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둘러싸고 온갖 추정이 난무한다.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기관이 작심이라도 한 듯 연일 ‘첩보’를 쏟아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용 무기 지원이 거론되더니, 급기야 ‘전황분석팀’이란 이름으로 국회 동의 없는 ‘파병’ 주장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올렸다. 위기의 징후는 제법 뚜렷한데, 그 실체를 파악해 적절히 대응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불길하다.
2024년 10월31일 오전 7시10분께 북한이 평양 부근에서 동해상으로 ICBM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이 ICBM을 시험 발사한 것은 2023년 12월18일 화성-18형을 쏜 이후 약 10개월 만의 일이다. 앞서 국방정보본부는 전날인 10월30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ICBM 발사대를 준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또 “북한은 미국 대선(11월5일) 전에 핵 이슈를 부각하려고 시도할 것”이라며,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3번 갱도에서 7차 핵실험을 할 준비를 끝냈다고도 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 선거를 전후로 이른바 ‘전략 도발’을 여러 차례 벌였다. 2022년 중간선거(11월8일)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북한은 11월3일과 11월18일 두 차례 ICBM급 화성-17형 시험 발사에 나선 바 있다. 당시에도 국정원은 “북한이 풍계리 3번 갱도에서 핵실험을 할 준비를 마쳤다.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시기는 중국 공산당 제20차 당대회(10월16~22일) 이후부터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일 가능성이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국정원의 판단과 달리 북은 그때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핵실험을 한다면 미국을 겨냥한 것일 텐데, 북한은 이미 미국이 아닌 러시아를 ‘활로’로 삼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보도계가 여론화하고 있는 우리 군대의 대러시아 파병설에 유의하였다. (…) 만약 지금 국제 보도계가 떠들고 있는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정규 북한 외무성 러시아 담당 부상은 10월25일 입장문을 내어 이렇게 밝혔다. 사실상 파병을 공식 확인한 셈이다. 그간 북한군 파병설을 ‘가짜 뉴스’로 폄훼했던 러시아도 입장을 바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월24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결산 기자회견에서 북한군 파병과 관련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러-북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 오늘 비준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약 제4조 규정이 있고, 북한 지도부가 양국의 합의 사항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조약의 규정에 따라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북-러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한다. 김정규 부상이 파병을 두고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이라고 주장한 근거다. 북-러 밀착은 오랜 기간 치밀한 과정을 거쳐 준비됐다. 파병은 그 정점이다.
2019년 4월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용열차 편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이튿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열렸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2월27~29일)이 결렬된 뒤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북이 미국 대신 러시아를 돌파구로 삼았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뚜렷한 진전이 없던 양국 관계는 2023년 북쪽의 이른바 ‘전승절'(7·27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에 즈음해 획기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서면으로 전한 축하연설에서 “1950~1953년 가열찬 전투에서 조선인민군 군인들은 (…)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했다. 수만 회의 전투비행을 수행한 비행사들을 포함한 소련 군인들도 (…) 무게 있는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한국전쟁에 옛 소련군도 참전했다는 점을 러시아 최고지도자가 처음 공식 확인한 때다. 두 나라 관계가 ‘혈맹’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023년 9월13~16일 러시아 극동지역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중앙통신은 양국 관계를 “불패의 전우관계, 백년대계의 전략적 관계”로 규정했다. 2024년 6월19일 평양에서 다시 만난 두 정상은 북-러 조약에 합의했다. 2019년 이후 지속된 양국 관계 확대·강화의 결정판이었다.
조약 체결 한 달 뒤인 7월19일 알렉세이 크리보루치코 러시아 국방차관이 이끈 군사대표단이 방북했다. 이들을 접견한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에서의 특수군사작전에 대한 변함없는 강력한 지지와 굳건한 연대성을 표시”했다. 9월14일엔 세르게이 쇼이구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평양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북-러) 조약의 정신에 맞게 러시아 연방과의 협력과 협조를 더욱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가?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9월11일 특수작전 무력훈련기지를, 10월2일엔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각각 현지 시찰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의 ‘맹방’이 아니다. 2022년 2월 개전 이래 무기 대신 인도적 지원에 집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파병된 북한군의 규모와 성격, 실제 임무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무기 지원도, 북한군 포로 신문 참여 등을 목적으로 한 전황분석팀 파병 주장도 섣부르다. 정보기관이 앞장섰다는 점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짚었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 자체가 우리 안보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다. 파병의 반대급부로 북한이 무엇을 얻느냐가 관건이다. 그러니 지금은 밀착된 북-러 관계를 어떻게 이완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북-러 밀착 속에서도 러시아는 한-러 관계를 관리하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 미-러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시점에 우리도 얼마든지 관계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경직된 진영 논리에 빠져 섣불리 움직이는 건 무모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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