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동구호 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중동 지역 대변인 시모나 시키믹은 6월7일 과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우리는 장기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폭력의 위협으로 인해 어린이들의 회복탄력성이 침식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이브더칠드런은 가자지구에서 30년 이상 인도주의 활동을 해왔고, 교육·아동보호·심리사회적 건강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시키믹 대변인은 “가자지구 어린이 지원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올해 초 정신건강 연구를 했다”고 설명했는데, 최근 분석을 마친 결과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가자지구 어린이 150명(평균연령 14살)과 보호자 15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3월30일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위대한 귀환 행진’ 시위 이후 현재까지 120여 명이 죽고 1만1천여 명이 다친 ‘2014년 이래 최악의 유혈 충돌’을 고려하면 그사이 어린이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78% 전투기 소음이 가장 큰 공포의 원천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 가자지구 어린이의 95%가 우울감과 과다활동, 공격성을 보이거나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하는 등 ‘정신건강 위기’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어린이 스스로 정신건강 위기를 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보호자 96%도 자녀와 손주들에게서 네 가지 문제 유형 모두를 인지했다고 답했다. 시키믹 대변인은 “이런 증상을 보인 어린이들이 반드시 정신건강 문제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정신건강 문제) 진단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15살 사마르(가명)는 “봉쇄된 삶 외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소녀다. 사마르는 “나는 끔찍한 악몽을 많이 꾸고 끊임없이 폭탄의 표적이 되거나, 포격을 받거나, 다치거나, 죽을까봐 두려움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느낌은 나를 사로잡고, 다른 많은 아이들 또한 그렇다. 두려움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은 많은 아이들이 있다. 공포스럽고,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털어놨다.
사마르의 말 속엔 세이브더칠드런의 조사 결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가자지구 어린이 78%는 전투기 소음이 가장 큰 공포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위협, 폭탄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지속적인 불안도 큰 스트레스 원인이었다. 조사에 응한 소년·소녀들은 “전쟁이 날까봐, 폭탄이 떨어질까봐 두렵고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이런 심리 상태는 악몽을 꾸는 것으로 이어지고, 잠드는 것에 대한 공포는 수면장애로 이어진다. 가자지구 어린이 63%는 악몽을 꾸고, 68%는 수면장애를 겪는 등 심각한 고통 징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니퍼 무어헤드 세이브더칠드런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디렉터는 “가자지구의 많은 어린이가 봉쇄와 전쟁, 점점 더 많은 박탈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며 “그들의 스트레스와 불안은 날마다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는 것과 관련이 깊고, 여기에 많은 사람이 다치는 폭력을 보는 것까지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 아이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아직 버티고 있는 이유는 역시 가족이었다. 가자지구 어린이 80%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정신건강) 문제를 말할 수 있다”고 했고, 90%는 “부모의 지지를 받는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중동 지역 세이브더칠드런 정신건강 자문 마르시아 브로피 박사는 “많은 아이들의 안정감은 ‘가족이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느끼는 감각’과 관련됐다”며 “가자지구 어린이 150명 가운데 80%는 ‘부모를 떠나서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의 폭력이 늘어나고 불확실성이 커지면,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 있는 아이들의 회복력을 한계점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이 올까봐 우려한다. 지난 10여 년간 가자지구의 가정은 수많은 어려움과 불확실성에 봉착했다. 빈곤율은 30%에서 50%로 올랐다. 실업률은 35%에서 43%로 올랐고, 청년실업률은 60%에 이른다. 20년 전만 해도 96% 인구가 깨끗한 물을 마셨지만 지금은 93%가 깨끗한 식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약품과 식료품은 공급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손에 넣기엔 너무 비싸다.
식수·전력 공급난 등 문제 심화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단일 요소로는 보호자 60%가 “전기 부족”을 꼽았다. 가자지구에선 하루 3~6시간 정도만 전기가 공급된다. 세이브더칠드런 설문조사에서 어린이들은 “전기가 끊어질 때마다 화가 나거나 걱정이 된다”거나 “혼자라는 느낌을 받는다”며 전기 부족으로 인한 분노와 걱정, 고립감을 드러냈다. 14살 소년 아흐메드(가명)는 “우리 집에는 방이 2개밖에 없어 좁은데, 전기가 없으면 팬이 돌지 않아 그 열기를 견딜 수 없다”고 토로했다.
강력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 유형더욱이 ‘위대한 귀환 행진’ 이후 격화되는 유혈 충돌 사태는 가자지구 어린이들의 정신건강을 더욱 위협할 우려가 있다. 브로피 박사는 “최근 몇 주간 수천 명의 어린이가 아버지나 어머니, 친척이 다치거나 죽는 걸 봤다. 이미 충분히 불안한 환경에서 가족의 안전마저 상실된다면 아이들은 정신건강 위기에 빠지고 연약한 대처 메커니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정신과 신체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독성 스트레스의 위험이 높으며, 강력하고 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 유형 가운데 가장 위험한 형태다”라고 우려했다.
실제 사마르는 세이브더칠드런에 “행진할 때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봤고, 나는 매우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범죄도 저지른 적 없는 죄 없는 아이들이 다치는 것을 보며 울고 싶었고, 죽은 아이들을 볼 때 울었다.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는 여전히 슬프다. 그저 어린아이일 뿐인데 나는 그들이 다치는 것을 봤다.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설명했다.
브로피 박사는 “가자지구의 최근 폭력 사태가 어린이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면서도 “우리가 아는 것은, 충돌 지역에서 어린이 정신건강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가족의 안전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자지구 어린이들은 칼날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기에, 충격이 한 번 더 가해지면 평생 지속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파트너 기관을 통해 최근 가자지구 폭력 사태로 다친 어린이들에게 심리적 지원과 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키믹 대변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실탄을 맞은 어린이 150명을 포함해 350여 명을 지원했다.
“원조가 아이들 해치는 정치적 도구 돼선 안돼”현재 가자지구에서는 주민 80%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올해 초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지원금 1억2500만달러(약 1331억원) 가운데 6500만달러를 삭감하기로 한 것은 치명적이다. 경제위기로 더 많은 아이가 학교를 자퇴하거나, 옷·책·문구류는 물론 음식 같은 생필품을 받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시키믹 대변인은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어린이를 노동으로 밀어넣는 상황을 두려워하며, 그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대체로 절망과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원조가 아이들을 해치는 정치적 도구로 쓰이는 건 절대로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어린이들이 받게 될 악영향을 고려해 미국 정부가 (UNRWA 지원금 삭감) 결정을 재검토하도록 강력히 촉구하며, 이스라엘은 점령군으로서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구의 기본 필요를 충족하는 데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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