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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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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두른 토건 권위주의, 달아오르는 ‘불만의 여름’

대규모·장기화하는 터키 반정부 시위… 성장 앞세워 1인통치 강화해온 에르도안 총리 최대 위기
등록 2013-06-11 15:16 수정 2020-05-03 04:27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터키에서 연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28일 평화로운 시위를 경찰이 강경 진압하면서 촉발된 시위 사태는 쉽게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터키의 봄’이니, ‘불만의 여름’이니 하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결이라고? 글쎄…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을 아우른다. 도시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그 경계다. 해협의 왼쪽, 유럽 지역에 탁심 광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고급 식당가와 명품 상점, 인터콘티넨털·리츠칼튼 등 유명 호텔이 즐비한 그곳은 이른바 ‘현대 이스탄불’의 심장부로 통한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오른쪽)는 박정희 시대와 새마을운동을 맹목적으로 미화해온 학교 당국과 재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교수 추대에서 배제됐다.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에 대해서는 아예 파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오른쪽)는 박정희 시대와 새마을운동을 맹목적으로 미화해온 학교 당국과 재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명예교수 추대에서 배제됐다. 임정철 영남이공대 교수에 대해서는 아예 파면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개발 반대 점거시위에 최루탄 난사한 경찰

광장의 이름은 ‘분배’와 ‘나눔’을 뜻하는 아랍어 ‘타크심’에서 나왔단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오토만 제국 시절이던 17세기 술탄 마흐무드 1세 시절부터, 이스탄불의 북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그곳 광장 부근에서 모아 도시 전역으로 나누었다”고 전한다.

광장 한복판엔 터키공화국 수립 5주년을 기념해 조각가 피에트로 카노니카가 1928년 제작한 ‘공화국 기념비’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곁에는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탁심 광장이 숱한 문화행사는 물론 각종 집회·시위의 무대인 것도 이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울의 광화문 광장을 떠올리면 되겠다.

그곳 한켠에 게지 공원이 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 유일하게 남은 녹지란다. 지난 5월26일 게지 공원에서 50여 명이 참가한 작은 집회가 열렸다. 이스탄불 시 당국은 이미 공원을 밀어내고 1940년 철거된 군부대 청사를 재건축하기로 결정한 터다. 겉모양은 군부대 청사라지만, 속내는 다르다. 새로 지을 건물에는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계획이다. 이스탄불에는 쇼핑몰이 이미 92개나 있단다. 은 6월5일 인터넷판에서 “공사를 따낸 칼리온 그룹은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전했다.
”우리 모두가 밤을 새워 (공원의) 나무를 지키자. 그리고 아침이면, 이를 새들에게 보고하자.” 는 첫 시위에 참가한 진보 성향의 평화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시리 수레이야 온데르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연좌 시위가 벌어지면서 불도저 등 중장비가 공원에 진입하지 못했다. ‘공사 방해’를 이유로 경찰이 출동해 최루가스 스프레이를 뿌리며 해산에 나섰지만, 시위대는 버텨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시위대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공원 한켠엔 텐트촌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오큐파이 게지’의 시작이다. 5월30일에도 시위대 해산 작전에 나섰던 경찰은 이튿날 다시 들이닥쳤다. 이번엔, 태도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시위대가 텐트에서 쉬고 있는 사이 공원을 철저히 봉쇄한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경찰 헬리콥터도 상공에서 최루탄을 쏘아댔다. 숨이 막힌 시위대가 탈주에 나섰다. 유일한 통로는 벽을 타넘는 것뿐이었다. 벽은 곧 무너졌다. 이날 밤에만 줄잡아 100여 명이 다친 이유다.

“지금까지 정부가 저지른 모든 탄압에 맞서자”
“이젠 나무가 문제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정부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모든 탄압에 맞서야 한다. 더는 못 참겠다. 나라 꼴이 엉망이다.” 트위터를 통해 집회 소식을 알고 현장에 나왔다는 대학생 메르트 부르게는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코레이 칼리스칸 보스포루스대학 교수(정치학)는 “정부는 없고, 오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만 있을 뿐”이라며 “집권당 지지자조차 정부가 이성을 잃었다고 말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바야흐로 ‘불만의 여름’이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랬다. 게지 공원의 평화로운 시위가 강경 진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나라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터키 내무부가 6월2일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날 하루에만 전국 67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200건이나 벌어졌단다.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에르도안 총리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는 잇따라 텔레비전에 출연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시위 사태는 공원 개발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다. 철저히 이념적이다. 나와 집권당에 대한 도전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여당의 표를 갉아먹기 위해 야당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스탄불 시장 출신인 에르도안 총리는 2001년 AKP를 창당하고, 이듬해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전체 550석 가운데 363석을 차지한 게다. 그는 2007년과 2011년 총선에서도 각각 341석과 326석을 거머쥐며, 터키 역사상 처음으로 3선에 성공한 총리가 됐다.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2015년 총선에서 재집권이 불가능한 그는, 내년에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힌 상태다.
2002년 집권 이후 에르도안 총리는 터키 경제에 ‘터보 엔진’을 달았다. 지난 10년여 터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7.3%에 이른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3배 가까이 늘었다. 집권 초기 235억달러에 이르렀던 국제통화기금(IMF) 차관은 지난해 9억달러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반면 2002년 75억리라에 그쳤던 교육 예산은 의무교육 확대에 발맞춰 2011년 340억리라를 돌파했다.
AKP의 집권을 두고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에서 이슬람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의심했던 서구 언론들도 그의 ‘온건 이슬람주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무슬림의 옷을 입은 보수파’란 지적도 나왔다. 일부에선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기독민주당(CDP)의 이슬람권 버전”이란 촌평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5월16일 미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에르도안 총리가 “예전엔 터키인들이 세계에 대해 얘기했다. 이젠 세계인들이 터키에 관한 얘기를 한다”고 내세울 만했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터키의 지난해 실업률은 8%대를 유지했다. 비결? ‘토건’이다. 이스탄불의 동과 서를 잇는 세 번째 교량이 지난 5월29일 착공됐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모스크(사원)를 건립할 예정이다. 보스포루스의 물줄기를 끌어다 선박 운항이 가능한 운하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미 2개의 국제공항이 있는 이스탄불에 290억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세 번째 국제공항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터키가 흥청이는 이유다.

술탄·히틀러로 풍자되는 에르도안
모든 게 좋을 순 없었다. 처음엔 대학 구내에서 주류 판매를 통제했다. 곧이어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에서 음주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됐다. 버스 정거장마다 ‘도덕적으로 행동하자’란 구호가 등장하더니, 인터넷 검열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는 ‘사악한 것’이라고 매도됐고, 텔레비전에 출연한 총리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알코올중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버젓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군인과 학자, 정치인과 언론인이 줄줄이 ‘대중 선동’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터키인권협회 등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에르도안 총리 정부 아래서 투옥된 언론인은 모두 800명에 이른다. 케밥을 얻은 대가로 자유와 인권을 내준 셈인가?
게지 공원엔 에르도안 총리를 오토만제국의 술탄에 빗댄 그림이 내걸렸다.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합성사진도 등장했다. 몰려든 젊은이들은 에르도안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캔맥주를 마셨다.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자제하라’는 정부 방침에 반발한 연인들은 도처에서 ‘뽀뽀 시위’를 벌였다. 밤이 되면 차랑에서 경적을 울리고, 건물 발코니로 몰려나온 주민들이 냄비와 팬을 두드리며 시위대를 응원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총리는 6월3일 모로코·알제리·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3개국 순방길에 나섰다.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게다. 이튿날엔 뷜렌트 아른츠 부총리가 나서 “애초 시위대의 행동은 정당했고, 합법적이었다.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에둘러 사과를 했다. 이쯤에서, 상황을 끝내자는 뜻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위는 밤마다 이어졌다. 이미 3명이나 목숨을 잃은 터다. 지난 6월2일 이스탄불에서 시위 도중 차량에 치여 숨진 메흐메트 아이발리타스(20)와 안타키아에서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숨진 압둘라 코메르트(22)에 이어, 6월5일엔 앙카라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뇌사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던 인권운동가 에템 사리술루크(26)가 끝내 숨졌다. 터키의학협회(TMA)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6월6일 현재 이번 시위 사태로 인한 부상자가 모두 410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43명은 위중한 상태란다.
에르도안 총리는 6월7일 새벽 귀국했다. 터키 영자지 는 이날 인터넷판에서 “1천여 명의 AKP 지지자들이 이스탄불 공항으로 몰려나와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외쳤다”며 “이스탄불 시 당국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 지하철을 새벽 4시까지 연장 운행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즉석 연설에 나서 “고작 나무 15그루 살리겠다고 시작한 시위로 3명이나 목숨을 잃었다”며 “모두가 선거 결과를 존중해야 하며, 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터키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후에 테러단체” 음모론 지피는 정부
앞서 그는 마지막 순방지인 튀니지에서 6월6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 초기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그는 “거리를 파괴하는 집단에 대해선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시위 사태의 배후에 ‘테러단체’가 있으며, 체포된 시위대 가운데 외국인도 7명이나 끼어 있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어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게지 공원 재개발 계획도 예정대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에선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노래와 춤을 섞어 밤샘농성을 이어갔다. 게지 공원 강경 진압 이후 벌써 7일째다. 수도 앙카라의 쿨루구 공원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터키 국가를 부르고 맥주를 마시며 밤을 지새웠다. 2011년 총선에서 AKP는 49.83%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날 밤 시위대는 ‘우리는 (나머지) 49%다’라고 쓴 펼침막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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