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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 혐의’ 트럼프 백악관 복귀 가능할까

미 대선 전통적 격전지, ‘이기는 자’에게 투표하는 오하이오의 ‘이슈1’ 주민투표에서 2024년 대선 향배 가늠
등록 2023-08-19 06:44 수정 2023-08-20 01:59
2023년 8월8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치른 주민투표에서 ‘이슈1’이 부결되자, 주헌법에 임신중지권 명시를 추진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3년 8월8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치른 주민투표에서 ‘이슈1’이 부결되자, 주헌법에 임신중지권 명시를 추진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유력한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기소됐다. 벌써 네 번째다. 이번엔 2020년 대선 직후 조지아주 투표 결과를 조작하려 한 혐의다.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검찰이 2023년 8월14일(현지시각) 공개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공갈 △공무원 선서 위반 종용 △공무원 사칭 음모 △공문서 위조 음모 등 모두 13개 혐의가 적시돼 있다.

공갈 혐의 등 네 번째 기소에도 입지 탄탄한 트럼프

그럼에도 그의 입지는 탄탄해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유고브’가 8월16일 발표한 조사 결과, 조 바이든 대통령(43%)과 트럼프 전 대통령(42%)은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8월17일 <폭스뉴스>가 발표한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53% 지지율을 기록해, 2위인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16%)를 압도했다. 그는 정말 백악관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8월8일 중서부 오하이오주에서 치른 주민투표 결과에 2024년 대선의 향배를 가늠할 실마리가 담겨 있다.

“헌법은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헌법의 어떤 조항도 그런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 임신중지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반환한다.”

2022년 6월24일 미 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지권(낙태)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사건(1973년)과 이를 재확인한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1992년)에 대한 기존 대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임신중지권에 대한 찬반은 미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시험지로 통한다. 미 대법원의 ‘변심’이 가능했던 것은 공화당 정부가 임명한 보수적 대법관(6명)이 민주당 정부가 임명한 진보적 대법관(3명)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닐 고서치(2017년), 브렛 캐버노(2018년), 에이미 배럿(2020년) 등 보수적 법률가 3명을 대법관에 임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법원 판결로 임신중지권 인정 여부는 50개 주정부로 이관됐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집권한 26개주에서 임신중지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가 들불처럼 번졌다. 이에 맞서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주헌법에 임신중지권을 명시하려는 노력도 시작됐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드와인 주지사가 버티고 있는 오하이오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행 오하이오주 헌법은 의회가 아닌 주민발의에 의한 개헌에 두 가지 조건을 부과한다. 첫째, 88개 카운티 가운데 절반인 44개 카운티에서 유권자 5% 이상이 개헌안 발의에 찬성해야 한다. 둘째, 개헌투표에서 유권자의 50%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오하이오주에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5%가량이 임신중지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11월 임신중지권 헌법 명문화를 위한 개헌투표 실시 가능성이 점쳐졌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정부와 의회가 ‘이슈1’이란 반격 카드를 부랴부랴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신중지권 보장 장벽 높이려 발의된 ‘이슈1’

공화당 소속 브라이언 스튜어트 오하이오주 하원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슈1은 기존 헌법이 부여한 주민발의 개헌의 장벽을 대거 높이는 게 핵심이다. 첫째, 개헌안 발의 기준을 기존 44개 카운티에서 88개 카운티 전역으로 확대했다. 1개 카운티만이라도 완강하게 거부하면 개헌한 발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둘째, 개헌안 통과를 위한 찬성표 수위도 50% 이상에서 6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설령 임신중지권을 명시하는 헌법 개정안 주민발의가 이뤄지더라도, 기존 여론조사 결과보다 찬성표가 5%포인트 이상 높아야 한다는 뜻이다. 프랭크 라로즈 오하이오주 국무장관은 2023년 5월22일 세네카 카운티에서 열린 당원 행사에서 이슈1에 대한 주민투표에 대해 “100% 급진 친낙태 헌법 개정을 무산시키기 위해서다. 조용한 다수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지 1년을 맞은 2023년 6월24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미국 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지 1년을 맞은 2023년 6월24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이를 비판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UTERS

8월8일로 결정된 주민투표를 앞두고 미 전역에서 찬반 진영에 대한 지원이 밀려들었다. 현지 매체 <데이턴 데일리 뉴스>는 7월29일치에서 “이슈1 주민투표에 대한 찬반 양쪽 진영에 답지한 선거운동 자금이 2천만달러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84%가 오하이오주 밖에서 유입된 금액”이라고 전했다. 오하이오주 이슈1 주민투표가 임신중지권을 둘러싼 미국 보수-진보 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다는 뜻이다.

8월8일 치른 주민투표는 사전투표자만 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참여 열기가 높았다. 최종 집계 결과, 오하이오주 유권자의 56.5%(약 280만 표)가 이슈1에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은 43.5%에 그쳤다.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전초전은 끝났다. 오하이오주에선 11월7일 임신중지권을 주 헌법에 명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주민발의 개헌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슈1 주민투표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오하이오주가 미국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대표적 ‘스윙 스테이트’(격전지)로 분류되는 오하이오주는 ‘이기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곳’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역대 미 선거에서 일종의 방향타 구실을 해왔다. 실제 1960년 대선 때 당선자인 존 케네디 민주당 후보 대신 낙선한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이후 60년 세월 동안 오하이오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줄곧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 있다.

2016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66.48% 투표율 속에 정치 신인이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는 51.31%(284만여 표)를 얻은 반면,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43.24%(239만여 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최종 결과는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도 53.27%(315만여 표)로 득표율을 더욱 올리며, 오하이오주 선거에 걸린 선거인단 18명을 독식했다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45.24%(267만여 표)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60년 만에 오하이오주가 미국 전체 민심과 다른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보수-진보 진영 대리전이 된 주민투표

2020년 대선 결과를 이슈1 투표와 비교해보면 오하이오주 정치 지형의 변화 폭을 가늠할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하이오주 88개 카운티 가운데 81개에서 승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단 7곳에서 승리했다. 그럼에도 둘 사이 표차가 채 50만 표가 안 된 이유는 주도인 콜럼버스를 비롯해 인구가 많은 클리블랜드·신시내티 등 주요 대도시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1 투표에선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카운티 가운데 15개 카운티가 등을 돌렸다.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카운티는 모두 반대표가 우세했다. 특히 쿠야호가(클리블랜드)와 프랭클린(콜럼버스) 카운티에선 반대표가 70%를 넘어섰다. 지난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은 이 두 카운티에서 각각 60%대의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미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사건을 뒤집은 이후 민주당 출신이 주지사인 미시간주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출신이 주지사인 버몬트주에서 임신중지권을 명시한 주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민주당 출신이 주지사인 캔자스주와 켄터키주에선 임신중지권을 부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주헌법 개정안이 부결됐다. 임신중지권 문제가 2024년 대선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8월12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8월12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열린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 쪽도 이를 잘 안다. 가톨릭 신자로 그간 ‘임신중지권’이란 표현 사용 자체를 꺼렸던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6월 대법원 판결 1주년에 즈음해 완전히 달라진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6월22일치 기사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첫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론 클레인의 말을 따 “임신중지권 문제는 2024년 대선 운동 기간에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 정신의 입법화를 위한 노력에 나서는 민주당 후보(바이든 대통령)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시중지권’ 표현 꺼린 바이든 태도도 달라져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8월8일 오하이오주 이슈1 주민투표 개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오늘 오하이오주 유권자가 공화당과 특권층이 주헌법 개정 절차를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며 따로 환영성명까지 냈다. 이어 그는 (이슈1은) 유권자의 목소리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더욱 침해하려는 노골적인 시도였다. 오하이오주 주민들은 크고 분명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고, 오늘 밤 민주주의가 승리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되살아난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이 2024년 미 대선을 달굴 조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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