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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촛불처럼 주말마다 모였다”

홍콩 민간인권전선 지미 샴 의장 인터뷰 “한국 시위는 홍콩의 ‘아이돌’, 한국 관심은 홍콩에 보호망”
등록 2019-09-23 12:10 수정 2020-05-03 04:29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왼쪽)와 지미 샴 홍콩 민간인권전선 의장. 임채원 교수 제공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왼쪽)와 지미 샴 홍콩 민간인권전선 의장. 임채원 교수 제공

“홍콩에 한국의 집회·시위는 아이돌과 같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철회를 밝혔지만 홍콩에서는 여전히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홍콩의 민간인권전선(이하 민전) 지미 샴 의장은 “한국 민주주의는 홍콩 시민에게 큰 영감을 준다.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를 모범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100만 명이 집회에 참가했던) 6월9일부터 민전은 한국을 참고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시민운동이 성공하려면 한국의 박근혜 퇴진 운동처럼 주말마다 집회해야 한다는 거였다. 한국에서 (대통령 퇴진)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긴 시간 동안 집회를 열고 유지할 수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자료도 찾아봤다.” 샴 의장은 홍콩의 이번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 국면에 한국 촛불혁명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가 의장직을 맡은 민전은 2002년 9월 설립됐다.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기본법 제23조’ 입법 방침을 홍콩 정부가 발표했던 시기다. 기본법 제23조는 국가 안전을 저해하는 조직 금지 등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최장 30년 감옥형에 처하도록 정했는데, 홍콩 시민들은 기본권 탄압이라며 저항했다. 민전은 이듬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날짜인 7월1일에 맞춰 대규모 거리시위를 기획했고, 홍콩 시민 50만 명이 참여해 세계 시민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대규모 시위에 압박을 느낀 정부는 법 제정 방침을 철회했다. 이후 민전은 매년 7월1일 홍콩 시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집회와 시위를 열고 있다. 민전에는 정당, 학생운동 단체, 노동 조직, 홍콩 기자협회 등 48개 회원 단체가 있다.

샴 의장은 “1980년대부터 홍콩 시민운동은 뜨겁게 발전해왔다. 민전의 목표는 정당이 중산층 목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보수적 결정을 내리는 걸 막는 것이다. 민전은 기본법 제23조 입법에 반대해 설립된 뒤 줄곧 시민단체와 정당 사이에 소통 다리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일국양제’는 시민사회를 속이는 구호

홍콩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민전은 상징적 조직이라 샴 의장의 위상도 크다. 8월29일 홍콩 시내에서 점식 식사를 하던 샴 의장이 둔기를 든 복면 괴한 2명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위가 더욱 격해지기도 했다. 홍콩의 반송중 시위를 조사하던 경희대 미래문명원 임채원 교수가 9월10일 오후 홍콩 시내 커피숍에서 샴 의장을 만났다.

홍콩의 현재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송환법 때문에 시작했지만 송환법(폐지)만으로 끝낼 수는 없다’이다. 홍콩 정부가 송환법 철회를 공식 발표했음에도 집회는 계속됐다. 9월16일로 반송중 시위는 100일째를 맞았다. 현장에선 송환법 철회 뒤 경찰 탄압이 더욱 강압적인 양상을 띠면서 이전보다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계속 거리로 나가는 이유는 정부가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6월9일 100만 명이 행진에 참가한 날 밤, 정부가 송환법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것이었다. 시위자가 고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을 때 정부는 아무런 입장 발표도 없이 관심을 갖지 않아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경찰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더욱 강한 무력을 행사했다. 한 여성은 고무탄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했다. 친중 세력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시위대를 폭행하기도 했는데 람 행정장관은 시민의 폭력만 강조하면서 나머지 폭력은 감싸고 있다.” 샴 의장은 장기화하는 시위의 이유를 정부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돌렸다.

송환법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체포된 시위 참가자 전원 석방과 불기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선제 실시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내걸었던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네 개까지 모두 관철하기 전에는 시위를 멈출 수 없다며 홍콩 정부에 맞서고 있다. 요구사항 다섯 중 직선제 실시 요구를 가장 먼저 천명한 주체가 민전이었다.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홍콩 문제를 논의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다섯 개 중 마지막 요구사항인 ‘람 행정장관 사퇴’를 보통·직접 선거 요구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홍콩 시민사회는 람 행정장관 하야보다 직선제 요구가 더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민전이 제안했지만 시민사회가 모두 같이 결정했다.” 샴 의장은 민전이 시민사회운동 참여자일 뿐 리더가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의 직선제 쟁취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홍콩과 중국 각자가 갖고 있는 참정권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그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샴 의장은 설명했다.

“홍콩 사람들은 서구의 기준으로 직선제를 이해한다. 모든 시민이 피선거권, 투표권을 가지는 것을 보통선거로 인식한다. 중국은 서구의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중국만의 방식을 고안했다. 2014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발표한 홍콩 선거제도는 각계 대표 인사 1200명으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에서 과반수 동의를 얻은 후보 두세 명을 지명하면 홍콩 시민의 선거를 통해 최종 행정장관을 선출한다. 지명위원 대부분이 친중파이기 때문에 친중 인사만 입후보할 수 있다는 한계가 명확한데도 중국 공산당 정부는 보통선거라고 한다. 홍콩 시민사회는 직접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중국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홍콩에 민주적인 직선제를 보장할 경우 마카오, 선전, 상하이, 티베트 등 다른 지역에서도 요구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을 대표하며 공산당 결정에 반대하는 행정장관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 중국은 ‘일국양제’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일국양제는 중국 공산당이 세계 시민사회를 속이려는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홍콩은 중국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8월31일 홍콩 시내 중심가에서 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건물과 육교 위에서 응원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8월31일 홍콩 시내 중심가에서 우산을 들고 행진하는 시위대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건물과 육교 위에서 응원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우산혁명’ 뒤 거의 유일한 단체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위대가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 ‘광복홍콩, 시대혁명’의 의미는 무엇일까? 샴 의장은 자신이 구호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며, 시위에 참여해서 외치는 사람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 구호를 외친 사람은 에드워드 렁 전 본토민주전선 대변인이다. 그는 2015년 몽콕 시위에 참여했던 혐의로 체포돼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샴 의장은 “민전이 만든 구호가 아니라서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구호를 외치면서 느끼는 감정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를 위해서 광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콩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의 비장함도 함께 곱씹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홍콩 시민의 열망은 뜨거워졌지만 역설적으로 민전의 역할은 작아졌다. “홍콩 시민사회가 점차 강해지면서 민전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할 필요가 줄었다. 우산혁명 뒤 민전은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선제를 요구했던 우산혁명에서 시민사회의 정치적 리더들이 대부분 체포되면서 홍콩에서 사회운동을 조직할 수 있는 단체는 민전밖에 없었다. 3월31일 첫 번째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최한 민전이 6월9일까지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유다. 하지만 200만 명까지 시위 참가자가 늘면서 민전은 시위의 리더가 아니라 하나의 참여 조직이 됐다. 민전은 시민사회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돕고, 행동할 때 공간을 제공한다. 의사결정을 하는 건 홍콩 시민사회다.”

홍콩 정부는 민전이 기획했던 9월15일 거리행진을 허락하지 않았다. 폭력 시위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민전은 관련 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행진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날은 송환법 철회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쳤다.

민전을 이끄는 샴 의장은 평화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전은 이번 시위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시위를 평화롭고 합법적이며 안전하게 진행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우리는 계속 이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다. 과격 시위를 하는 시민도 있지만 우리와 함께하는 동안은 평화 원칙을 지킬 것이다. 우산혁명 때는 평화 시위를 강조하는 쪽과 과격 시위를 주장하는 쪽이 충돌하면서 분열을 경험했으나, 이번 국면에서는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세력도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공존한다.”

한국 시민사회가 지켜봐달라

샴 의장은 한국 시민사회에 관심을 촉구했다. “현재 민주와 자유, 인권, 법치를 누리는 한국은 기성세대가 열심히 투쟁한 결과물이다. 한국이 이 결과물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한다. 한국 사람 모두가 홍콩을 직접 도울 순 없겠지만 관심을 갖고 중국 정부가 홍콩의 자유를 어떻게 침해하는지 지켜봐달라. 그것만으로도 홍콩에 큰 도움이 된다. 세계시민의 관심이 사라지면 중국은 더욱 노골적으로 홍콩을 탄압할 것이다. 한국의 관심이 홍콩의 보호망이 되는 이유다.”

인터뷰 임채원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정리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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