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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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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슬람주의’는 거들 뿐

이슬람 반대·극우 세력 결집 계기가 되고 있는 ‘페기다 운동’,

불평등·복지망 해체에서 비롯된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성장의 기반
등록 2015-01-15 16:29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월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무장 괴한들이 이슬람을 조롱한 만평을 실은 만평 전문 시사주간지 편집국에 난입해 언론인 등 12명을 사살하는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이웃 독일에서는 이슬람에 적대적인 운동세력들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시위 현장을 취재한 한주연 통신원이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1월5일(현지시각) 저녁 6시께, 삼색기와 십자 깃발을 든 인파 400여 명이 베를린 시청 옆에 모였다. ‘서구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의 준말, ‘페기다’(PEGIDA) 시위대다. 페기다 운동이 활발한 독일 내 주요 도시에선 페기다 시위대들이 대부분 도시의 앞글자를 따서 자신들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베를린은 ‘베르기다’, 쾰른은 ‘쾨기다’, 본은 ‘보기다’, 이런 식이다. 이들은 동독 정권 말기 체제에 저항했던 시민운동의 구호인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를 연신 외쳐댔다.

시위대는 여러 연령대에 고루 걸쳐 있는 듯했다. 직업이 엔지니어라며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참가자(50)는 “피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한정으로 이주민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주민을 받아들일 때 선별하고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루카스(30·건물관리인)는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페기다 시위자들이 정말 인종주의자인지 확인하러 나왔다”고 밝혔다. “세계 어디에 민주적 이슬람 국가가 있는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초로의 부부도 있었다.

[%%IMAGE3%%]우리가 (진짜 독일) 인민이다

이날 시위엔 최근 들어 부쩍 세력을 넓히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신생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힘을 보탠 정황이 곳곳에 있다. 이 당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인 프라우케 페트리는 며칠 뒤 페기다 시위 주동자와 만나 두 조직 간의 정치적 연대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실제로 ‘독일을 위한 대안’ 피켓을 들고 이날 시위에 참가한 칼 뮐베르크(80)는 “독일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독일의 문화를 지키고 싶어서 나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처럼 지난해 10월20일에 시작해 점차 확산된 페기다 운동은 반이슬람주의라는 탈을 쓰고 독일 내 극우세력을 결집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옛 동독 지역에 자리잡은 드레스덴이 페기다 운동의 성지로 떠오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같은 날 드레스덴에서 열린 시위엔 1만8천 명이 참가했다. 페기다 운동 시작 이래 최대 규모다.


‘독일을 위한 대안’의 대안 될까?
페기다 운동에 직접 참여한 유일한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창당 첫해 4.7%의 지지율을 얻으며 주목받았다. 독일에서 연방의회나 주의회 진출을 위한 최소 지지율인 5%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창당 이듬해인 2014년 치른 브란덴부르크·작센·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는 모두 5% 지지율을 넘겨 주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창당 당시엔 유로(Euro)화에 반대하는 보수적 색채의 경제학 교수들이 중심을 이뤘으나, 점차 보수 정당인 기민련(CDU)보다 더욱 우파적인 주장을 펴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페기다 시위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된 뒤 독일 내 주류 정당들이 페기다 운동과 거리를 둔 반면, ‘독일을 위한 대안’ 소속 정치인들은 오히려 페기다 시위에 직접 참여하며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페기다 운동을 바라보는 당내 의견이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공동대표 3명 중 2명은 페기다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등 ‘연대’를 시도하는 반면, 나머지 1명인 베른트 루케는 페기다와의 연대 불가를 주장하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2월 함부르크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 함부르크 지역에서는 6%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으나, 페기다 시위 편승이 과연 ‘독일을 위한 대안’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물론 페기다 운동의 성장에 자극받은 반대편의 움직임도 있다. 이날 페기다 시위대의 집회가 열린 장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선 약 5천 명이 모여 반대 시위를 벌였다. 페기다 시위대를 압도하는 규모다. 사민당, 좌파당, 국제앰네스티, 독일노조연맹(DGB) 등의 깃발이 보였다. 반대 시위대들 중 상당수는 페기다 시위대 바로 옆까지 이동해 반이슬람 시위대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미하엘라(43)는 “페기다 시위대를 막기 위해 일부러 페기다 시위 장소로 왔다”며 누구보다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간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자제를 촉구하는 경고 방송을 되풀이해 내보냈지만, 페기다 반대 시위대들은 “나치 페스트를 타파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물러서지 않았다. 애초 페기다 시위대는 브란덴부르크문까지 행진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밤 9시가 되기 전에 자진 해산했다. 이날 독일 전역에서 약 3만 명이 페기다 반대 시위에 나선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독일의 주류 언론과 정계도 페기다 운동을 ‘반인권적 운동’으로 낙인찍는 분위기다. 연방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는 지난 연말 “자비심 없는 세력에게 너무 큰 관심을 주지 말 것”을 호소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신년사에서 “‘우리가 인민’이라고 외치는 세력이 있지만, ‘그들은 너희는 피부색이나 종교 때문에 우리 편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들을 따르지 말 것”을 호소했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은 “페기다에 조금의 관용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유럽이 이슬람화된다는 명제는 공신력 있는 모든 연구에 모순되기 때문이다”라는 논평을 싣기도 했다. 실제로 독일에 사는 무슬림은 400만 명으로 전체 독일 인구의 5%에 불과하다. 그중 200만 명만이 독일 시민권을 지니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출산율도 2.2명으로 그리 높지 않다.

[%%IMAGE2%%]“진짜 문제는 이슬람이 아니야”

그럼에도 페기다 운동의 불씨가 쉽사리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사회 전반에 퍼진 불안감과 위기의식이야말로 페기다 운동의 싹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탓이다. 심리학자 한스 요하힘 마아츠는 최근 독일 공영방송 와의 인터뷰에서 “페기다의 의견을 잘 분석하고 비판을 받아들이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며 “이들의 진짜 문제는 이슬람이 아니라 경제위기, 환경문제, 사회갈등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기다 시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슬람화는 그냥 모일 구실일 뿐”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불평등과 복지망의 해체 등 삶을 위협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결과가 냉정한 현실을 잘 드러내준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페기다 운동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독일인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엠니트’에 따르면, 동독인 53%, 서독인 48%가 ‘페기다 시위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조사기관 ‘포르자’의 여론조사에선 29%가 ‘독일이 이슬람 영향권에 있으므로 페기다 시위가 정당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13%는 ‘페기다 시위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사회 불만 세력을 등에 업은 인종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목소리가 커질 토양은 충분한 셈이다.

베를린(독일)=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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