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도 사고판다. 그래서 ‘상품’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따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당신의 사적인 기록과 ‘링크드인’ 같은 인맥 관리용 사이트에 올린 삶의 궤적을 누군가 고스란히 모아,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 이미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했는데, 최근 미국 의회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새삼, 이거 참 무서운 세상이다.
결혼기록·가명 또는 별명 등 ‘유료 서비스’
미 비영리 언론매체 는 11월9일 미 의회 ‘프라이버시 코커스’가 내놓은 성명을 따 “이른바 ‘정보중개업체’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개인들의 신상과 신변잡기를 ‘추수’하듯 그러모아, 가공·분석해 관련 업체에 버젓이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 의회 질의 결과 공식 확인됐다”고 전했다. 앞서 민주·공화 양당 하원의원 24명이 참여하고 있는 ‘프라이버시 코커스’는 지난 7월24일 개인정보를 수집해 분석한 자료를 제3의 업체에 판매하는 9개 정보중개업체에 이와 관련한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민주당 에드워드 마키 의원(매사추세츠)이 홈페이지에 올린 9개의 서면 답변 자료를 보면, 이들 업체가 어떤 종류의 정보를, 어떤 경로를 통해 취합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정 개인이 사용하는 아이디와 웹사이트 주소, 관심 분야와 고향·경력은 물론 온라인상에서 주로 소식을 주고받는 친구와 트위터의 팔로어 규모 등이 가장 기초적인 정보다.
는 “업체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특정인의 트위터·페이스북·링크드인은 물론 블로그스폿 등에 개설한 블로그에 올린 글까지 샅샅이 살펴 ‘정보’가 될 만한 내용을 추려내는 것은 기본”이라며 “특정인이 올린 각종 댓글이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표시를 한 내용, 또 ‘공유하기’ ‘추천’ 등의 방법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내용의 성격 등까지도 업체의 분석 대상”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주로 유통업체와 홈쇼핑업체에 정보를 판매하고 있는 ‘엡실론’ 쪽은 특정 개인의 △이름 △성별 △고향 △사용하는 언어 △페이스북 친구와 트위터 팔로어 규모 등을 기본 정보로 제공한다. 또 어떤 내용의 트윗 메시지를 주로 리트윗하는지, 어떤 분야의 정보를 자주 인용·공유하는지도 분석한다. 이 업체는 의회 답변서에서 “이런 정보를 통해 고객사가 잠재고객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구매 욕구에 맞춘 상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좀더 ‘활동 반경’이 넓은 회사도 있다. ‘인텔리우스’란 업체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외에 블로그스폿·워드프레스·마이스페이스 등 블로그 사이트에 개인이 개설한 블로그에 올라온 글까지 분석·가공한단다. 이 업체가 자사 홈페이지에서 유료로 서비스하는 ‘소셜네트워크 검색’을 보면 그 ‘정보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특정인의 이름과 거주 지역을 입력하면, 과거 거주 지역과 경력은 물론 나이·전화번호·친인척 관계·보유 부동산 현황·범죄 경력·가명 또는 별명·결혼 기록 등까지 고스란히 검색할 수 있다.
9·11 때 19명 중 11명 신상정보, 수사당국에 제공
정보거래업체 가운데 현재까지 미국 최대 규모로 알려진 곳은 남부 아칸소주 북쪽의 소도시 콘웨이에 본사를 둔 ‘액시엄’이다. 이 업체는 의회 답변서에서 “(특정 개인이) 주로 방문하는 소셜미디어 사이트는 어디인지, 그 사이트를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활용한다. 또 어떤 소셜미디어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지, 그 사이트에 어떤 종류의 콘텐츠를 주로 올리는지, 이 밖에 유튜브에선 어떤 분야의 동영상을 주로 보는지 등도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이어 “개별 포스팅이나 친구·팔로어 명단 등은 수집·분석 대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게 전부일까?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이나 국세청(IRS)보다 훨씬 더 당신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파악하고 있다. 당신이 평범한 미국의 성인이라면, 당신의 나이와 인종, 성별, 키와 몸무게, 결혼 여부와 교육수준, 정치적 성향과 최근의 구매 습관, 가족의 건강 문제와 꿈꾸는 이상적인 휴가 계획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는 지난 6월16일치에 보도한 ‘당신이 상품이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앎’의 주체는 바로 액시엄이었다. 신문 보도를 보면, 이 회사의 콘웨이 본사에는 무려 2만3천여 대의 서버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신문은 이 업체 경영진의 말을 따 “전세계적으로 약 5억 명, 미국에서만 1억9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관리하고 있다”며 “한 해 다루는 정보를 건수로 따지면 약 50조 건을 넘어선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존 레이보위츠 미 연방통신위원회(FTC) 위원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이버 파파라치’(사이버라치)들이 거의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셈”이라고 표현했다.
지난해 11억3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린 이 업체의 주요 고객은 웰스파고 등 은행권은 물론 도요타·포드 등 자동차 업체와 메이시스 등 백화점까지 망라돼 있다. 는 “경제전문지 이 선정한 미 100대 기업 가운데 47개가 이 업체의 고객사”라고 전했다. 액시엄은 2001년 9·11 동시테러 연루 혐의를 받은 19명 가운데 11명의 신상 정보를 미 수사 당국에 제공하기도 했단다. 미 하원 ‘프라이버시 코커스’가 제일 먼저 이 업체에 관심을 둔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게다.
흥미로운 것은 질의서를 받은 9개 회사 가운데 액시엄을 제외한 나머지 8개사는 자사가 정보중개업체가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했다는 점이다. ‘피코’란 업체는 자기 회사를 “고도의 경영전략을 수립·관리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인텔리우스’는 자사의 주요 업무를 ‘전자상거래’라고 표현했다. 물론 주로 거래하는 상품은 ‘개인정보’다. 이들 업체는 공통적으로 “모든 정보를 직접 취합하는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퍼져 있는 기초자료 수집에 특화된 ‘제3의 업체’를 통해 구매한다”고 밝혔다. ‘시장’이 제법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 있다는 뜻이다.
무분별한 행태 규제법 나와야
FTC는 최근 내놓은 정책보고서에서 “정보중개업체의 무분별한 행태를 규제하고, 개별 업체가 확보해 분석·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의 내용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담은 입법 노력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하원 ‘프라이버시 코커스’의 서면 질의는 그 출발점으로 보인다. 이번 작업을 주도한 마키 의원은 성명에서 “이웃·친구들과 삶을 나누려는 욕구로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적 기록이 고스란히 ‘정보상품’으로 둔갑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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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