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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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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양어업 국격이 침몰했다

미국 상무부 한국에 대한 불법어업국 지정 배경… 불법어업 규제에 대한 국제사회 흐름 역행하며 업계 감싸는 행태 원인
등록 2013-04-20 15:44 수정 2020-05-03 04:27

국제 원양어업 무대에서 한국의 ‘국격’이 침몰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상무부 산하 해양대기청(NOAA)은 한국 정부에 서신을 띄웠다. 한국이 불법어업국(IUU·Illegal, Unreported, Unregulated)으로 지정됐음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을 일컫는 IUU는, 국내외 수산물 자원 보호 관련 법규나 의무를 위반하는 어업 활동을 통칭한다. IUU는 다시 말해 ‘해적’ 조업이다. 전세계 수산물 어획량의 10~30%가량이 IUU 방식으로 잡힌다. 국제환경운동단체 환경정의재단(EJF)은 불법 어업으로 인해 해마다 100억~235억달러(약 11조~26조원) 규모의 수산물 자원이 새어나간다고 밝혔다. 올해 미국 상무부로부터 IUU 국가로 지정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콜롬비아·에콰도르·가나·이탈리아·멕시코·파나마·스페인·탄자니아·베네수엘라 10개국뿐이다. 미국은 이 국가들을 상대로 개별적인 협의를 진행한 뒤 적절한 개선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해당 국적선의 미국 항구 입항 및 대미 수출 금지 등 경제제재를 할 수 있다.
인성기업 남극해서 메로 남획하다 적발
지난 30년간 원양어업 환경은 급변했다. 1982년 유엔 해양법협약 채택에 따른 배타적경제수역(EEZ·자국 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수역) 제도 도입으로 주요 어장의 약 90%가 EEZ로 편입된다. 원양어선은 연안국의 200해리 밖에서 조업을 하거나 입어료를 주고 EEZ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주인 없는 공해(‘공공의 바다’란 뜻으로 특정 국가의 영유권이나 배타권이 인정되지 않는 바다)라고 해서 함부로 들어가 수산물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공해상 수산자원을 관리·보존하는 다양한 지역수산관리기구(RFMO)가 출연했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해 불법 어업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미국은 2006년 수산업법을 개정해 IUU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을 의무화했다. 이런 법률을 기반으로 미 상무부 장관은 자국이 가입한 RFMO의 관리·보존 조치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난 국가들의 목록을 작성해 미 의회에 제출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10년 IUU 방지를 위해, 불법 어획물의 EU 반입 금지법을 제정했다. IUU 어업을 반복적으로 한 선박은, 따로 블랙리스트로 분류해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한국이 불법어업국으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IUU 행위에 대해 느슨한 대응을 했기 때문이다. 2011년 인성실업 소속 인성 7호는 남극해의 한 해역에서 이빨고기(메로) 조업 제한량의 약 4배를 남획하다 적발된다. 남극해는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CCAMLR)에 따라 관리되며, 한국을 포함한 25개 회원국은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 연례회의에서 조업 상황을 점검한다. 미 상무부 보고서는 인성 7호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은 2011년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 회의에서 문제가 된 국적선에 대해 약 1300달러(약 1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해당 선박의 어업 허가를 30일간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많은 정부 대표단은 심각한 불법행위에 비해 한국의 조처가 미흡했다고 봤다. 인성 7호를 IUU 선박 명단에 올리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런 결정을 막았다.” 이빨고기는 1t당 약 2만달러에 팔리는 비싼 어종이다. 지난해 회의에서는 인성실업이 제출한 지난 3년 동안의 단위노력당어획량(CPUE)이 다른 나라 선박들의 수준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으로 평가돼 문제가 됐다. 인성실업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 과학자 대표단이 4월29일 방한할 예정이다.

957호 이슈추적

957호 이슈추적

ADB, 불법 어업으로 연간 1조원 약탈

지난 4월11일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국 원양어업의 불법어업(IUU)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6년 이후 국외 정부나 환경단체 등에 발각된 국제수산기구 법규 위반 및 선상 외국인 인권침해 사례는 모두 34건에 달했다. 그린피스는 “한국이 불법 어업으로 미국과 EU로의 수산물 수출이 타격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해양수산부·외교부·환경부가 협력해 원양업체들이 지속 가능한 어업에 기반한 국제수산기구 보존 조처를 준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보고서를 보면, 서부 아프리카 해역에서 한국 원양어선들의 불법행위가 무더기로 단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동원·신라교역·인터불고 등 15개 업체의 30여 개 선박이 문제가 됐다. 대서양과 인접한 시에라리온·기니 등 서아프리카국 연안에는 수산물 자원이 풍부하다. 최근 이 지역에서도 외국의 ‘수산물 약탈’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개발은행(ADB)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불법 어업으로 약탈된 수산자원은 연간 100만t으로 약 1조원의 가치에 해당된다.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수산물은 중요한 식량자원이자 수입원이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도 IUU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수산물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다.

한국 원양업계가 서부 아프리카 수역에서 잡아들이는 수산물은 연간 6만4천t이며, 이 가운데 4만t이 국내에 반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업 활동을 위해 해당 지역에 지급한 입어료는 2011년 기준 약 58억원이라고 그린피스는 밝혔다. 이에 반해 서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조업선을 가진 한국 업체 인터불고의 연매출은 1조원가량이다. 지난 2월, 라이베리아는 한국 정부에 동원산업 소속 참치어선 프리미어호 등이 2011~2012년 자국 해역에서 위조된 어업권을 갖고 불법 조업을 했다며 조사를 요청해왔다. 동원 쪽은 현지 대리인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라이베리아 정부는 지난 3월 “동원이 어업허가권 신청 계약 내용이나 신청 비용을 입금한 내역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박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현재 라이베리아 정부와 동원 간에 합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해양수산부는 합의 결과에 따라 동원에 대한 행정처분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한국 500만원 과태료, 일본·미국은 엄벌

2011~2012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해역에서 불법 어업을 감시한 EJF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주로 한국 선박의 불법행위들이 언급돼 있다. 해당 선박들은 벌금을 미납한 채 조업 수역에서 도망가거나, 어업감독관의 지시에 불응하고 때로는 불법 어획물을 운반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특히 아프리카 출신 10대 청소년 선원들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참치 등을 잡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은 바다 위 열악한 환경에 내던져진다. 지난해 미 국무부는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뉴질랜드 앞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사조오양 어선 오양 75호 선원들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을 거론하며, 한국의 인권 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한 단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불법 어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IUU에 부과되는 과태료를 대폭 올리고 상시적 조업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지난 1월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상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가 IUU 과태료를 최대 4660달러에서 1만8450달러로 상향 조정할 것이라고 전해왔지만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다. 2011년 남극해에서 인성 7호가 불법행위로 71만달러 정도의 수익을 얻어갔다는 이유에서다.

원양업계에서는 불법 어업이 심각한 중국이나 대만에 대해선 국제사회가 침묵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불법 어업을 통상 협상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불법 어업에 관대했던 것은 사실이다. 원양산업발전법에 따르면, IUU 등 원양어업자 준수 사항을 위반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해기사 면허 30일 정지의 행정처분 등이 내려진다. 가까운 일본에선 외국수역 조업 금지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해당 어선과 어획물을 몰수한다. 미국도 국제어업협정 등을 위반한 경우 건당 10만달러(약 1억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정부 대표단, 업계와 공무원으로만 구성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최예용 부위원장은 “한국은 CCAMLR 의장국으로 선출되는 등 국제 협약을 잘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고, 그만큼 다른 나라들로부터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며 “국제 회의에 가보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시민단체도 정부 대표단 멤버로 참여하지만, 우리 정부단 대표는 대개 공무원과 원양어업계 인사들로 구성된다. 국제 회의에서 불법 어업 문제가 불거지면 정부가 업계를 감싸주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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