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그 콩과 팥을 다시 심어도, 마찬가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생명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생명뿐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5월13일 내놓은 ‘사건번호 11-796’의 판결 결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이른바 ‘보먼 대 몬샌토’ 사건이다.
“다윗과 골리앗? 옳고 그름의 문제!”
피고 버논 휴 보먼(76)은 인디애나주 남서부 농촌에서 대를 이어 콩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다. 원고 몬샌토는,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최대 종자업체다. 사건의 핵심은, 몬샌토가 ‘라운드업’이란 제초제에 내성을 가지도록 유전자조작을 해 1997년 출시한 ‘라운드업 레디’란 콩 종자의 특허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다. 법리를 따져보자.
보먼은 해마다 두 차례 파종을 했다. 첫 번째 파종 때는 몬샌토의 ‘라운드업 레디’ 종자를 구입해 사용했다. 품질이 확인된 종자를 사용해야 수확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을 수확한 땅에 뒤늦게 콩을 파종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시기를 놓쳤으니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다. 굳이 비싼 돈을 들이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파종 때, 보먼은 동네 종묘상에서 몬샌토에 특허료를 지불하지 않은 콩을 사 파종했다. 수확량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달은 여기서 생겨났다.
보먼의 행동을 눈여겨 살피던 몬샌토가 느닷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를 받은 종자를 허가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했다는 게다. ‘라운드업 레디’ 종자를 개발한 이래, 몬샌토는 지금까지 모두 146명의 농민을 상대로 엇비슷한 특허권 침해 소송을 냈다. 법원 밖 협상으로 해결된 게 대부분이지만, 정식 재판을 거친 11건의 사건은 모두 몬샌토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보먼의 사정도 엇비슷했다. 2007년 1심에 이어 2011년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몬샌토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권 침해 주장을 받아들여 보먼에게 모두 8만4456달러를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이 유지됐다. 한 가지 달랐던 것은, 보먼은 이를 연방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는 점이다. 대법원 심리 개시에 앞선 지난 2월9일 보먼은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뭐, 이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건, 그저 옳고 그름의 문제일 뿐이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을 통해 보먼이 펼친 논리는 간단했다. “콩은, 다른 작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복제한다. 콩을 심어 콩을 얻었고, 그 콩을 심었다. 애초 콩 종자를 비싸게 샀으므로, 이미 몬샌토에 특허권료를 지불한 것이다. 이를 심어 키워서 얻은 콩을 다시 파종한 것이 특허권 침해라면, 특허를 침해한 것은 내가 아니다. 스스로를 ‘복제’한 콩, 결국 콩이 문제다.”
3개 업체가 53% 시장 장악, 가격은 폭등
재판은, 사실 해보나마나였는지 모른다. 지난 2월19일 첫 변론 때부터 대법관들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은 2월20일치 기사에서 “대법관 전원이 보먼 쪽 변호인단의 주장을 처음부터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전했다. 실제 이날 변론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단다.
“일단 종자를 팔면, 그것으로 특허권이 사라진다고 생각해보자. 누구든, 단 한 번만 종자를 사려 들 것이다. 얼마든지 종자를 키워 새 종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누가 새로운 종자 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할 것인가? 첫 번째 종자가 팔린 뒤 특허의 가치가 유실된다면, 기술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자를 사고, 심고, 수확해서, 먹거나 파는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종자를 사서, 심고, 수확해 다시 심는 것만 제한된다. 법이 보호하고 있는 종자의 특허권에 그렇게 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은 “콩을 비난하는 변론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5월13일 판결에서,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몬샌토의 손을 다시 한번 들어줬다.
미 유기농·환경단체 식품안전센터(CFS)가 지난 2월 내놓은 ‘종자 거인과 미국의 소농’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2013년 1월 현재까지 몬샌토는 27개 주에서 농민 410명과 소규모 가족형 농장주 56명을 상대로 144건의 특허권 침해 소송을 벌이고 있다. 막대한 법률비용을 들여서라도 지켜야 할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종자에 관한 현행 특허권에 따르면, 농민들은 해마다 값비싼 종자를 새로 구입해 파종을 해야 한다. 문제는 몬샌토를 비롯한 단 3개의 거대 종자업체가 지구촌 상업용 종자 시장의 53%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종자에 관한 독점이 강화하면서, 1995~2011년 콩 종자 가격은 325%나 폭등했다”며 “같은 기간 옥수수 종자와 면화 종자 가격도 각각 259%와 516%까지 치솟았다”고 지적했다.
“보먼 대 몬샌토 사건은 1차적으로 종자와 특허권의 범위에 관한 얽히고설킨 법리에 대해 법원의 해석을 묻고 있다. 하지만 좀더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생명이 만들어낸 또 다른 생명에 대해, 개인이나 기업이 ‘통제권’을 가질 수 있느냐에 관한 물음 말이다.” 조지 킴브렐 CFS 법률국장(변호사)은 보먼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변론이 시작된 2월19일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본성이 있다. 특허권이 인정됐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자연적으로 복제된 생명에 대해서까지 특허권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몬샌토의 주장이 우려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컴퓨터 부품과 달리, 종자는 삶에 필수적이다. 컴퓨터 부품이 없어도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종자가 없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 잠재적 결과가 더욱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콩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연합체가 내놓은 반응이다. 대니 머피 미 대두농민협회(ASA) 회장은 이날 성명을 내어 이렇게 주장했다. “오는 2050년이면 지구촌 인구가 90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시기에 인류를 먹여살리는 문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미국 농민들이 최첨단 기술의 수혜를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보먼을 비롯한 미국의 대두 재배 농민들의 이같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를 어쩌랴.
“종자 회사가 생명의 주인 행세”
태초에 종자가 있었다. 이를 심고, 정성껏 가꿔, 인간이 먹고살았다. 그러고도 남은 작물은 이듬해 다시 종자가 됐다. 인류 농업사에서, 종자는 ‘공공의 자산’이었다. 세계적인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지난 3월27일 인도 영자지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인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몬샌토의 종자 독점은 우려스러운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종자 특허권 장악을 통해 이제 몬샌토는 지구촌 생명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생명을 키우는 농민들에게 지대를 받아 챙기면서 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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