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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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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제2막, ‘드론 전쟁’

10년 전 이맘 때 거짓 정보로 이라크 침공한 미국 부시 행정부… 무인항공기 ‘드론’ 앞세워 ‘테러와의 전쟁’ 북아프리카로 확산 조짐
등록 2012-10-13 14:32 수정 2020-05-03 04:26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되풀이돼선 안 되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리 오래지 않은 기억을 자꾸만 더듬어 오늘에 새기는 이유다. 비극의 제2막은, 1막의 비극조차 희극으로 보이게 한다지 않던가.
2001년 9·11 동시테러가 벌어지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나섰다. 처음부터 ‘딴 맘’을 품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프간의 메마른 땅은 애초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티그리스의 유려한 강물이 만들어낸 비옥한 대지, 그 아래에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양의 원유가 묻혀 있는 이라크를 백악관을 장악한 ‘네오콘’은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전쟁의 굿판 춤춘 힐러리와 언론
2001년 10월7일 개전과 동시에 압도적 화력을 앞세운 미군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손쉽게 탈레반을 몰아냈다. 이듬해 여름에 이르면, 탈레반 세력은 거의 대부분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서부 변경주인 와지리스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몸을 숨겼다. 전쟁은 끝난 것처럼 보였고, 이내 ‘진짜 전쟁’을 위한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기억해야 하는 나날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위한 결의안을 채택해달라고 미 의회에 공식 요청한 건 2002년 10월2일이다. 민주당 진보파의 상징 격인 데니스 쿠시니치 하원의원(오하이오주)은 그 10주년을 맞은 지난 10월2일 인터넷 대안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꼭 10년 전 오늘,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의회 차원의 논쟁이 시작됐다. …공개된 정보만 놓고 봐도, 이라크가 대량파괴무기(WMDs)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명확했다. 이라크는 9·11 동시테러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미국에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누구든 관심만 있었다면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라크 침공 계획은 의회와 국민들에게 너무 쉽게 먹혀들었다.”
공화당뿐이 아니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부시 행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리처드 게파트 당시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는 10월10일 의회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9·11 동시테러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렸다. 추가 테러공격을 막으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당장 동원해야 한다. 대량파괴무기를 동원해 (미국을) 공격하는 일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한다. …첫 번째로 고민해야 할 나라가 바로 이라크다. 후세인 정권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외교정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뉴욕주 출신 상원의원이던 그는 “사담 후세인은 국민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독재자이며, 알카에다를 포함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도피처까지 제공하고 있다”며 “관련 정보를 종합하면, 후세인 정권은 생화학무기 개발을 재개했으며, 핵무기와 탄두 운반 수단(미사일) 개발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쟁의 굿판에서 춤을 춘 것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는 부시 행정부가 ‘전쟁 결의안’을 의회에 제출한 지 불과 이틀 만인 그해 10월3일치 사설에서 “사담 후세인이 사악한 독재자이며, 유엔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지속해 중동은 물론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더 이상의 논쟁이 필요치 않다”고 썼다.

오바마 정부도 일방적 군사력 동원 여전
‘대이라크 군사력 사용 허용을 위한 상하 양원 합동 결의안 2002’(법률 제107-243호)가 표결에 부쳐진 것은 부시 행정부가 결의안을 제출한 지 불과 14일 만인 그해 10월16일이었다. 하원에선 △찬성 297표 △반대 133표 △기권 3표로, 상원에선 △찬성 77표 △반대 23표로 각각 통과됐다. 민주당은 △하원의원 126명( 61%) △상원의원 21명(42%)이, 공화당은 △하원의원 6명(3%) △상원의원 1명(2%)이 각각 반대표를 던졌다.
미 의회가 ‘전쟁 결의안’ 통과의 명분으로 삼았던 정보가 조작된 것이었음은 이라크 침공 직후 현지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거짓에 기대 시작한 전쟁의 결과가 어땠는지는 지난 10년 세월 지켜본 바다. 줄잡아 100만 명의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가 감내한 경제적 피해는 어림하기조차 불가능하다. 시아-수니-쿠르드로 갈려 벌이기 시작한 종족 간 유혈극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지고 있다. 알카에다가 이라크에 버젓이 자리를 잡은 것도 물론 미국의 침공 이후다.
미국은 어떤가? 2011년 12월18일 철수를 완료할 때까지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 수는 모두 4488명, 부상자 수는 3만3천여 명에 이른다. 전쟁 경비는 최대 5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 역사상 가장 비싼 전쟁이었다. 쿠시니치 의원은 “천문학적인 이라크 전쟁비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교훈을 얻었을까? 이렇다, 내놓을 게 거의 없다. 그저, 방식의 차이만 엿보인다. 지난 10월2일 가 전한 기사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백악관 쪽이 최근 몇 달 새 잇달아 비밀회의를 열어, (리비아를 포함해)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번지고 있는 알카에다 지역조직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일방적인 타격작전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빌리면….”
오바마 행정부는 그간 해외 군사작전을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처럼 소수정예 병력을 동원한 기습전과 함께, 최첨단 무인항공기(드론)를 이용해 파키스탄·예멘·말리·소말리아 등지에서 벌이고 있는 이른바 ‘정밀 타깃공격’이 그것이다. 압도적 화력과 대규모 지상군 병력을 동원하지 않는 것이 부시 행정부 시절과 다른 점이라면, 미국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점은 여전하다.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명분’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9월 말 유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랍의 봄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움직임이 훨씬 자유로워진 테러조직들이 활동 규모와 반경을 넓혀나가고 있다. …미국은 북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전세계에 위협이 되는 이들에 맞서 싸우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알카에다, 오히려 분화하며 활동 지역 넓혀
테러와의 ‘10년 전쟁’에도, 알카에다의 세는 위축되지 않았다. 되레 ‘아라비아반도의 알카에다’(AQAP),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의 알카에다’(AQIM) 등으로 분화를 거듭해왔다. ‘테러와의 전쟁’은 ‘드론 전쟁’으로 대체됐고, 이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 수가 급증하며 차세대 테러범을 양산하고 있다. 10년 세월 되풀이된 악순환이, 오늘도 괴물을 키우고 있다. 누린 샤 미 컬럼비아대학 교수(인권법)는 지난 9월30일치 <usa>에 쓴 기고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드론 전쟁’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가 남기는 가장 치명적인 유산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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