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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이대로 끝나는가

부자들과의 선거자금 모금행사 때 복지수혜층 비하 발언 공개돼 위기 맞은 롬니… 상·하원 선거서도 전망 어두운 공화당
등록 2012-09-27 15:41 수정 2020-05-03 04:26

휴양지로 이름난 미국 플로리다주에서도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팜비치 카운티의 해안가에 보카러턴이란 곳이 있다. 미 통계청의 2010년 자료를 기준으로 인구는 약 8만4천 명, 서부 팜비치 일대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꼽힌단다. 지난 5월17일 오후 그곳의 한 저택에서 제법 비밀스런 모임이 열렸다. 넉 달여 뒤 미국을 발칵 뒤집을 만한 발언이 그곳 행사장에서 흘러나왔다. 주인공은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다.

미국인의 절반 가량 무책임한 사람들로

플로리다주 현지 일간 <트레저코스트 팜>이 당시 인터넷판에 올린 기사를 보면, 롬니 후보는 이날에만 두 차례 ‘짭짤한’ 선거자금 모금행사를 열었다. 첫 번째 행사는 우드필드 컨트리클럽에서 진행됐다. 공화당 팜비치 카운티 지역대표단과 연방 하원의원 출마자 등 모두 150명가량이 참석한 이 행사의 입장료는 2만5천달러였다. 롬니 후보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추가로 1만달러를 기부해야 했단다.

두 번째 행사는 조금 더 은밀했다. 보카러턴의 한 개인 저택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이름은 마크 레더(50), ‘선캐피털’이란 자산운용사의 대표다. 이 업체가 굴리는 자산 규모만도 800억달러에 이른단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21일치에서 “(정치권에 진출하기 전) ‘베인캐피털’이란 자산운용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롬니 후보는 선캐피털의 초기 투자자였다”며 “(이런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레더는 그간 여러 차례 롬니 후보를 위한 모금행사를 열었다”고 전했다.

이날 레더 저택에서 롬니 후보를 만나려면 5만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트레저코스트 팜>은 “이 행사에도 150명가량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만 롬니 후보는 적어도 75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았다는 얘기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비슷한 수준의 부자들이 모인 자리다.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을 법도 했다. 롬니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전체 유권자의 47%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한다. 그들은 모두 정부에 기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미국 사회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가 자기들을 돌봐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건강보험이든 주거 문제이든, 모든 걸 정부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걸 권리로 생각한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는 거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설득할 수도 없을 거다. 이 사람들도 자기 삶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며….”

자칫 묻힐 뻔했던 롬니 후보의 이 발언은 지난 9월18일 진보매체 <머더존스>가 인터넷판에 동영상과 함께 올려 세상에 알려졌다. 롬니 후보가 ‘설화’에 휘말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지난 9월14일 <abc> 토크쇼에 출연해 ‘중산층의 소득수준’을 묻는 질문에 “연간 수입이 적어도 20만~25만달러(약 2억2천만~2억8천만원) 정도는 돼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미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미국의 가구당 평균 수입은 전년에 견줘 1.5% 줄어든 5만54달러에 그쳤다. 그럼에도 레더의 저택에서 내놓은 발언은 무게감이 달랐다. 미국민 절반가량이 졸지에 ‘정부가 내주는 복지 혜택에 빌붙어 사는 무책임한 사람들’로 전락한 탓이다.

오바마와 지지율 격차 갈수록 벌어져
언론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경합 지역)로 꼽히는 뉴햄프셔·콜로라도·아이오와 등 8개 주의 지역지 41개가 이튿날 관련 보도를 1면에 비중 있게 실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유력지들은 일제히 사설을 통해 롬니 후보를 비판했다. 롬니 후보는 “발언의 맥락을 자르고 편집해 내용이 곡해됐다”고 주장했지만, 이튿날 <머더존스> 쪽이 46분 분량의 동영상 전체를 공개하자 외교정책 등 다른 발언까지 문제로 떠올랐다. 일부에선 “(롬니 후보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했던 거냐. 대선은 이미 끝났다”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왔다.
여론도 확실히 돌아선 모양새다. 밋밋했던 전당대회 이후 오바마 대통령에게 밀리기 시작한 지지율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많게는 8%포인트(퓨리서치센터)에서 적게는 3%(라스무센)까지, 팽팽하던 판세가 오바마 대통령 쪽으로 확실하게 기울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9월12~19일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한 자료를 보면,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한테 평균 3.1%포인트 뒤지고 있다. 2008년 대선 때 9월 중순의 여론조사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과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팽팽한 동률을 이룬 바 있다.
문제는 대선뿐이 아니다.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33석)도 오는 11월6일 선거를 치러야 한다. 2010년 중간선거로 공화당은 오랜만에 하원을 장악한 상태다. 435석 가운데 공화당이 242석, 민주당이 193석이다. ‘티파티’로 상징되는 풀뿌리 보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다. 상원도 100석 가운데 △민주당 51석 △공화당 47석 △무소속 2석으로 팽팽하다. 경제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치러지는 올해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쪽이 “백악관은 물론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호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롬니 후보의 부진으로 이 모두 쉽지 않게 됐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9월19일 “(위스콘신주 상원의원 선거 등) 일부 격전지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공화당 후보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며 “전당대회 후속 효과에다 공화당의 대선 전략이 먹혀들지 않아,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 유지는 물론 하원에서도 의석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지난 2년여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 정쟁에 몰입해온 연방의회에 대한 미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이 지난 8월16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미 의회에 대한 지지율은 38년 만에 최저치인 10%로 나타났다. 11월 의회선거에서 ‘바꿔 열풍’이 불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롬니와 거리두려는 공화당 의원들
상황이 이쯤 되자, 선거를 앞둔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롬니 후보와 거리두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에 맞서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스콧 브라운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은 9월19일 성명을 내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나는 (롬니 후보가 말한 ‘47% 발언’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며 “일자리를 잃고 정부 지원을 받는 처지로 내몰리는 걸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운 의원은 당내 경선 때부터 롬니 후보의 열성적인 지지자였다. 선거는 이대로 끝나고 마는가? 전당대회 이후에도 선거자금 모금에만 주력하던 롬니 후보가 9월20일부터 격전지 유세를 대폭 늘리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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