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리르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다. 화염병과 짱돌이 날아들더니, 총성까지 울려퍼진다. 성난 시위대는 ‘대통령의 하야’를 입에 올린다. 이집트가, 다시 기로에 섰다.
12월15일로 예정된 제헌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12월6일엔 수도 카이로의 알무카탐 거리에 있는 무슬림형제단 본부 건물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 단체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배출한 자유정의당(FJP)의 모체다. 11월22일 이후 불붙기 시작한 시위 사태로 이날까지 모두 6명이 숨지고, 700여 명이 다쳤다. 지난해 이집트 민주화 혁명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무르시 대통령은 오늘 모든 국가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집트의 새로운 파라오로 임명했다. 이는 혁명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력한 야권 정치인으로 꼽히는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1월2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이날 무르시 대통령은 모두 6개 항으로 이뤄진 ‘헌법선언’을 내놨다. ‘헌법선언’의 다른 조항 가운데는 무바라크 시절 임명된 검찰총장 교체와 민주화 혁명 당시 시위대를 탄압한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 등 야권의 요구사항도 포함됐다. 하지만 핵심은 제6조, 그 내용은 이랬다.
“혁명의 대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통령은 어떤 법적 조치라도 내릴 수 있다. 헌법선언이나 법률 등 이와 관련해 대통령이 내린 결정은 최종적인 것으로, 어떤 경우라도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야권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당장 개혁 성향의 정당·사회단체와 좌파 진영 일부가 모여 ‘구국전선’이란 대정부 투쟁기구를 꾸렸다. 대규모 시위가 타흐리르 광장에서 연일 이어지던 11월30일 새 공화국의 헌법 초안 작성 작업을 해온 제헌위원회가 헌법 성안 작업 종료를 선언했다. 이튿날 무르시 대통령은 12월15일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국가와 사회·권리와 자유·국가기관 등 모두 5개 장 236개 조항으로 구성된 새 헌법안은, 2011년 1월25일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을 새 나라의 뿌리로 전문에 명시했다. 이어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평등 등 모두 11개 항목에 이르는 ‘헌법적 가치’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정부의 경제·사회·환경정책 입안과 사회적 대화 촉진을 위한 기구인 ‘경제사회위원회’ 신설을 규정한 제207조는 ‘새로운 이집트’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50명 규모로 구성될 위원회의 위원으로 노동조합과 농민단체 대표의 참여율을 ‘최소 50% 이상’으로 정해놓은 게다. ‘전향적’이라 부를 만하다.
‘수니파 교리’를 입법의 원천으로문제는 독소조항이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11월29일 인터넷판에서 “오랜 세월 이집트 사회를 쥐락펴락해온 군부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국방 예산 편성권까지 의회가 아닌 별도의 위원회에서 갖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종교색’도 문제로 지적된다. 제2조는 이슬람을 ‘국교’로, ‘이슬람 율법의 원칙’을 모든 입법의 ‘원천’으로 규정했다. 제219조에선 아예 이슬람 율법 관련 조항을 ‘수니파 교리’라고 못박았다.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다.
12월7일 카이로 한복판 대통령궁 앞에 탱크가 등장했다. 전날 그곳에선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끝내 유혈 충돌을 벌였다. 무르시 대통령이 제안한 ‘거국대화’는 야권의 거부로 무산됐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행기의 혼란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국민투표 강행 의지를 밝혔다. 카이로의 하늘을 혼란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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