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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에 중독된 아프간

2012년 아프간 국민 2명 중 1명이 준 뇌물, 세금의 2배인 156억달러… 수감자 2명 중 1명은 ‘고문받았다’ 통계
등록 2013-02-18 22:16 수정 2020-05-02 04:27

‘바륨, 크롬, 석탄, 구리, 철광석, 납, 아연, 유황, 운모….’ 아프가니스탄 광업부가 밝힌 자국 내 1400여 광산에 매장된 광물자원 목록이다. ‘금, 에메랄드, 청금석, 적석류석, 루비’ 등 귀금속도 풍부하다. 여기에 천연가스와 원유까지 매장돼 있다. 아프간의 개발되지 않은 광물자원 가치는 약 3조달러에 이른단다. 아프간은 지구촌에서 손꼽히는 자원 부국이다.
뇌물 수수 집단, 검사·판사
‘약 290억달러.’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집계한 아프간의 2011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다. 1인당 GDP는 약 1천달러에 그친다. 1979년 옛 소련의 침공을 시작으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전쟁이 그치지 않는 아프간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럴 것으로 보인다는 데, 아프간의 비극이 있다.
지난 2월8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현지 주민 7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뼈대로 한 34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놨다. 국제사회의 막대한 원조 노력에도 아프간 경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원인을 UNODC는 ‘만연한 부패’에서 찾았다. 보고서 내용을 훑어보면, 그럴 만하다. 2012년 한 해 아프간에서 오간 뇌물의 총액은 약 39억달러, 아프간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의 약 2배에 이른단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아프간 국민 2명 가운데 1명이 뇌물을 줬다. 뇌물을 가장 많이 받아 챙긴 집단은 검사와 판사로, 각각 1회 평균 300달러를 넘어섰다. 지방정부와 관세청 소속 공무원도 한 차례 평균 200달러씩을 챙겼다. 그 뒤를 등기소·경찰서·세무소 등 민생과 직결된 부서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이었다. 이들도 1회 평균 100~150달러씩 받아냈단다.
2009년에도 비슷한 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당시 아프간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한 연평균 뇌물 제공 액수는 104달러였다. 이번 조사에선 이보다 39% 늘어난 156달러로 집계됐다. UNODC는 “앞선 2009년 조사에 견줘, 교사 집단과 의사·간호사 집단에 대한 뇌물 제공 사례가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온 사회가 뇌물로 흥청이고 있다는 얘기다.
아프간에 만연한 게 하나 더 있다. ‘고문’이다. 유엔 등의 지적에 따라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2월10일 아프간 치안 당국이 관할하는 구금시설에 갇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최근 2주 동안 실시한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다. 아랍 위성방송 는 인터넷판에서 아프간 정부의 발표 내용을 따 “조사 대상 2명 가운데 1명꼴로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도 지난 1월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아프간 전역에서 수감자 635명을 인터뷰했더니, 이 가운데 미성년자 80명을 포함해 모두 326명이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했다는 게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특히 2011년 9월~2012년 10월 아프간 남서부 칸다하르 지역에서만 수감 도중 ‘실종’된 이가 모두 81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군은 도대체 무엇을 남겼나?
는 “유엔의 보고서가 나온 이후 현지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당국은 고문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난 일부 아프간 구금시설로는 죄수 이송을 잠정 중단한 상태”라고 전했다. 2001년 10월7일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11년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미군을 포함해 아프간에 주둔한 외국군은 2014년 말까지 전면 철수할 예정이다. 무엇을 위해 왔다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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