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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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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국경의 밤

지진 이후 중국·인도와 접한 국경 모두 가로막힌 네팔 “인도가 국경을 잡고 네팔을 겁박한다”는 사람들… 다시 떠오르는 1989년의 악몽
등록 2016-01-14 08:43 수정 2020-05-02 19:28
네팔-인도 국경 다리는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테라이-마데시 정당 주도의 천막집회로 4개월째 막혀 있다. 막힌 길을 피해 네팔과 인도 주민들이 직접 다리를 넘어가기도 한다. 멀리 ‘네팔의 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샨카라차르야문이 보인다.

네팔-인도 국경 다리는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테라이-마데시 정당 주도의 천막집회로 4개월째 막혀 있다. 막힌 길을 피해 네팔과 인도 주민들이 직접 다리를 넘어가기도 한다. 멀리 ‘네팔의 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샨카라차르야문이 보인다.

육지 안쪽에 위치해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나라에서 국경이 막히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역활동이 전면 중단된다. 육로로 들어오던 연료와 의약품, 식품 등 필수품의 공급이 멈춘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제조업 등 산업 전반이 마비된다. 이것은 지금 내륙국가 네팔이 5개월째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네팔은 히말라야산맥이 있는 북쪽으로는 중국, 동서쪽 히말라야 줄기와 남쪽 평원 지역에서는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네팔 전체 국경 2926km 중 네팔-중국 국경이 1236km이고, 네팔-인도 국경이 1690km다. 두 국경이 지난해 4∼5월 연이은 지진과,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인도 정부의 비공식 국경 봉쇄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네팔 전체 교역량의 85.5%가 중국(34.5%)과 인도(51%) 국경을 통해 이뤄진다.

지난해 12월11일 찾아간 네팔 최대 국경 도시 비르간즈는 피로감에 쌓여 있었다. 지난해 8월부터 여러 차례 발생한 대규모 거리시위와 진압 경찰과의 충돌, 9월부터 시작된 국경 봉쇄 탓이다. 네팔 남쪽 평원에 위치한 도시의 특성상 차 2대가 동시에 지날 수 있는 너비의 큰길이 곧게 나 있다. 자전거와 인력거 ‘릭샤’, 삼륜차 ‘템포’가 그 길을 바쁘게 오간다.

가로막힌 국경에 갇힌 사람들

이 큰길은 비르간즈의 상징인 간타가르 시계탑부터 4km를 뻗어나가 인도 락사울로 향하는 네팔-인도 국경 다리까지 이어져 있다. 거리는 약국과 상점을 찾는 사람들과 인도로 넘어가려는 행렬 덕에 활기를 띠는 듯 보인다. 하지만 행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피로감과 불안감, 분노가 오랜 시간 쌓여왔음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언제 끝나나?” 비르간즈-락사울 국경에서 만난 인도 트럭 운전기사 SM 미스라(56)는 ‘요즘 국경 돌아가는 사정이 어떠냐’고 묻자 되레 질문을 해왔다. 지난해 8월 인도 콜카타 항구에서 불교서적을 싣고 출발해 비르간즈에 화물을 내려놓은 뒤 5개월째 국경 봉쇄에 막혀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5개월치 월급(3만인도루피, 약 54만원), 디왈리(Diwali·보통 9월과 10월 사이에 열리는 인도의 3대 축제 중 하나)와 차트푸자(Chhath Puja·11월 초 힌두 태양신을 축복하는 축제로 인도 북부 비하르주, 네팔 남부 테라이-마데시주에서 중요하게 여김) 같은 큰 명절을 다 놓쳤다.” 미스라의 귀국길은 처음에 비르간즈 거리시위대에 막혔다. 9월부터는 국경 다리를 막고 천막농성을 벌이는 테라이-마데시 정당들에 막혔다.

미스라는 지난 30여 년간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국경 봉쇄를 두 번 경험했다. 1989년 국경 다리 앞에서 길이 막혔을 때엔 16일쯤 지나자 인도 내무부 관계자가 네팔 쪽으로 넘어와 인도 화물차와 운전자들을 인도해갔다. 2015년엔 인도 정부 쪽에서도 감감소식이다.

화물차 운전 경력 2년째인 쿠드랏 알리(23)는 국경에서 5개월째 발이 묶인 상황이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콜카타 항구에서 컨테이너에 약, 자동차 모터, 유제품을 싣고 비르간즈로 온 알리는 선배 기사들과 차에서 밥 먹고 잠자며 집에 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인도 트럭 기사들의 빈 화물차는 ‘네팔의 문’으로 불리는 ‘샨카라차르야문’(Shankaracharya Gate)부터 비르간즈 세관까지 100m가량 길게 늘어서 있다.

네팔 헌법 탐탁지 않은 인도
네팔과 중국의 국경 인근 도시 타토파니. 지진과 산사태로 무너진 주유소 건물과 보테코시강 너머로 보이는 중국의 백화점. 중국은 2015년 네팔 지진과 산사태 이후 안전을 이유로 국경무역을 무기한 중단했다.

네팔과 중국의 국경 인근 도시 타토파니. 지진과 산사태로 무너진 주유소 건물과 보테코시강 너머로 보이는 중국의 백화점. 중국은 2015년 네팔 지진과 산사태 이후 안전을 이유로 국경무역을 무기한 중단했다.

해가 바뀌어도 네팔에서 변함없는 풍경은 석유와 가스를 사려는 긴 줄이다. 도심 주유소와 가스충전소마다 자동차, 오토바이, 가정용 액화석유가스(LPG)통 줄이 100m 이상 이어져 있다. 수도 카트만두부터 여행자들의 성지 포카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시작하는 베시사하르까지 상황은 같다. 학생들은 지리 시간에 배운 ‘네팔은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내륙국가(land-locked country)’라는 사실을 지금 생활에서 배우고 있다.

전세계에는 48개 내륙국가가 있다. 이 중에서 다른 내륙국가와 국경을 맞댄 나라도 있지만 육지의 섬처럼 홀로 덩그러니 놓인 나라도 있다. 유럽의 오스트리아,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아프리카의 남수단, 라틴아메리카의 파라과이가 전자에 해당하고 유럽의 스위스, 아시아의 네팔·라오스·몽골·부탄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육지의 섬’ 같은 내륙국과 국경을 맞댄 돈과 힘이 있는 나라 쪽에서 국경을 봉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로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중국은 2002년 티베트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몽골에 도착한 이후 몽골 국경을 폐쇄했고, 1960년 타이는 라오스에서 ‘콩레 쿠데타’(콩레 대위가 주도한 라오왕국 전복 쿠데타)가 일어난 뒤 내정 불안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한 바 있다. 내륙국가들은 국경 봉쇄를 비인도적인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에겐 육로무역이 생명줄인 까닭이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유엔에서는 내륙국가의 국경무역을 보호하는 각종 법적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1965년 빈협약, 1972년 해양 접근에 관한 법이 그것이다. 모두 내륙국가가 이웃 해양 인접국과의 육로무역에 주로 의존하는 특성을 고려해 어떤 상황에서도 교역이 방해받지 않도록 보장하고 있다. 인도와 네팔 사이에는 7년마다 갱신하는 수송조약(Transit Treaty)까지 맺어져 있다. 하지만 1989년에 이어 2015년에도 네팔-인도 국경은 ‘비공식적’으로 막혔다.

1989년과 2015년 두 해 모두 국경 봉쇄의 이유는 정치 문제가 얽혀서다. 1989년 3월부터 1년 이상 이어진 네팔-인도 국경 봉쇄도 네팔이 진도 6.9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직후였다. 당시 네팔 사람들이 분석한 인도의 네팔 국경 봉쇄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는 네팔이 중국에서 군사용 무기를 사들이며 네팔-중국 관계가 긴밀해진 것, 다른 하나는 라지브 간디 당시 인도 총리의 부인 소냐 간디가 네팔의 최대 힌두사원 파슈파티나트 방문을 거절당한 것이다. 지난해 국경 봉쇄로 다시 네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도가 국경을 잡고 네팔을 겁박한다’는 오랜 분노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9월23일부터 시작된 네팔-인도 국경의 비공식적 봉쇄 원인은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의 초대 헌법 탄생이다.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은 2008년 5월 의회의 입헌군주제 폐지와 민주공화제 도입을 받아들이고 왕궁을 떠났다. 그리고 7년4개월 만인 2015년 9월20일 초대 헌법을 제정했다. 네팔 의회 598석 중 85%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 채택됐다. 그런데 국내외의 두 세력이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정부와 네팔 남부 평원 테라이-마데시 지역 정당들이다.

갓길에 세워진 빈 트럭이 더 많아

“네팔은 독립적이고 분할 불가능한 세속적 주권국가로 포괄적인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에 기반한 네팔연방민주공화국이다.” 헌법 1장 제4조에 명시된 네팔 헌법의 기본 원리다. 네팔연방민주공화국 초대 헌법은 전문(前文)과 본문 총 37장 302개조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세속적’이라는 표현이 인도 나렌드라 모디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네팔 언론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해 전국 선거에서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이 크게 패배한 뒤 인도 내부의 지지층 결집을 위해 네팔에서 모디의 정치적 구호 ‘힌두국가 건설’(Hindutva)을 실현하려 한다.” 네팔 영자주간신문 편집장 겸 발행인 쿤다 딕시트의 말이다.

인도는 네팔-인도의 국경 봉쇄 책임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네팔 내에서는 인도의 경제적·심리적 지원 없이 테라이-마데시 정당들이 5개월 가까이 국경교역을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인도 외무부는 9월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는 오늘 네팔의 헌법 발효에 주목한다’(We note the promulgation in Nepal today of a Constitution)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헌법에 정관사 the(이미 정해졌다는 의미)가 아닌 부정관사 a(확정된 것이 없다는 의미)를 썼다. 이건 헌법으로 존중은커녕 인정도 안 한다는 뜻이다.” 정치부 기자 옴의 말이다.

네팔 역사에서 내내 차별과 소외를 경험해온 테라이-마데시 지역 기반 정당들도 2015년 헌법이 탐탁지 않다. 7개 테라이-마데시 지역 기반 정당은 선거구와 의석수가 네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한다. 국경 봉쇄는 이들 정당이 헌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여기에 인도 정부가 물자 수송 차량의 네팔-인도 국경 통과를 막으면서 장기화됐다. 8월부터 시작된 헌법 개정 요구 시위 중에 경찰과 시위대 6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2월 말, 네팔에서 가장 많은 화물차가 지나가던 카트만두∼비르간즈 간 트리부반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비르간즈는 네팔이 수입하는 석유 전량의 65% 이상, LPG와 의약품, 식품, 공산품의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중요한 교역 거점이다. 인도에서 들어온 화물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이 고속도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쪽으로 137km를 달려 비르간즈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 위를 달리는 화물차보다 갓길에 세워진 빈 트럭이 더 많다.

“여긴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일도”
타토파니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라무 셰르파(왼쪽)는 지진과 산사태 이후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타토파니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라무 셰르파(왼쪽)는 지진과 산사태 이후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석 달간 학교에 못 갔어요. 첫 달은 거리시위 때문에, 다음 달은 명절 휴가라서, 또 한 달은 국경 봉쇄 때문에.” 중학교 1학년인 프러미스 무히야(12)는 영어 회화 연습을 하겠다며 쭈뼛쭈뼛 말을 걸어오더니 국경 봉쇄 이야기가 나오자 “누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거냐”고 비장하게 반문했다. 남쪽 네팔-인도 국경도시 비르간즈에서는 교복 입은 아이부터 상점을 지키는 중년 여성까지 거리시위 151일째, 국경 봉쇄 111일째… 따위를 셈하는 것이 아침 일과다.

프라카시 고사인(26)은 연이은 시위와 국경 봉쇄로 직업을 바꿨다. 템포 기사였던 그는 석유 구하기가 어려워져 릭샤왈라(인력거꾼)가 됐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고사인 같은 국경 도시 주민들에게 국경 봉쇄는 생계의 비상사태다.

“국경 봉쇄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카트만두에서 우리가 받아온 차별과 소외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국경 봉쇄가 시작되자 우리 말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텐드라 소나르 전 국회의원은 지금이 마데시가 만들어낸 황금 같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소나르는 테라이-마데시 민주당(TMDP) 소속으로 2008∼2013년 초선 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비르간즈에서 만난 대학원생 시바나트 야다브(29·트리부반대학 사회학 석사과정)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북부 산악 지역에 비해 인프라나 교육·보건 서비스 개발에서 소외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테라이-마데시 정치인들이 의회에 있는 동안 지역을 위해 한 일도 없다.” 야다브는 테라이-마데시 토착민족의 대표적인 성씨다. 야다브 등 남부 평원 지역 주민들은 정부도 지역정당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북쪽 네팔-중국 국경마을 타토파니 주민들도 비르간즈 주민들이 국경 봉쇄로 느끼는 무력감과 피로감을 공유한다. 중국과의 교역 거점으로 역사가 깊은 타토파니는 지난해 4∼5월 지진과 산사태로 교역 기능이 중단됐다. 중국 정부는 안전 문제로 네팔과의 교역을 무기한 중단했다. 타토파니 주민은 120명 중 3분의 1만이 남아 있고, 중국 쪽 국경마을 카사는 8개월 넘도록 텅 비어 있다.

“여긴 아무것도 없다, 사람도 일도. 시간을 보내려고 가게 문을 열 뿐이다.” 타토파니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던 라무 셰르파(38)는 4월 지진 이후 손님을 맞아본 적이 없다. 중국 국경수비대가 종종 찾아와 와인과 초콜릿을 사갈 뿐이다. 카트만두와 타토파니를 잇는 아라니코 고속도로 115km 구간은 곳곳이 산사태로 막혔다가 조금씩 복구되고 있지만 산 위에서 여전히 큰 돌이 굴러 떨어진다.

타토파니 세관 2년차 직원은 “지진 전 100대 이상의 화물차들이 이 길과 다리를 지나 중국과 네팔 사이를 오갔다. 지금은 1대도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시 길도 정비되고) 우리는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국경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 중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타토파니는 지진으로 전선이 모두 끊어져 밤이 되면 암흑이다. 중국 쪽 세관에서 보내준 소량의 전기로 세관·이민국·경찰초소 3곳의 건물만 전깃불을 밝히고 있다.

국가 기능 마비 상태에 이르러

남쪽과 북쪽의 주요 국경이 모두 제 기능을 상실한 네팔에서는 반인도 감정과 정부의 무능에 대한 실망감이 깊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는 ‘인도의 네팔 목 조르기’(IndiachokesNepal)나 ‘인도의 네팔 국경 봉쇄’(IndiaBlockadesNepal) 같은 말이 해시태그(#)를 달고 연일 올라오고 있다. 시민들은 1989년 무려 1년6개월이나 이어졌던 인도의 국경 봉쇄 때와 2015년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무기력한 정부를 비판한다.

국경 봉쇄가 길어질수록 평원과 산간지방 사이의 갈등과 오해도 깊어지고 있다. 테라이-마데시가 주도한 국경 봉쇄 때문에 나라 기능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테라이-마데시 사람들에겐 못다 한 말들이 쌓여가고 있다.

파탄(네팔)=글·사진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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