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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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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으로 오는 평화는 가라

비핵화 논의되는 마당에 관함식이라는 축제를 빌려

제주에 진주한 미 핵항공모함
등록 2018-10-20 17:46 수정 2020-05-03 04:29
‘이것이 평화인가?’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이틀째인 10월1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군함과 헬리콥터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것이 평화인가?’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이틀째인 10월11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앞바다에서 군함과 헬리콥터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연합뉴스

10월10일부터 14일까지 무려 닷새에 걸쳐 제주 강정에선 해군의 국제관함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11일 강정마을 커뮤니티센터를 방문해 “군사시설이라 해서 반드시 전쟁의 거점이 되라는 법은 없다. 하기에 따라서 평화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이왕 해군기지를 만들었으니 강정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부산이 아닌 이곳 강정을 세계에 알려야 함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강동균·조경철 전 마을회장을 비롯해 지난 11년간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함께해오며 감옥에 가고 연행됐던 사람들은 강정 평화센터 사거리에서 경찰에 가로막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한 순간 평화센터 사거리에선, 11년 전 그날처럼 주민들이 국가폭력에 가로막혔다. 10년 갈등은 100년 갈등이 됐고, 국제관함식을 통해 예견된 ‘디스토피아’가 펼쳐졌다.

크루즈 터미널로 쏟아져나온 미군

국제관함식은 전세계 해군 함정이 모이는 축제로 홍보됐다. 전세계 군함이 모인다는 명목으로 미국 핵추진항공모함(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도 입항했다. 한반도에선 비핵화가 논의되는 마당에 핵항공모함이 입항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고, 강정 주민들은 온몸으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관함식’이라는 축제 이름으로 미국의 전략무기가 한반도 최남단 제주에 입항한 사실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그저 볼거리로 핵항공모함이 제주에 온 것이라고 간단히 이해하면 될 일인가? 강정 해군기지가 건설될 때 사람들은 이곳이 중국을 겨냥한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등이 들어오면 분쟁이 더욱 가속될 것임을 예견했다. 관함식이라는 축제를 통해 입항한 미 핵항공모함이 두 번, 세 번 더 오지 않으리란 보장을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첫 시작을 한 이상 두 번, 세 번은 더욱 쉬워질 것이고 어느 순간 아무런 저항 없이 핵항공모함이 드나드는 상황이 올까 두렵기만 하다.

강정 해군기지는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이름을 갖고 추진된 사업이었다. 군사기지뿐 아니라 크루즈 터미널(선착장)을 만들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번에 국제관함식에 참석한 나라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온 곳은 단연 미국이다.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와 함께 수천 명의 장병이 제주에 도착했다. 관함식이 끝난 10월15일 오전 미군은 아직 개장도 하지 않은 크루즈 터미널로 쏟아져나왔다. 이 사실은 크루즈 터미널도 언제든지 군사시설로 쓸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주4·3 70주년이 되는 올해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이 들어온 미군에 항의하고, 군인은 군사기지를 이용하라 요구한 시민들은 미군의 욕설과 성희롱·조롱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경찰들은 미군의 행위를 제지하기는커녕 저항하던 시민들을 옥죄었다. 미군 쪽의 신변 보호 요청에 따라 한국 경찰은 그곳에서 항의하던 강정 주민 1명을 연행하고, 1명이 응급실에 가는 폭력 상황을 반복했다. 자국민의 안전보다는 미군 보호에 앞장서는 씁쓸한 현실 앞에 더 이상 갈 곳 없는 사람들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만 했다.

군사기지가 놀이터로 바뀌는 ‘위선 관함식’에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마치 놀이터라도 되는 양 해군기지를 방문했다. 어른들의 손을 잡고 장갑차에 올라 총구를 겨누고, 군함에 승선한다. 마치 장난감인 양, 아이들을 승선시키고 총구를 겨누게 하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분단의 종식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협력이라는 것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온 사회가 배웠음에도, 아이들에게 무기를 가르치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이다.

아이들에게 무기를 가르치는 위선
국제관함식 해상 사열이 열린 10월11일 오전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지킴이들이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평화의 마음을 다지는 생명평화 100배를 하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 제공

국제관함식 해상 사열이 열린 10월11일 오전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 지킴이들이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평화의 마음을 다지는 생명평화 100배를 하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 제공

유모차를 탄 아이들에게, 이제 막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생동하는 생명이 아닌 강철 무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따스함과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에게 차가운 무기를 손에 쥐여주며 우리는 감히 생명과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하와이를 예로 들며 제주 해군기지도 평화의 거점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얘기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왜 정부는 바뀌었는데 제주에 대한 비전은 바뀌지 않는 것인가? 태평양에서 미국의 군사 요새 역할을 하는 하와이를 언급하는 것이 자칫 더 큰 제주의 군사화를 불러올까 아찔하기만 하다. 더 많은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힘으로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이끌며 분단 종식으로 달려가는 현 정부가 좀더 담대한 선택을 하길 바라는 것은 여전히 욕심일까.

11년간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던 중 700명이 연행됐다. 경찰-법원-재벌 건설사로 이어지는 권력의 카르텔 속에 강정 주민들과 제주도민, 연대했던 수많은 시민은 온몸으로 저항해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행된 국가폭력 속에서 미래를 저당 잡힌 사람들은 끝나지 않은 재판과 사람들 사이의 갈등 속에서 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또다시 선택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겨우 붙들었던 마음은 다시 깨졌다. 10년의 인생을 걸고 평화의 섬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평화의 이름 아래 배제됐다. 단 며칠의 행사를 위해 스스로 조금씩 치유되던 공동체에 다시 균열이 생기는 현실은 아프게 다가온다.

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공권력의 폭력은 군인에 의해 그리고 경찰에 의해 되살아났다.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복 차림의 군인이 동원되었고, 강정 주민들은 단 한마디의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불법 촬영과 위력 행사 속에 20여 시간 억압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10년을 지겹게 만났던 경찰들은 다시 강정에 와서 미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민을 연행했다. 겨우 잊었던 국가폭력의 아픔, 더 이상 보호받을 곳도 의지할 곳도 없다는 생각에 깊은 분노와 좌절이 고개를 내민다.

육지로 보내진 정체불명의 쓰레기

세계의 평화를 품었다는 그 바다는 관함식에 참여했던 군함들의 기름이 유출돼 오염됐다. 미국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은 바지선에 실려 육지로 보내졌다. 약속뿐인 크루즈 터미널은 버젓이 군사적 용도로 쓰이고, 미국의 전략 자산은 ‘축제’를 빙자해 들어왔다. 그리고 위선과 기만의 축제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은 또다시 경찰과 군인에 의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짓밟히고,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뼛속 깊이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단 며칠의 국제관함식으로 해군은 강정을 전세계 군사기지로 홍보할 수 있었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시끌벅적했던 군함도, 대통령도 떠난 자리에 서서 다시 일상의 삶을 추슬러본다. 강정은 묻는다. 평화로 향하는 길이 단지 힘에 의해서만 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전쟁과 분단의 세대가 어쩌면 당연히 여겼던 무력에 의한 평화가 힘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냐고 말이다. 자기 밭을 강제 수용당한 뒤 그곳에 세워진 ‘군관사 101동’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농부 김성규 시인의 외침을 전한다. 그 누구에게라도 가닿기를….

제주의 바다 세계 평화를 품다

해군이여

장하다

세계를 품었는데

강정을 무너뜨렸구나

세계의 평화는 생각하는데

강정의 평화는 멸시를 했구나

장하다

너희들이 무너뜨린 평화 위에

너희들의 평화를 심었으니

어찌 장하다 아니하리오

우리네 같은 서민이야

평화가 무슨 소용인가

죽으라면 죽어야지

자랑스런 이 땅의 해군이

이 나라 이 땅을 지킬 해군이

강정을 필요하다는데

세계 평화를 위해

강정이야 일백번 죽어야지

해군 국제 관함식

자랑스럽도다

자랑스럽도다 해군

세계 평화는 품었으나

강정의 평화는 짓밟았으니

차마

울면서도 박수를 보내마

너희들의 잔인한 평화를 위해

강정(제주)=한선남 강정지킴이
평화바람 peaceberry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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