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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테러전이 오바마를 규정한다

공화당, 지난해 리비아 미 영사관 테러사건 등 ‘3대 악재’로 오바마 탄핵몰이… ‘테러와의 전쟁’ 출구전략이 명운 가르나
등록 2013-06-02 15:12 수정 2020-05-03 04:27

취임 4개월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가 숨가빠 보인다. 위기다,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악재’가 잇따르고 있으니 위기는 위기인데, 지지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인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이래 지난 40년 세월, 미국에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이 걸어간 길을 오바마 대통령 역시 고스란히 밟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돌이켜보자. 공화당 출신인 닉슨 대통령은 1972년 재선 과정에서 불거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의회가 탄핵 절차를 개시하자,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1974년 8월6일 자진해서 사임했다.
국세청, 보수단체 표적 세무조사 논란
제럴드 포드·지미 카터 행정부를 지나, 닉슨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인물은 같은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두 번째 임기 내내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어수선하게 보내야 했다. 이때도 미 의회에선 이른바 ‘ㅌ으로 시작되는 낱말’(I-Word)이 거론됐었다. ‘탄핵’(Impeachment) 말이다.
조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 이어 민주당 출신으론 존 케네디 이후 처음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6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ㄱ다. 클린턴 행정부 2기는 출범하자마자 불거지기 시작한 잇따른 ‘성추문’으로 휘청였다. 임기 말에는 이른바 ‘부적절한 성관계 의혹’에 대한 거짓 증언으로 사법 절차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의회에서 실제 탄핵심판까지 받아야 했다. 1999년 2월12일 미 상원은 탄핵 정족수인 의석 3분의 2에서 17표가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후임인 조지 ‘아들’ 부시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4년 대선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둔 그 역시 재선 직후 내리막길을 치달았다. 그의 집권 2기는 온통 이라크 침공 문제로 들끓었다. 민주당 진보파의 상징이던 데니스 쿠시니치 하원의원은 2008년 6월10일 무려 35가지 ‘혐의사실’을 적시해, 부시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다. 그해 7월25일엔 찬성 251표 대 반대 166표로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탄핵심판을 진행해야 할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더는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던 게다. 이미 대선전이 본격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개월여 뒤, 부시 대통령은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
다시 민주당 차례가 왔다. 2008년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임기 4년 동안, 공화당은 그의 재선을 막는 데 모든 정치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탈환에 성공한 이후엔, 이런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공화당 일각에서 ‘ㅌ으로 시작되는 낱말’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대선 패배 직후다.
빌미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3대 악재’가 대표적이다. 첫째, 9·11 동시테러 11주년이던 지난해 9월11일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발생한 미 영사관 테러사건이다. 애초 미 국무부 쪽은 “시위 도중 벌어진 우발적 사건”이라고 발표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알카에다의 현지 협력세력이 저지른 조직적인 테러였음이 드러났다.
둘째,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국세청(IRS)이 170여 보수단체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를 했다는 의혹이다. 세무조사 대상에는 공화당 우파의 핵심 지지 기반인 극우 성향의 풀뿌리 정치단체 ‘티파티’도 포함됐다. 스티븐 밀러 IRS 청장 권한대행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미 지난 5월15일 사임했지만, 의회를 중심으로 논란은 계속 번지고 있다.
셋째, 기밀누설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법무부가 지난해 4~5월 <ap>의 뉴욕·워싱턴 지사 등에 설치된 20여 개 전화회선의 통화기록을 들여다본 사건이다. 앞서 <ap>은 2009년 12월25일 중앙정보국(CIA)이 예멘에서 적발해낸 폭탄테러 예비음모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를 지난해 5월7일 특종 보도한 바 있다.
“의도적이고, 목적의식적으로 미국민을 속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화당 제이슨 샤페츠 하원의원(유타주)은 지난 5월14일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벵가지 테러 사건에 대한 정보를 오바마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은 명백한 ‘탄핵 사유’가 된다는 게다.
전쟁 자체도 거대한 비밀이 되다
샤페츠 의원뿐이 아니다. 공화당 중진인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오클라호마주)은 지난 5월11일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에 출연해 “오래지 않아 국민이 ‘ㅌ으로 시작되는 낱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선 먼저 상원에서 탄핵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수를 공화당이 확보하는 게 순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벌써부터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벼르고 있는 겐가?
“오바마 행정부 들어 전면적인 군사작전 대신 특수부대나 CIA 요원을 동원한 전격 기습작전으로 대테러 전쟁 수행 방식이 바뀌었다. 이 때문에 대테러 전쟁과 관련된 정보 대부분이 비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잇따르는 악재는 이런 비밀주의가 촉발한 측면이 강하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논란을 자초한 셈이다.”
외교안보 전문매체 는 지난 5월17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실제 부시 행정부 시절의 과도한 군사력 사용을 비판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병력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군사작전보다 무인항공기(드론)나 첩보요원을 동원한 표적공격을 선호했다. 오바마 행정부 들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예멘과 소말리아 등지에서도 무인항공기 공격이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는 이렇게 덧붙였다.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 자체가 비밀스럽다보니, 전쟁 자체도 거대한 비밀이 되고 말았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과 같이 대통령이 생색을 내고 싶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정보가 철저히 가려졌다. 그리고 관련 사실이 언론에 유출되면, 법무부가 나서 제보자 색출에 열을 올리는 일이 되풀이됐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집권 4년 동안, 법무부는 이른바 ‘강화된 심문기법’이라 불린 CIA의 고문 수사와 관련된 의혹을 폭로한 내부고발자에게까지 ‘기밀 유출’의 죄를 물었다. 이때 동원된 법 규정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언비어 살포자를 색출하기 위해 입법한 이른바 ‘방첩법’이다. 입법 이후 지금껏 단 3차례 적용됐던 이 법조항은, 오바마 행정부 1기에만 모두 6차례나 ‘빛’을 봤단다.
‘비밀주의’는, 견제와 균형을 핵심 작동 기제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5월16일 미 상원 국방위원회의 청문회장에서 연출된 풍경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청문회의 주제는 2001년 9·11 동시테러 직후 의회가 무력분쟁과 그에 따른 군사력 사용 여부 결정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이른바 ‘군사력 사용권한’(AUMF)에 관한 것이었다. 로버트 테일러 국방부 법무국장 대행과 마이클 시헌 국방부 특수전·저강도전쟁 담당 차관보 등 국방부 고위 인사 4명이 증언을 위해 출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든 뭐든 간에, ‘테러와의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나?”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질문에 시헌 차관보는 “향후 10년에서 최대 20년까지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레이엄 의원은 이렇게 물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법적 권한을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나? AUMF에 따라 시리아·예멘·콩고 같은 곳에 언제든 지상군 병력을 파견하는 결정을 내릴 권한이 대통령에게 있는 건가?” 시헌 차관보는 물론 테일러 국장 대행 등도 똑같은 대답을 내놨다.
“지상군 파병과 관련해선 국내법적 측면과 국제법적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국내법적 측면에서만 보면, AUMF에 따라 대통령은 파병 결정을 내리는 법적 권한을 확보하고 있다.”
“대통령의 AUMF은 의회 권한 침해”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AUMF의 성격과 법적 한계에 대해 논란은 지속돼왔다. 민주당 진보파와 평화단체 등 시민사회에선 9·11 동시테러를 저지른 세력에 대한 응징에 국한된 것이라고 지적해왔다. 반면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 진영에선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포괄적인 전쟁수행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굳이 따지자면, 오바마 대통령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부터 후자 쪽에 가까웠다. 그는 AUMF에 기대 추진됐던 이라크 침공을 처음부터 반대했기 때문이다.
“상원의원 노릇을 한 게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청문회는 내가 의회에 들어온 이래 가장 충격적이다. 증언 내용이 충격적일 정도로 듣기 거북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미합중국 헌법이 사실상 다시 쓰였다.” 이어 질의에 나선 무소속 앵거스 킹 의원(메인주)은 이렇게 질타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강조했다.
“헌법 제1조 8항은 ‘전쟁선포권’을 명백히 의회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전쟁을 치르는 책임을 지지만, 그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는 권한은 의회에 있다. 대통령이 의회의 허락도 없이 예멘 등지에 지상군을 파병한다면, 이는 헌법이 부여한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쯤 되면, ‘탄핵 사유’가 하나 더 늘어난 건가?
‘3대 악재’의 파장이 어디까지 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내년 중간선거와 2016년 대선까지 바라보고 있을 공화당으로선, 어떻게든 ‘유효기간’을 늘리려 들 게다. 벵가지 테러와 관련해 애초 오바마 대통령 공격에 집중했던 공화당이 최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쪽으로 표적을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차기 대선의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 미국은 교차로에 섰다. 대테러 전쟁의 성격과 범위를 새로 규정해야 할 시점이 된 게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테러 전쟁 자체가 우리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23일 오후 2시께(현지시각)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의 포트맥네어에 자리한 국방대학교(NDU)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 2기 출범 이후 처음으로 외교안보 정책의 대강을 밝히는 자리였다. 이날 1시간 남짓한 오바마 대통령 연설의 핵심은 “AUMF의 법적 효력과 범위에 대해 의회와 긴밀히 논의하겠다”는 말이었다.
전쟁 자체가 우리를 규정할 것
그는 이어 “이 전쟁 역시, 다른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끝을 내야 한다. 역사가 그렇게 가르친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매디슨이 남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에선 자유를 지킬 수 없다”던 경구도 입에 올렸다. 12년째로 접어든 ‘테러와의 전쟁’, 마침내 그 끝이 시작이라도 되는 건가?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이날 인터넷판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표적살인’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적’으로 규정한 이른바 ‘알카에다 협력세력’의 실체도 모호하기만 하다. 의회와 어떤 방식으로 논의해나갈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모호한 것 투성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의 말처럼 지금이라도 대테러 전쟁의 성격과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전쟁 자체가 우리를 규정하게 될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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