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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러 특검한테 손대지 마!”

세션스 이어 뮬러 해임 여부 촉각…

공화당도 반대 기류 “워터게이트 사건이 반면교사”
등록 2018-11-24 15:43 수정 2020-05-03 04:29
2016년 2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유세 지원에 나섰을 때의 세션스 전 법무장관(왼쪽) 모습. AP 연합뉴스

2016년 2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유세 지원에 나섰을 때의 세션스 전 법무장관(왼쪽) 모습. AP 연합뉴스

‘콘코드 경영 컨설팅’이란 러시아 기업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주로 고급 식당가와 주택단지를 관리·운영한다. 외국 귀빈이 방문할 때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회사가 운영하는 식당을 자주 찾는다. 이 회사 대표 예브게니 프리고진에게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피고 쪽은 ‘불법적이지 않은 행위’를 근거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주장한다. 피고 쪽의 행위가 로비 활동 공개 의무를 비롯한 관련 법령을 위반했는지는 본질적인 게 아니다. 피고 쪽이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법무부와 연방선거관리위원회 등) 정부의 합법적 기능을 방해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으로선, 그랬을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 …피고 쪽의 요구를 기각한다.”

세션스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배후

지난 11월15일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이런 결정을 내렸다. ‘피고’는 콘코드, 2016년 미 대선 당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러시아 쪽이 운용한 자금 중 일부를 이 회사가 댔다는 게 주요 혐의다. 2017년 5월 출범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이 거둔 가장 최근의 성과다. 워싱턴 정가에 미묘한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1월6일 치른 미 중간선거는 누가 뭐래도 하원을 탈환한 민주당의 승리였다. 선거 당일 ‘엄청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마국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중간선거는 끝났다. 이제 2020년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다음날인 11월7일 첫 번째로 한 일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해임이었다. 재선으로 가는 길목의 ‘최대 장애물’을 의식한 조처였다.

세션스 전 장관 해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그가 ‘이해관계 충돌’을 이유로 뮬러 특검팀의 수사에 관리·감독권 ‘기피’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션스 전 장관 역시 수사 대상에 포함될 처지에 몰려 있는 탓이다. 사연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세션스 전 장관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극심한 지역으로 꼽히는 앨라배마주 출신이다. ‘제퍼슨 보러가드 세션스 3세’란 그의 본명은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에 찬성했던 남부동맹의 대통령(제퍼슨 데이비스)과 장군(피에르 보러가드)한테서 따온 게다.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 인물이란 뜻이다.

실제 세션스 전 장관은 1975년 검찰에 진출한 이래 연방 검사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인종차별 행태로 입길에 올랐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연방법원 판사에 지명했을 때도, 그의 인종차별 과거 행적이 논란을 부르면서 상원 인준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1994년 앨라배마주 법무장관에 출마해 당선됐고, 2년 뒤인 1996년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이후 그는 내리 4선을 하면서 공화당 중진 반열에 올랐다.

세션스 전 장관의 정치 이력에 정점을 찍은 것은 2016년 대선 때다. 그는 선거운동 초기에 현역 상원의원으론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정책 자문 등 선거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의 배후에 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휘터커 대행도 특검 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해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가 세르게이 키슬리약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직접 만나 외교정책을 논의했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앞서 세션스 전 장관은 2017년 상원 인준청문회 때 러시아 연루설을 전면 부인했다. ‘위증’ 논란이 불거진 것은 당연했다. 뮬러 특검팀도 이를 눈여겨봤을 터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특검팀 활동을 ‘관리·감독’한다면, 정상적인 법무장관의 직무 수행이라기보다 수사를 간섭·방해하리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세션스 전 장관이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차관에게 특검팀 관련 업무를 떠넘긴 것도 이 때문이다. 세션스 전 장관이 뮬러 특검팀에 재갈을 물기를 기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배신감을 느낄 만했다. 그는 여러 번 세션스 전 장관을 “무능하다”고 비난했다.

세션스 전 장관 해임과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매슈 휘터커 법무장관 비서실장을 권한대행으로 임명했다. 이 또한 충분히 법적 논란을 부를 만했다. 헌법에 따라 상원 인준청문회를 거친 로젠스타인 차관이 권한대행에 오르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장관 비서실장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정무직이다.

휘터커 대행은 2017년 9월 법무장관 비서실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CNN) 등 방송에서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뮬러 특검팀 공세의 선봉에 서 있었다. 그가 비서실장에 전격 발탁된 것도 이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여러 차례 “특검팀의 예산을 줄여서 수사 자체를 고사시킬 수도 있다”란 발언을 내놓아 논란을 불렀다.

흥미로운 건 휘터커 대행도 뮬러 특검팀의 수사선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오와주 출신으로 5년 남짓 연방 검사로 활동했던 휘터커 대행은 몇 차례 공직 선거에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1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 때 공화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단 7.5%를 얻는 데 그치기도 했다. 당시 경선에 함께 나섰던 샘 클로비스란 인물이 있다.

같은 해 클로비스가 아이오와주 재무장관 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게 휘터커 대행이었다. 클로비스는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섣부른 해임 결정은 사법방해죄

선거운동 기간에 클로비스는 각계에서 ‘인재’를 영입했다. 지난해 10월 위증죄 유죄를 인정하고 뮬러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하는 조지 파파도풀로스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캠프를 대표해 러시아 정부 쪽과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파도풀로스는 “미-러 관계 개선은 트럼프 행정부 외교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한 ‘선거캠프 고위 인사’가 있다고 특검팀에 밝힌 바 있다. 그가 바로 클로비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클로비스를 농업부 차관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미 일간지 를 비롯해 미국의 주요 매체가 잇따라 관련 보도를 내놓으면서, 클로비스가 자진해서 지명자 신분에서 물러났다. 그가 특검팀의 수사 대상이란 점은 자명하다. 클로비스와 ‘특수관계’인 휘터커 대행이 특검팀 관리·감독을 기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법 위에 있나?” “아무도 없다.”

11월8일 미국 전역에서 열린 크고 작은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외친 구호다. 미 일간 는 진보적 풀뿌리 정치단체 ‘무브온’이 집계한 자료를 따,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모두 900여 곳에서 집회가 열렸다”고 전했다. 참석자들이 들고나온 펼침막에 집회의 목적이 적혀 있다. “뮬러 특검에 손대지 마.” 휘터커 대행 임명에 대한 우려다. 랜들 엘리아슨 조지워싱턴대 교수(법학)는 11월15일 인터뷰에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뮬러 특검팀이 휘터커 대행에게 날마다 수사 상황을 보고할 의무는 없다. 다만 휘터커 대행은 특정인의 소환 조사와 기소를 가로막는 등 특검팀 수사를 제약할 수는 있다. 이 경우 의회에 그 이유를 보고해야 한다. 휘터커 대행은 뮬러 특검을 해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령 불복종’ 등 해임 사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 이를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섣부른 해임 결정은 사법방해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휘터커 대행이 지나치게 수사에 간섭하면, 뮬러 특검팀이 자진해서 사임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특검팀은 그간의 수사 상황 등을 언론에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벌어진 ‘토요일의 학살’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뮬러 특검이 물러난다고 수사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도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했지만, 수사는 계속됐다. 그 결과는 어땠나?”

닉슨의 특검 해임 ‘토요일의 학살’
‘워터게이트 사건’은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앞둔 1972년 6월17일 벌어졌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건물을 불청객 5명이 침입했다가 붙잡혔다. 사건을 덮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닉슨 대통령은 그해 11월 선거에서 60.7%를 득표하며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지만, 행정부 차원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 잇따라 드러났다.
위기가 깊어지자, 닉슨 대통령은 특단의 조처를 했다. ‘은폐 시도’ 자체를 ‘은폐’하는 게다. 1973년 4월 말께 백악관 법률 참모진을 비롯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측근들이 줄줄이 해임됐다. 리처드 클라인딘스트 법무장관도 자진 사임 형식으로 물러났다. 후임으로 임명된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은 1973년 5월 아치볼드 콕스 특검팀을 발족시켰다.
때를 같이해 상원의 진상조사도 불을 뿜었다. 1973년 7월 닉슨 대통령의 집무실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다는 점이 상원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됐다. 상원과 특검팀 모두 녹음 기록 제출을 요구했다. 닉슨 대통령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내세워 이를 무마했다.
콕스 특검팀이 자료 제출 요구를 거두지 않자, 닉슨 대통령은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콕스 특검팀 해임을 명했다. 그는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은 윌리엄 러클하우스 법무차관에게 콕스 특검 해임을 다시 명했다. 그 역시 이에 항의해 사임했다. 닉슨 대통령의 세 번째 선택은 로버트 보크 송무담당 차관보였다. 그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콕스 특검을 해임했다. 1973년 10월20일 토요일에 벌어진 일이다.
리언 자워스키가 후임 특별검사로 임명됐다. 특검팀 수사는 계속됐다. 이듬해인 1974년 2월 하원 법사위원회가 닉슨 대통령 탄핵 조사에 착수했다. 3월엔 닉슨 대통령이 해임했던 측근들이 줄줄이 기소됐다. 하원 법사위는 7월 말 사법 방해·권력 남용·의회 모독 등의 혐의로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발의를 시작했다.

수사 방해와 은폐 의혹이 수사 초점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해 7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 등에 대해 증언하기 전 선서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해 7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 등에 대해 증언하기 전 선서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해 8월5일 닉슨 대통령의 집무실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 내용 일부가 마침내 공개됐다. 치명타였다. 닉슨 대통령은 사흘 뒤인 1974년 8월8일 저녁 백악관 집무실에서 사임 연설을 했다. ‘토요일의 학살’로부터 10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뮬러 특검 해임을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반대하는 것도 ‘워터게이트의 교훈’이다. 미 상원 법사위는 이미 지난 4월 뮬러 특검을 해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의 반대로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세션스 전 장관 해임 뒤인 11월14일에도 민주·공화 양당 중진을 중심으로 이 법안을 상원 전체회의에 상정하려고 했다. 이번에도 매코널 대표가 무산시켰다. 그는 “나도 뮬러 특검 해임에 반대한다. 하지만 뮬러 특검이 해임될 위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법안을 통과시킬 이유가 없다”는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10개월 남짓 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11월20일 뮬러 특검팀의 서면질의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변호인단을 이끄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이제는 특검팀의 수사를 마무리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특검팀의 질의는 20여 개 항목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 쪽은 이 가운데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 개입설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만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장 해임(2017년 5월)을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거진 관련 수사 방해와 은폐 의혹에 대해선 답변할 이유가 없다는 게다. 뮬러 특검팀의 ‘콘코드 경영 컨설팅’ 기소에 대해 연방법원은 “정부의 합법적 기능을 방해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특검팀 수사의 초점도 마찬가지다. ‘마무리’를 말할 때가 아니란 뜻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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