 타이락타이당은 주요 야당의 선거 보이콧 속에 60% 가까운 득표율로 압승했다. 선거 부정 논란 속에 헌법재판소는 선거 무효를 선언했고,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정부를 무너뜨렸다. 이후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탁신계 정당은 연전연승했다. 2011년 7월 총선에선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이끈 프아타이당(타이공헌당)이 약 48%의 득표율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 탁신 전 총리 사면 논란을 시작으로 왕당파 시위대(이른바 ‘노란 셔츠’)가 거리를 장악하고, 이른바 ‘방콕 셧다운’ 시위를 시작했다. 6개월여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고, 2014년 5월 헌법재판소가 나서 잉락 당시 총리를 해임했다. 헌재의 결정 2주 남짓 만에 군부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2023년 5월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야 권력 일선에서 물러섰다. 당시 총선에선 ‘타이판 국가보안법’으로 불리는 왕실모독죄(형법 제112조) 폐지 등을 약속한 전진당(MFP)이 일약 제1당(150석)으로 떠올랐지만, 헌법재판소가 2024년 8월 ‘입헌군주제 전복 시도’를 이유로 위헌 정당으로 규정해 해산시켰다. 패통탄 총리가 이끈 프아타이당은 141석으로 제2당에 그쳤지만, 군부세력과 결탁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집권했다.
“타이 시민 절대다수는 군사 쿠데타가 재연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동남아 전문가인 케빈 휴위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7월2일 채널뉴스아시아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군부는 연립정부에 참여하면서도 패통탄 정부를 흔들고 불안정을 부추겨왔다. 패통탄 총리가 훈 센에게 군부를 ‘반대파’라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정치 불안이 길어지고, 권력 공백이 감지되면 군부가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학자인 티띠난 뽕수디락 타이 쭐랄롱꼰대학 교수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짚었다.
“또다시 쿠데타를 벌이는 것은 군부도 주저하는 측면이 있지만, 아예 선택지에서 배제된 건 아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타이에선 군부 또는 사법부가 정치에 끊임없이 개입했다. 대규모 시위 사태가 이런 개입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이를 빌미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를 비민주적 방식으로 교체했다. 2014년 쿠데타 이후 타이 경제는 위축됐고, 국제적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따라서 군부는 쿠데타란 방식을 통한 정치 개입을 주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국 마비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정리하라는 요구가 커질 것이다. 사법부가 나서 총리를 해임하고 연립정부를 해산할 수도 있고, 쿠데타를 통해 군부가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일종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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