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니 공천이 말썽이다. 공천이 끝나면 다툼이 사라질까? 미국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어제의 동지가 곧 오늘의 적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까? 요지경 세상 속 2024년 11월에 치르는 미국 대통령선거 공화당 후보 경선이 막판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 이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판세는 요지부동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저만치서 웃고 있다.
니키 헤일리 공화당 경선 후보는 2011년 1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제116대 주지사로 당선됐다. 소수인종(인도 펀자브주 출신 이민 2세)이자, 여성으론 사상 처음이다. 그는 2014년 재선에 성공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첫 주유엔 대사로 지명된 2017년 1월까지 6년 동안 주지사로 일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그의 고향이자, 정치적 근거지다.
“우리 합중국 국민은 좀더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며,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1978년 9월 제정된 미국 헌법 제1조 3항은 연방의회 상원의원에 대해 “각 주의 주의회에서 선출한 6년 임기의 상원의원 2명씩으로 구성되며, (…) 상원의원의 결원이 생긴 때는 그 주의 행정부는 다음 회기의 주의회가 결원을 보충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상원의원을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은 개헌할 때, 제헌헌법 조문을 고치는 대신 수정헌법 조항을 채택해 추가하는 방식을 취한다. 1913년 4월 비준된 수정헌법 제17조는 상원의원 선출 방식을 주의회를 통한 간접선거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직접선거 방식으로 변경했다. 또 궐석인 상원의원은 주의회의 권한을 위임받아 행정부(주지사)가 임시로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헤일리 후보의 주지사 첫 임기 때인 2012년 12월 제임스 드민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연방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했다. 수정헌법 조항에 따라 헤일리 후보는 팀 스콧 연방 하원의원을 후임자로 임명했다. 스콧 의원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포함해 노예제 폐지에 반대해 내전도 불사했던 미국 남부 지역 출신 사상 첫 아프리카계 연방 상원의원이다.
2014년 보궐선거 승리에 이어 2016년과 2022년 선거에서도 거푸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운 스콧 의원은 2023년 돌연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공화당 경선 초반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스콧 의원은 2023년 7월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헤일리 후보와 동률(약 11%)을 기록하며 3위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지지율 상승세로 접어든 헤일리 후보와 달리 하락세가 뚜렷해지면서, 결국 스콧 의원은 11월 경선을 포기했다.
경선 본선을 앞두고 스콧 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경선 참여 기간에 열린 텔레비전 후보 토론회 때마다 헤일리 후보와 날 선 말싸움을 벌인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사우스캐롤라이나 전역을 함께 돌며 선거 유세를 지원하는 스콧 의원은 유력한 부통령 후보감으로 물망에 올라 있다. 그런 그를 헤일리 후보 쪽은 예수를 배반한 제자에 빗대 ‘유다 상원의원’으로 부른다. 스콧 의원은 2024년 2월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일리 후보 쪽 선거운동을 보면 절박감이 느껴진다. 절박하다는 것은 승부가 이미 끝났음을 뜻한다. 고향에서도 이기지 못하는데, 어디서 이길 수 있겠나? 헤일리 후보는 이미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솔직히 말해 최근 지지율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헤일리 후보 스스로 이제는 경선이 끝났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게 공화당뿐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치를 승부에 집중해야 할 때가 됐다.”
스콧 의원의 말이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2월24일(현지시각) 치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화당 대선 후보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앞두고 쏟아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를 예고한다. 미국 여론조사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가 1월1일 집계한 자료를 보면, 헤일리 후보(21.8%)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50%)과 두 배 이상의 지지율 격차를 보였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이 마무리된 뒤인 2월1일 집계한 조사 결과 역시 62% 대 31.4%로 헤일리 후보가 열세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예비선거를 나흘 앞둔 2월20일 <유에스에이 투데이> 등이 실시한 최신 여론조사에서도 두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약 3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대세는 이미 결정됐다고 봐도 좋겠다.
‘유다 상원의원’뿐이 아니다. ‘유다 주지사’도 있다. 1월15일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코커스)에서 압승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햄프셔주 예비선거(1월23일)를 앞두고 사실상 유일한 경선 경쟁자인 헤일리 후보를 겨냥한 ‘기이한’ 선거전략을 펼쳤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 정치인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유세를 위해 대거 뉴햄프셔주로 몰려온 게다. 단연 눈에 띈 인물은 헨리 맥매스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법무장관 출신인 맥매스터 주지사는 헤일리 후보의 주지사 임기 막판인 2015~2017년 부지사를 지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러닝메이트’였던 건 아니다. 주헌법 개정으로 2018년 선거 때부터 주지사와 부지사를 함께 뽑지만, 당시만 해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주지사와 부지사를 뽑는 선거를 따로 치렀다. 그는 2017년 1월 헤일리 후보가 주유엔 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사임하면서 주지사직을 승계했고, 2018년과 2022년 선거에서 내리 당선됐다. <뉴욕타임스>는 1월20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유세 때 맥매스터 주지사가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하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기 위해서다. 우리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를 말이다. 뉴햄프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도 그렇다. 경선 결승선에서 여러분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유력 인사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 지지율 격차는 한 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헤일리 후보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헤일리 후보는 2월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 나를 겨냥한 후보 사퇴 요구를 들어보셨을 줄 안다. 왜 이렇게 서두르나. 왜 모두들 내가 경선에 계속 참여하는 것을 두고 호들갑인가? 우리가 러시아에 살고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특정 후보가 99%를 득표하는 걸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는 2월24일 치르지만, 나는 2월25일에도 경선 승리를 위해 뛸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가 끝나고 열흘 안에 20개 주에서 경선이 진행된다. 결코 사퇴하지 않을 것임을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린다.”
그간 미국 정치권에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예비선거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 이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승리한다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될 수밖에 없다. 초반 3연승을 하고도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한 사례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면 헤일리 후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예비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라도 승리하거나, 적어도 뉴햄프셔주에서 거둔 지지율(44.3%) 수준은 유지해야 경선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초반 3연패를 하고도 대선 후보가 된 전례는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현 대통령 모두 노인이다. 노인은 계속 늙어만 간다. 미국이 절박하고도 화급하게 단결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두 사람 모두 분열만 조장한다.” <워싱턴포스트>는 2월20일 헤일리 후보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주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치며 잔뼈가 굵은 정치적 고향임에도 헤일리 후보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뉴햄프셔 때보다 선전할 가능성을 담은 여론조사 결과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헤일리 후보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5개 주와 1개 자치령(미국령 사모아)에서 경선을 치르는 ‘슈퍼 화요일’(3월5일)까지는 경선을 지속할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시엔비시> 등은 헤일리 후보가 1월 모금한 선거자금이 1650만달러(약 219억원)를 기록해, 트럼프 전 대통령(880만달러)을 크게 앞질렀다고 전했다. 공화당 안팎의 반트럼프 정서가 ‘유일한 대항마’로 남은 헤일리 후보에게 쏠렸음을 알 수 있다. 경선 판세는 이미 정해졌지만, 경선 지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헤일리 후보는 ‘2028년 대선주자’란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다.
‘파이브서티에이트’가 집계한 2월20일 최신 여론조사 결과, 전국 단위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77.7%를, 헤일리 후보는 17.1%를 기록했다. 같은 조사에서 대선 본선 지지율은 트럼프 전 대통령(43%)이 바이든 대통령(42%)을 간발의 차로 앞서고 있다. 일찌감치 대선 본선을 시작해 ‘바이든 때리기’에 집중하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선 헤일리 후보가 ‘눈엣가시’ 같을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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