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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패배 3주 뒤, 이란 핵 과학자 암살...누가 왜?

이란 핵과학자 테러 사망의 배후는… ‘이란 핵합의 불만’ 이스라엘 극우세력과 막바지 트럼프 정부의 ‘은밀한 전략’ 가속화로 분석
등록 2020-12-05 11:51 수정 2020-12-06 17:02
2020년 11월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의 한 도로에서 이란 핵프로그램을 이끈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암살범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숨진 현장에 부서진 차량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AFP 연합뉴스

2020년 11월27일, 이란 수도 테헤란 외곽의 한 도로에서 이란 핵프로그램을 이끈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암살범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숨진 현장에 부서진 차량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AFP 연합뉴스

2020년 11월27일 오후 2시께(이하 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 마을의 한 도로에서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이 작렬했다. 이란의 저명한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62)를 노린 암살범들의 표적 공격이었다. 범행은 시나리오가 잘 짜인 첩보영화 같았다. 이란 당국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사건 당시 파흐리자데는 아내와 함께 방탄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무장 경호 차량 2대가 앞뒤에서 호위했다. 차량 행렬이 회전식 교차로에 진입하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었다. 탑승자들은 급하게 차량 밖으로 피신했지만 쏟아지는 총탄에 속수무책이었다.

베일에 가려진 핵개발 책임자

총격 원점은 약 150m나 떨어진 곳에 세워진 픽업트럭이었다. 트럭에 설치된 기관총은 무인 원격조종으로 작동했다고 한다. 차량은 총격을 끝낸 뒤 자폭 장치로 폭파됐다. 불과 3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파흐리자데와 경호원 등 2명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11월30일 알리 샴하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은 “암살 작전은 매우 정교했고, 전자장비가 쓰였으며, 범행 현장에는 (공격에 가담한 괴한들이) 아무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그러나 범인들의 신원과 정보를 알려주는 몇 가지 실마리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트럭 소유주는 사건 한 달 전에 이란 땅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쪽이 밝힌 ‘원격조종 기관총 암살’ 시나리오는 기술 문제와 사전 준비의 복잡성 탓에 사실이 아닐 것이란 의심도 나온다.

파흐리자데는 이란 국방혁신연구소(SPND)에서 핵개발 프로그램 ‘아마드 프로젝트’(1999~2003)를 진두지휘한 최고 책임자였다. 최근까지도 그의 신변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파흐리자데는 고도의 보안 아래 그림자처럼 살았으며, 유엔(국제원자력기구 IAEA를 의미함)의 핵사찰단도 접근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그가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란 바깥에선 그를 만나기는커녕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암살자들은 파흐리자데의 인물 정보는 물론 이동 경로까지 미리 파악해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란 내부의 협력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란 당국은 반체제 망명 그룹 ‘무자헤딘 에 칼크’(MEK)를 이스라엘의 공모자로 지목했다. 이 단체는 이란이 친미 팔레비 왕정 시절이던 1965년 이슬람 좌파 세력이 결성한 민주화운동 조직이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공화국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첫 대통령선거에서 입후보를 금지당하고 탄압받자 반체제 무장투쟁 조직으로 변신했다.

이란은 테러의 배후가 이스라엘과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11월30일 이란 국영 <프레스TV>는 현장에서 수습한 무기 잔해 일부에 이스라엘 방산업체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란 뉴스통신 도 “이스라엘이 사전 정보와 미국 지원 없이 그처럼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전했다. 이 매체는 “모사드(Mossad·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가 유엔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를 통해 파흐리자데의 이름 등 신상 정보를 입수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보도의 사실 여부는 대부분 공식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추정할 만한 단서는 적지 않다.

2018년 4월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에 있는 국방부에서 이란 핵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사진과 이름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8년 4월3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에 있는 국방부에서 이란 핵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이란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사진과 이름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네타냐후 “파흐리자데, 그 이름을 기억하라”

사건 다음날인 11월28일,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한 고위 관리는 미국 <뉴욕타임스>에 “파흐리자데를 앞세운 이란의 핵무기에 대한 열망은 너무나 위협적이었으며, 세계는 이스라엘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국제 안보’를 위해 악역을 떠맡았다는 뉘앙스가 읽힌다. 12월2일엔 미국의 한 고위 관리가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이스라엘은 작전 시행 전에 목표물이나 은밀한 작전에 관해 미국과 정보를 공유해왔다”며 “이번에 암살된 파흐리자데는 이스라엘의 목표물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2018년 4월, 이스라엘은 이란 핵개발 관련 기밀 자료를 다량 확보했다며 일부를 공개했다. 석 달 전 모사드가 이란 테헤란 남서부 슈라바드 지역에 창고로 위장한 비밀 시설을 야간에 급습해 탈취했다는 내용이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직접 언론 브리핑에 나서서 관련 문서와 사진을 보여주며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파흐리자데의 얼굴 사진을 슬라이드 영상으로 띄우고 “이란의 아마드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인물이 국방혁신연구소를 이끌며 특수 임무를 계속 수행 중”이라며 “그 이름을 기억하라, 파흐리자데”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귀담아듣는 이는 드물었다.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내부의 비공개 인물을 핵개발 지휘자로 공개 지목하고 이름을 기억하라고까지 한 것은 ‘후속 작전’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란은 즉각 이스라엘에 보복을 다짐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암살 사건 다음날 “시오니스트(이스라엘)들은 대혼란을 조성하려 하지만 이란은 그 덫에 빠지지 않을 만큼 현명하다”며 “우리는 적절한 시점에 순교자 파흐리자데의 암살에 응분의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은 자국의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핵프로그램이 핵무기 개발과 상관없는 평화적 에너지 활용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핵개발이 국방부 산하 기관에서 수행된 점, 파흐리자데가 이란 최정예군인 혁명수비대 준장 직급으로 삼엄한 경호를 받았다는 점에 비춰 이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9년 1월, 이란 핵프로그램을 이끈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와 면담할 때 찍은 사진. 이란 최고지도자 누리집 갈무리, EPA 연합뉴스

2019년 1월, 이란 핵프로그램을 이끈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테헤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와 면담할 때 찍은 사진. 이란 최고지도자 누리집 갈무리, EPA 연합뉴스

바이든 정부 출범 전 핵협상 더 어렵게

서방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이 핵무기 개발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제재와 협상을 병행해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 5개국과 독일(P5+1)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이란과 밀고 당기는 핵협상을 벌인 끝에 나온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은 양쪽이 타협한 결과물이다. 13년의 산고 끝에 나온 이 합의는 2018년 5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해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후 미국은 이란에 ‘최대 압박’ 전략으로 제재와 봉쇄를 강화했다. 이란은 물가가 급등하고 화폐(리알) 가치가 폭락하면서 경제가 파탄될 지경에 몰렸다. 시민들은 평범한 의약품조차 구할 길이 없어 발을 굴렀다. 이란이 강하게 반발해 우라늄 농축 재개와 서방 유조선 나포로 맞서면서, 호르무즈해협 일대의 군사적 긴장은 일촉즉발까지 치달았다.

이란 핵과학자 암살은 이스라엘의 극우 정부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합작품이라는 게 대다수 안보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이란과 서방의 2015년 핵합의가 이행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의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이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판단도 깔렸다. 최근 미국의 군사·안보 전문 민간 싱크탱크 스트랫포는 “파흐리자데 암살이 이란 핵프로그램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은밀한 전략을 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키돈’(창끝)이라는 암살조직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가 11월 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조 바이든 차기 정부가 출범을 앞둔 시점에 벌어진 것도 주목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이란 핵합의 복귀’를 거듭 공언해왔다. 스트랫포는 “트럼프 정권 말기에 이란에 대한 비밀 군사작전을 강화하는 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을 더 어렵게 하려는 시도”라고 짚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패배 이후인 11월17일에도 참모들에게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을 자문했다가 부정적 답변을 듣고 철회한 바 있다. 파흐리자데 암살은 그로부터 열흘 뒤에 전격 감행됐다.

이란에서 이스라엘 소행으로 보이는 핵과학자·군부요인 암살(시도)은 2007년 이후 최근까지 10여 차례다. 이란 핵개발 재개 의혹이 불거진 2010~2012년에만 이란 핵과학자 5명이 암살 표적에 올라 4명이 숨지고 1명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2020년 벽두인 1월3일엔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표적 공습으로 폭사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핵무장 억제’라는 목적을 요인 암살을 포함한 물리적 수단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현 단계에서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이 이란 경제를 손상시켰을 수는 있지만, (그 반발로) 이란이 핵분열 물질 축적을 재개해 핵무기 제조까지 시간을 단축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이런 방식의 암살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암살) 장벽을 낮춰준다”고 경고했다. 비록 적대국이라지만 전시도 아닌 평시에 어엿한 주권국가 영토에 잠입해 중요 인물을 암살하는 건 국제법상 불법인데다, 똑같은 방식의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을 일으키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암살로 이란 핵이 해결될까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란 게 공식 확인만 안 됐을 뿐 공공연한 비밀인 것도 이란 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양대 적국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공화국 혁명 이후 40년 넘게 역내에선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선 미국과 날카롭게 대결하고 있다.

더욱이 이란은 중동에서 이슬람 소수파인 시아파 종주국으로, 이슬람 수니파가 압도적 다수인 주변 아랍 국가들과도 역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란과 대립 관계인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도 2000년대 초반까지 핵무장 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공식적’으로는 폐기했다. 이런 지정학적 환경에서, 이스라엘의 핵무장에 눈감고 이란의 핵개발만 문제 삼는 건 명분이 약하다. 압도적 힘으로 굴복시키거나, 어느 정도 ‘당근’을 주고 협상을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이란 핵협정 파기에 이은 이란 핵과학자 암살로,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대립은 당분간 더욱 격화할 조짐이다. 당장 이란 의회(마즐리스)는 12월1일 우라늄 농축 수준을 20%로 상향하는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2일에는 이란 상원에 해당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이 법안을 최종 가결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꺼져가는 평화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바이든은 12월2일 <뉴욕타임스> 외교·안보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렵겠지만, 이란이 핵협정 의무를 다시 이행한다면 미국도 협정에 복귀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2015년 이란 핵협정을 여전히 지지한다고도 했다. 2021년 1월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는 최근 4년간의 트럼프 시절과 다를 테니, 이란은 우라늄 농축 등 사태를 악화하는 행동을 멈추라는 메시지다. 이란은 12월3일 오전까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백주대로 암살극의 잔불이 완전히 사그라지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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