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을 힘으로 빼앗으면 안 된다. 유엔헌장에 그렇게 적혀 있다. 빼앗은 남의 땅으로 제 사람을 실어날라서도 안 되며, 그 땅에 살던 이들의 삶에 간섭해서도 안 된다. 역시,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협정에 그렇게 적혀 있다. 협정에 서명한 나라에선 ‘법’이란 얘기다.
옆방의 대식가, 부스러기라도 건지려면…
3년여의 휴지기를 거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지난 8월14일 예루살렘에서 재개됐다. 정확한 장소도, 논의된 의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언론의 현장 취재도 차단됐다.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서란다. 그런데 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상징후’가 포착됐다.
협상 개시 사흘 전인 지난 8월11일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 확대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동예루살렘 외곽 3개 지역에 793채,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394채씩 유대 정착민이 살 집을 새로 짓겠다는 게다. 팔레스타인 쪽은, 당연히 반발했다. 2010년 평화협상이 결렬된 것도,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확대 건설 때문이다.
이스라엘 쪽은 사뭇 다른 해석을 내놨다. “새로 정착촌이 들어설 부지는 향후 평화협상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로 남게 될 지역”이라는 게다. 협상 시작도 전에, 그 결과를 미리 정해놓은 셈이다. 그럼 협상을 중재한 미국의 반응은 어땠을까? 콜롬비아를 방문 중이던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8월12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정착촌 확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이에 대해 양해를 할 것으로 본다. 적대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국경 획정 문제가 풀리면, 정착촌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빨리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정착촌 건설 예정 부지는 1967년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지역이다.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한 유대인은 약 50만 명, 불법 정착촌은 100여 곳에 이른다. 후안 콜 미국 미시간대 교수(중동사)는 자신의 블로그 ‘인폼드 코멘트’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평화협상은 영토주권을 지닌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 나라가 세워질 바로 그 땅을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은 옆방에서 케이크를 먹어치우고 있는 대식가와 협상을 하는 것과 흡사하다. 빨리 타결된다면, 부스러기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케리 장관이 ‘빨리빨리’를 입에 올린 것도 이 때문인가? 이스라엘 정부는 8월13일에도 “동예루살렘 지역에 정착민용 주택 900채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만3천명 풀어주고 8만6천명 잡아들이고
따져볼 게 하나 더 있다. 는 8월12일치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협상을 앞두고 정착촌 확대 계획을 밝힌 것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에 대한 보수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럴까? 이스라엘 쪽은 협상 재개에 앞서 ‘선의의 표시’로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 이전에 체포·구금된 팔레스타인 활동가 104명을 석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 대상은, 물론 이스라엘 당국이 정한다.
협상 전날인 8월13일 이스라엘은 이 가운데 26명을 석방했다. 모두 20년 이상 복역한 ‘장기수’다. 오슬로협정 체결 당시에도,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여러 차례 ‘수감자 석방’을 약속하고 또 실행에 옮겼다. 팔레스타인 시민단체 ‘아다미어 수감자 지원 인권협회’의 자료를 보면, 오슬로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석방한 팔레스타인 수감자는 모두 2만3천여 명에 이른다.
문제는, 같은 기간 이스라엘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모두 8만6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체포·구금했다는 점이다. 1명 풀어주고, 3명 붙잡아들인 꼴이다. 아디미어 인권협회가 “형기 대부분을 채운 장기수 몇 명 석방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불법적이고 자의적인 인신 구속 관행을 감추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묻게 된다. ‘평화협상’, 대체 정체가 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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