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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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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앞에 놓인 4개의 선택지

등록 2013-02-25 15:44 수정 2020-05-03 04:27
한반도는 ‘전쟁터’다. 1950년 6월25일 시작된 전쟁은 국제법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27일 맺은 ‘정전협정’에 따라, 다만 포성이 멈춘 것뿐이다. 올해로 60년째를 맞는 당시 정전협정을 주도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었다.
‘공화국 창건 65돌과 조국해방전쟁 승리 60돌을 승리자의 대축전으로 맞이할 데 대하여.’ 지난 2월11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는 이런 제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하루 뒤인 2월12일 오전 11시57분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4.9의 지진파가 관측됐다.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그예 세 번째 지하 핵실험을 단행한 게다. 북쪽이 축제 분위기에 들뜬 지금,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미국과 중국의 손에 맡겨질 처지로 몰렸다. 60년 전처럼 말이다. 이러고도 ‘우리민족끼리’를 입에 올리는가. _편집자

인류 역사상 첫 핵무기 폭발 실험은 1945년 7월16일 미국 뉴멕시코주의 사막 한가운데서 실시됐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이후 1992년 전면 중단할 때까지 미국은 모두 1032차례 핵실험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옛 소련과 프랑스가 각각 715차례와 210차례, 영국과 중국도 각각 45차례씩 핵실험을 했다. 이 밖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3차례와 2차례 실험을 단행해, 20세기 지구촌에선 모두 2053차례 핵실험이 실시됐다.

미국, 처음으로 자국 안보 위협 간주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경쟁적으로 핵실험을 단행해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산 것이 20세기의 마지막 핵실험이었다. 냉전의 극한 대결이 만들어낸 ‘상호확증파괴’(MAD)의 광기가 사그라지며, 지구촌을 위협하던 핵폭발 실험도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21세기 들어서도 지구촌에선 3차례나 실제 핵폭발 실험이 벌어졌다.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에 말이다. 북한은, 21세기 들어 지구촌에서 핵실험을 벌인 유일한 나라란 얘기다.

“지난밤 북한은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전세계에 알렸다. 이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 행위를 규탄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즉각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2006년 10월9일 오전 9시58분(현지시각)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백악관 외교접견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1차 핵실험 때다.

“오늘, 북한은 국제법을 어기고 핵실험을 단행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보여온 말과 행동을 놓고 보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만, 전세계 모든 국가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

2009년 5월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실시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2차례 핵실험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일치했다. 2차례 모두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난 2월12일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뒤엔 어땠을까?

“북한이 오늘 세 번째 핵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은 대단히 도발적인 행동이다. 동북아 지역 안보를 해치는 무모한 행동이며, 유엔 안보리의 잇따른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비핵화를 약속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저버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앞선 2차례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를 내놨다.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미국의 국가안보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게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자국의 안보와 직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같은 날 오후 워싱턴의 미 국방부 앞마당에선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의 퇴임식이 열렸다. 패네타 장관은 퇴임사에서 “이란과 북한 같은 불량국가와 지속적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최근 몇 주 새 북한이 한 행동을 지켜보지 않았나.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모두가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에 맞설 채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지해진 미국, 대북정책 변화 기류

이튿날에는 존 케리 신임 국무장관이 나섰다. 케리 장관은 2월13일 방미 중인 나세르 주데 요르단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이제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북한뿐 아니라, 이란을 포함해 비확산 정책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모종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간 핵·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s)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지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2011년 1월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이 임박한 위협은 아니지만, 5년 안에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것으로 본다”며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개발한다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워싱턴 정가 안팎에선 게이츠 장관의 발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미-중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영국 일간 은 데이비드 샌토로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위원의 말을 따 “5년이란 긴 기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게이츠 장관의 발언이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며 “중국 쪽에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줄 것을 주문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발사에 성공한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는 기본적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핵무기 운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3차 핵실험 성공 사실을 전하며 북쪽은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핵탄두’를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핵 문제를 지구촌 차원의 안보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인식해왔다. 이 때문에 똑같이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을 놓고 볼 때,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는 자연스레 이란 쪽에 맞춰졌다. 북한은 이른바 ‘고립된 위협’인 반면, 핵무장한 이란은 중동의 패권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북한을 이란과 연계시키고 있다. ‘패권국가’의 속성상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제재는 중국이, 협상은 미국내 여론이 걸림돌

지난 4년여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른바 ‘전략적 인내’란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을 모색하는 대신 의도적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다. 동맹국인 한국의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과 보조를 맞출 필요도 있었지만, 북핵 문제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측면도 컸다. 북핵 문제를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이상, 더는 그럴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집권 2기를 맞는 오바마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은 뭘까? 는 2월13일 인터넷판에서 크게 4가지를 꼽았다.

첫째,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 강화다. “북한이 도발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자발적으로 핵개발을 멈추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만큼 강력한 제재 조처”를 마련하는 게 목표란 게다. 문제는 중국이다. 신문은 “강력한 경고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중국은 추가 제재를 반대하거나 적어도 그 수위를 낮추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둘째, 북쪽과 거래하는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제재다.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켜 북한의 자금줄을 효과적으로 봉쇄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문은 “문제는 제재 대상으로 거론될 만한 업체가 대부분 중국계일 것이란 점”이라며 “제재가 발효되면 중국 기업은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미국 업체도 피해를 볼 수 있어 역시 실패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셋째,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북에 대한 공세적인 대응이다. 북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가운데 철저한 봉쇄로 핵무기 확산 방지에 주력하는 게다. 는 “이럴 경우 ‘미국의 위협에 맞서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북한의 주장에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셈”이라며 “북한이 수세에 몰리면 중국도 북쪽 편을 들 수밖에 없으니, 역시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넷째, 북한과 포괄적인 타협에 나서는 게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체제 안전을 보장해줌으로써 북핵 문제를 완전히 매듭짓는 방식”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합의를 어겼다. 더구나 ‘핵무기 보유국’이라 주장해온 북한은 핵 문제만을 놓고 협상에 나서지 않을 뜻임을 누차 밝혔다.

미국 내 정치 상황도 협상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2월12일 성명을 내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좀더 과감하고 창조적인 방향에서 김정은 정권의 군사적 능력을 궤멸시킬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의회에서 대표적 ‘대북 강경론자’로 꼽히는 로이스 위원장은 “달러화를 위조하는 나라가 핵 포기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반대해왔다.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대응책 마련할 듯

북한의 앞선 2차례 핵실험을 미국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했다. 유엔 안보리 차원의 결의를 통한 제재는 자연스러운 대응책이었다.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안보리 차원의 제재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은 ‘미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란 인식이다. 핵실험이 만들어낸 혼란의 파장이 잠잠해지면, 오바마 행정부는 ‘자국 안보’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게 될 게다. 협상이든, 공세든 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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