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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어디로 가나

등록 2013-01-29 22:24 수정 2020-05-03 04:27

“기대에 100% 부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숙 유엔 대사는 1월22일 오후(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기존보다 대북 제재를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제2087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직후 언론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사는 “형식 면에서 지난해 4월 안보리 의장 성명보다 수위가 높고, 내용 면에서도 제재 대상이 확대되고 포괄적인 그물식 제재를 할 수 있게 돼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불만 토로
“분명히 새로운 제재 조처가 이번 결의에 담겨 있다. 말 그대로, 특정 기관이나 개인 또는 물품에 대한 추가 금지 조처가 마련되면 새로운 제재가 부과됐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제재’란 말 자체가 그런 뜻 아닌가.” 비슷한 시각,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따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존 제재에 새로운 인물과 기관의 명단만 얹은 것일 뿐, 새로운 결의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결의안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미론적 논쟁이나 토론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느냐”고도 덧붙였다. 애매하다. 이유가 있다.
김 대사의 ‘만족감’과 달리, 모두 20개 항목과 2개 부속조항으로 돼 있는 안보리 결의 제2087호에는 새 대북 제재 방안이 담겨 있지 않다. “로켓 추가 발사나 핵실험 땐 중대한 조처”를 강조했을 뿐, 앞선 두 차례 결의(2006년 제1718호, 2009년 제1874호)의 내용을 인용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새롭다’고 할 만한 대목은 백창호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위성통제센터 소장 등 4명의 여행금지자와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를 비롯한 6개 자산동결 대상 기관의 명단을 밝혀 적은 부속조항 정도다.
“지난해 12월12일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이날 결의안을 채택하기 전까지, 안보리에선 새로운 대북 제재 조처와 관련해 공식적인 논의가 전혀 없었다.” 유엔 회원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보리의 모든 의사 일정을 모니터하는 독립기구인 ‘시큐리티카울슬리포트’(SCR)는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관련국의 비공식 설명에 따르면, 새 결의가 채택되기까지 40일가량 중국과 미국이 결의안의 수위를 조절하는 협상을 했단다. 그런데 안보리 결의가 오바마 미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다음날 이뤄진 건 우연일까. 수위보다 시기를 조절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은 결의 제2087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제6904차 안보리 회의가 당일 오후 3시8분에 시작돼 단 2분 만에 끝났다는 점이다. 사실상 미-중이 마련해온 초안을 추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던 게다. SCR 쪽은 자료에서 “일부 비상임 이사국 대표단은 새 결의안을 검토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대화 없는 5년이 초래한 재앙적 현실
문제는 북쪽 반응인데, 격하다. 1월23일과 24일 북 외무성과 국방위원회가 잇따라 내놓은 성명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는 게다. 둘째, 추가적인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도 거론했다.
물론 협상의 문틈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 비핵화도 불가능하다”(외무성)거나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대국들의 비핵화 실현에 총력을 집중해야 한다”(국방위)는 것이다. 핵을 들고, 그것도 핵 보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군축협상을 하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게임 체인지’ 요구다. 북한의 핵 포기가 먼저라며 대화 없이 압박과 제재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 5년과 오바마 1기의 ‘전략적 인내’가 초래한 재앙적 현실이다. 넘어야 할 산이 백두산에서 에베레스트로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누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머리가 아프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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