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단체 ‘알카에다’를 창설한 오사마 빈라덴은 2011년 5월2일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서 미군의 손에 사살됐다. 주검은 수장됐다.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에 똬리를 틀었던 알카에다는 미국의 지속적인 공세로 풍비박산이 났다. 무인항공기(드론)를 이용한 알카에다 지도부 사살 소식은 외신을 타고 정기적으로 들려온다. 9·11 동시테러 12주년을 코앞에 둔 지금,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발령한 ‘테러경보’가 생뚱맞게 보이는 이유다.
‘정보’ 출처 NSA 해외 도·감청 프로그램
지난 8월2일 미 국무부는 ‘해외여행 경보’를 내놨다.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테러 공격 가능성이 높다”는 게 뼈대였다. 8월3일엔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주재로 백악관에서 긴급 안보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미 정보 당국이 해외 통신감청을 통해 확보한 테러 관련 정보가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핵심만 추리면 “미국과 서방의 ‘이익’에 중대한 위협이 곧 가해질 것”이란 게다. 이날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으로 불리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대 외교공관 22곳을 잠정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례적인 일이다.
같은 날,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도 ‘테러경보’를 발령했다. 인터폴은 자료를 내어 “최근 이라크·리비아·파키스탄에서 잇따른 교도소 탈주 사건으로 알카에다 조직원을 포함한 테러 용의자 수백 명이 탈출했다”며 “(빈라덴 사후 알카에다 최고지도자로 떠오른) 아이만 알자와히리도 최근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 메시지로 예멘과 아프간에서 미국이 벌이고 있는 ‘드론 전쟁’에 대한 보복에 나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튿날인 8월4일엔 상하 양원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테러경보’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공화당 색스비 챔블리스 상원의원은 〈NBC방송〉에 출연해 “테러범들은 그동안에도 라마단 종료를 앞두고 활발히 움직여왔다”며 “9·11 동시테러 이후 최악의 테러 위협”이라고 말했다.
피터 킹 하원 대테러·정보소위원회 위원장은 〈CNN방송〉에 출연해 “심각한 사건이 모의되고 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원 정보위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도 같은 방송에 나와 “테러 위협은 현존하고, 이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보보고 내용도 구체적이었다”며 “공관 잠정 폐쇄 조처는 올바르고 합리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정보’의 출처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로 지구촌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국가안보국(NSA)의 해외 도·감청 프로그램인 것으로 전해졌다. 〈가디언〉은 8월4일자에서 “비밀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확보한 (알카에다 지도부의) 통화 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 NSA는 테러 위협이 9·11 동시테러 직전 수준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빈라덴 죽었지만, 알카에다 살아 있다
이를 두고 챔블리스 의원은 “NSA의 감청 프로그램이 왜 중요한지를 새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도 “대단히 위협적인 상황을 사전에 인지함으로써, NSA의 감청 프로그램이 그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킹 의원은 “이번 사건은 9·11 동시테러 이후 알카에다가 되레 강력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 12년에 다가서고 있는 ‘대테러 전쟁’의 현주소다. 마이클 처토프 전 국토안보부 장관은 <abc></abc>“단일한 조직이었던 알카에다가 분화를 거듭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위협적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공세를 피해) 알카에다 조직은 지구촌 여기저기로 산개했고, 새로운 이념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도 끊임없이 수혈되고 있다. 이제는 서아프리카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땅덩어리가 ‘전투지역’이 돼버렸다.”
그렇다. 빈라덴은 죽었지만, 알카에다는 살아 있다. 미군의 포화를 피해 일찌감치 아프간 산악지대 근거지를 벗어난 알카에다는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의 알카에다’(AQMI)로, ‘아라비아반도의 알카에다’(AQAP)로 뻗어나갔다. 거짓 명분에 기댄 침공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수감자 학대 사건으로 상징되는 점령군의 횡포는 알카에다가 이라크 땅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더욱 불을 뿜고 있는 ‘드론 전쟁’은 미군의 피 대신 현지 주민들의 피를 대가로 요구했다. 그 분노에 기대 또 다른 세대의 알카에다 추종자가 양산됐다. ‘아랍의 봄’이 만들어낸 혼란도 알카에다 확산의 자양분 구실을 했다. 지난해 9월11일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 영사관을 겨냥한 조직적 테러는 내전이 끝난 리비아에 알카에다 세력이 자리를 잡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어디 그뿐일까. 서아프리카 말리의 북부에서도 리비아 전선에서 물러나온 알카에다 연계 세력이 발호하고 있다. 내전이 불을 뿜고 있는 시리아에선 알카에다 연계 세력이 반군 진영을 휘젓고 있다. 브루스 리들 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8월7일 인터넷 매체 〈데일리비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알카에다 3.0의 등장”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게다.
알카에다가 지구촌 차원에서 악명을 떨친 첫 번째 테러는 1998년 8월7일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주재 미 대사관을 겨냥한 차량폭탄 공격이었다. 두 사건으로 줄잡아 220명이 목숨을 잃었고, 4천여 명이 다쳤다. 이후 미 정보 당국의 ‘최우선 검거 대상’에 이름을 올린 빈라덴은 3년여 뒤 9·11 동시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른다. ‘알카에다 1.0’이다.
테러정보의 진앙지 예멘에 드론 공격
9·11 동시테러 직후부터 미국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빈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부의 신병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탈레반이 미적거리는 사이 조지 부시 행정부는 가차 없이 전면 침공을 단행했다. 동시테러 발생 불과 26일 만의 일이다. 알카에다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가르는 험준한 산악지대의 메마른 땅에 몸을 숨겼다. 빈라덴이 사살되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알카에다 2.0’이다.
리들 연구원은 빈라덴 사살 이후 알자와 히리가 장악한 알카에다를 ‘버전 3.0’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멀리 떨어진 적 보다는 자기 땅에 있는 적에 집중하는 것”이 새로운 알카에다의 전형이란다. 그의 지적 을 귀담아 들어보자.
“최근 알자와히리는 파키스탄의 은신처에 서 모든 이집트 국민에게 군부 쿠데타에 맞 서 싸우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집트 군부가 미국의 꼭두각시이며, 쿠데타 비용 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왕정국가들이 부 담했다는 게다. 그는 이어 선거를 통해 이슬 람주의 세력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전’을 벌이는 것만이 권력으로 가는 유일 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알자와히리는 군부의 쿠데타가 몇백만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을 급진화해 알카에다 동조 세력으로 만들 수 있으리란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보 당국은 8월7일 예멘 남부 하드라 마우트의 와디 알자드 지역 등 3곳에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예멘은 이번 테러경보의 ‘진앙지’로 알려져 있다. 이날에만 모두 14명 의 ‘알카에다 요원’이 사살됐다. 8월6일에도 예멘 각지에서 벌어진 드론 공격으로 7명이 숨졌다.
무엇이 미국을 위협하는가?
〈AP통신〉은 8월8일 예멘 보안 당국의 자 료를 따 “(미 정보 당국이 테러 위험을 감지 한) 7월27일 이후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예 멘에서만 모두 34명의 ‘테러 용의자’가 목숨 을 잃었다”고 전했다. 외교공관 문을 닫아 건 사이, ‘드론 전쟁’이 불을 뿜은 게다. 샤디 하미드 브루킹스연구소 카타르 도하센터 연 구원은 <ap></ap>대테러 전쟁 12년, 무엇이 미국을 위협하 는가?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23일 워싱 턴의 국방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영원히 계속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 는 이날 연설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 가운 데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의 말을 따 이렇게 말했다. “지속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 선, 어떤 나라도 자유를 지켜낼 수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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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형제단 부대표 면담한 미·EU 대표 지도부 석방 미끼로 시위 중단 회유했나 ‘이드 알피트르.’ 무슬림의 성스러운 달, 라마단 금식월의 종료를 알리는 축제가 개막됐다. 아랍 권 최대 인구를 자랑하는 이집트에서도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기도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카이로 중심가 타흐리르 광장에선 군부를 지지 하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공화국수비대 본부가 있는 카이로 외곽의 나스르시티와 인근 기자에 선 쿠데타로 쫓겨난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 드 무르시 대통령의 복권을 요구하는 성난 목소 리가 메아리쳤다. 올해 라마단 기간 내내 되풀이 돼온 일상이다. 이슬람권 전역의 미국 외교공관이 ‘테러경보’로 긴장감에 휩싸인 지난 8월4일 윌리엄 번스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집트에서 비밀스런 회동을 했다. 번스 부장관을 비롯해 베르나르디노 레온 유럽연합(EU) 협상대표, 칼리드 알아티야 카타르 외교장 관, 압둘라 빈 자예드 아랍에미리트연합 외교장관 등 4명이 만난 인물은 수감 중인 카이라트 엘샤테 르 무슬림형제단 부대표다. 엘샤테르 부대표는 형제단 지도부 가운데 ‘온건파 실용주의자’로 꼽힌다.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지난 7월27일 새벽 나스르시티에서 친무르시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이후,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 제단 쪽에 지속적으로 ‘협상’을 제안했다. 군부는 구체적인 협상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인디펜던 트〉와 〈로이터통신〉 등이 8월5일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상황은 대충 이런 식이다. “예전으로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러니 현실을 받아들여라. 임시정부 내각 참여를 보장한 다. 구금된 지도부는 석방하겠다. 형제단의 자산 동결 조처도 해제하겠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사임 서를 제출하면, 안전하게 해외 망명을 떠날 수 있도록 돕겠다. 이제 그만 시위를 멈춰라.” 번스 부장관을 비롯한 ‘4인방’의 제안도 엇비슷하다는 게 〈아흐람〉 등 현지 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이 다. 앞서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정책 담당 집행위원도 수감 중인 무르시 대통령을 만나 똑같은 취지 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무르시 대통령은 “자진 사임은 없다”며 말을 자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엔, 결과가 달랐을까? 이집트 관영 〈메나통신>은 8월5일 아메드 엘무슬리마니 임시정부 대변인의 말을 따 “형제단 쪽에 양보안을 제시한 바 없다. 친무르시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으면, 물리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전 했다. 명절을 앞둔 시점임에도, ‘협상’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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