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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퀘스터, 부자는 웃고 서민은 운다

등록 2013-03-16 13:58 수정 2020-05-03 04:27

미국이, 결국 ‘절벽’으로 떨어졌다. 지난 3월1일 발효된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는 지난해 말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했던 ‘재정절벽’과 샴쌍둥이 격이다. 당연히 금융시장이 요동쳐야 정상인데, 어째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미 뉴욕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게다. 분명, 뭔가 잘못됐다.
고용 창출하려면 재정적자 확대 감수했어야
“급격한 재정지출 축소와 세금 인상이 맞물려, 미국 경제가 2013년 1월1일부로 ‘재정절벽’으로 추락할 수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지난해 2월 말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재정절벽’이란 조어가 처음 알려진 날이다. 세금이 오르면 소비가 줄어든다. 정부가 예산 지출을 줄이면, 복지와 일자리도 덩달아 준다. 세금은 오르고 예산 지출이 줄면, 경제가 얼어붙기 마련이다. 기초 경제학의 뻔한 논리다. 미 의회예산처(CBO)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 2013년 상반기 중 미 경제가 2.9% 마이너스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이 때문이다.
예산 편성권을 쥔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해 해를 넘기긴 했지만, 결국 타협안은 마련됐다. 민주당은 ‘부자 증세’란 명분을 얻었고, 공화당은 세금 인상폭과 과세 대상을 줄이는 실리를 챙겼다. 샴쌍둥이의 한 축인 ‘증세’는 사라졌지만, 다른 한 축으로 인한 ‘위기’는 이어졌다. 공화당 쪽이 ‘재정적자 감축’이란 목표를 손에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방정부 채무 한도를 높이는 문제를 두고 다시 지루한 협상이 이어졌지만, 결국 정해진 시한까지 타협은 없었다.
시퀘스터 발효로 미 연방정부는 당장 올해에만 국방 예산 427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850억달러(약 90조원)를 삭감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인건비를 줄이는 일이다. 졸지에 ‘비필수인원’으로 낙인찍힌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2개월씩 줄줄이 무급휴가를 떠나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는 3월5일 “시퀘스터 발효로 인해 경호실 인력이 줄자, 백악관 쪽이 일반인의 (백악관) 관람 프로그램을 3월9일부로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분위기가 흉흉할 만하다.
따져보자. 미국은 여전히 2008년 금융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을 줄이면, 일자리도 준다. 일자리가 줄면, 경제성장도 둔화된다. 경기를 끌어올려 일자리를 늘리려면, 재정적자 폭이 확대되는 것은 감수했어야 옳다. 애초 ‘최선’을 바랄 게 아니었다. ‘차악’을 찾아야 했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소장은 3월4일 저녁 센터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미 경제의 현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자, 민간 부문의 수요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집값 폭락으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연간 6천억달러 규모의 건설 수요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택 공실률은 여전히 거품 붕괴 이전의 최고치 수준에 근접해 있다. 부동산 거품 붕괴와 함께 8조달러 규모의 자산이 공중분해돼, 소비지출도 연간 5천억달러가량 줄었다. 이로 인해 연간 1조달러 규모의 수요 부족 사태를 맞게 됐다. 2009년과 2010년 잇따라 3천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마련됐지만, 이런 간극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2011년부터는 경기부양을 위한 이렇다 할 재정 투입도 없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 없이는 민간 부문의 소비에 생긴 구멍을 메울 길이 없다. …시퀘스터까지 발동해, 정부의 예산 지출은 더욱 줄어들게 됐다. 멍청한 정책을 고수한 공화당도 그렇지만, 재정적자 축소 쪽으로 기울어간 오바마 대통령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억만장자 3명 중 2명 자산 크게 늘어
기이한 것은 뉴욕 증시다. 지난 3월5일 장중 한때 158포인트까지 치솟은 다우 지수는 1만4286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2007년 10월 세워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게다. 다우 지수는 6일에도, 7일에도 사상 최고 기록을 거푸 갈아치웠다. 첨단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와 우량주 중심의 ‘S&P 지수’ 역시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미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데도, 주가가 춤을 춘 게다.
우연치곤 묘하다. 같은 날, 경제전문지 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의 억만장자’ 명단을 내놨다. 이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해 미국 억만장자 3명에 2명 꼴로 자산이 큰 폭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1인당 평균 자산가치도 4억달러 늘어난 42억달러까지 치솟았다. 역시, 사상 최고치란다.
이를 두고 인터넷 대안매체 는 3월5일 머리기사에서 “오늘의 가장 볼품없는 소식은 다우 지수가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갈수록 많아지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기업의 수익률도 갈수록 높아만 간다”며 “이런 시절에 왜 미국의 서민들은 재정적자 축소를 명분으로 한 긴축재정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려야 하느냐”고 따져물었다.
웃지 못할 희극도 연출됐다. 인터넷 매체 는 이날 로버트 뮬러 국장 명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2월1일 상원 세출위원회에 제출한 서한을 공개했다. 서한을 보면 FBI 쪽은 “시퀘스터가 발효되면, 이로 인한 인력 부족으로 금융 부문에 대한 공세적인 수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는 “금융위기 발생 이후 4년 이상이 흘렀지만, 위기의 원흉인 월스트리트의 금융사 경영진 가운데 체포된 이는 단 1명도 없다”며 “시퀘스터로 인해 실제 FBI의 관련 수사 능력이 떨어진대도, 그간의 ‘활약상’으로 미뤄 이를 동정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시퀘스터를 되돌리기 위한 협상은 이어지고 있다. 주간 은 3월6일 인터넷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빈민층 의료지원제도(메디케어)를 포함한 사회복지 예산 추가 감축안을 공화당 쪽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협상 타결을 위한 ‘양보’일 텐데, 긴축의 폐해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앞서 은 3월4일 인권단체 ‘노숙인연대’의 자료를 따 이렇게 전했다.
뉴욕, 미성년 노숙인만 2만1천 명
“지난 1월 뉴욕시가 마련한 보호시설에서 밤을 보낸 노숙인이 사상 처음으로 하루 평균 5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2만1천 명가량이 미성년자다. 지난 1년 새 22%나 늘어난 규모다. 2011년 같은 기간에 견줘, 가족 단위 노숙인이 1.4% 늘어난 게 노숙인 인구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다. 뉴욕 시내에서만 하룻밤 평균 1만1984가구가 노숙인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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