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슬림 멕시코 텔맥스 회장 690억달러, 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610억달러,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440억달러, 베르나르 아노 프랑스 루이뷔통그룹 회장 410억달러, 아만시오 오르테가 스페인 자라그룹 회장 375억달러….’
지구촌에는 부자가 많다. 자산 총액이 10억달러를 넘는 ‘초절정 갑부’만도, 알려진 것처럼 1226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슬림 회장을 비롯해 최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10명의 자산 총액은 무려 4437억달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지난해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순위표를 놓고 보면, 29위를 기록한 말레이시아(약 4472억달러)와 30위를 기록한 나이지리아(약 4134억달러)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10명의 부자, 말레이시아 GDP 수준
‘억만장자’ 아래에 ‘백만장자’가 있다. 이들도 부자다. 금융권에선 이른바 ‘고액자산가’(HNWIs)로 부른다. 주택 등을 제외하고 투자 가능한 자산 총액이 100만달러를 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프랑스계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캡제미나이’가 ‘캐나다왕립은행’(RBC) 자산운용팀과 공동으로 지난 6월19일 내놓은 ‘2012 세계 부자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실체를 어림잡아볼 수 있다.
올해로 16번째를 맞은 ‘세계 부자 보고서’가 집계한 지구촌 고액자산가는 모두 1100만 명에 이른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인구 순위 74위인 쿠바(약 1124만 명)와 75위인 벨기에(약 1095만 명)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 총액은 모두 42조달러 수준, IMF가 집계한 지난해 지구촌 전체 경제 규모(약 78조8974억달러)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2012년 보고서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 등극했다. 모두 337만 명의 자산가가 아시아·태평양에 거주하고 있단다. 만년 1위 자리를 지켰던 미국을 포함한 북아메리카대륙(335만 명)과 ‘전통의 강자’인 유럽(317만 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반면 자산 총액을 기준으로 하면, 북아메리카가 11조4천억달러로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시아·태평양(10조7천억달러)과 유럽(10조1천억달러)이 그 뒤를 쫓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이 단연 1위다. 지난해 1.2%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307만 명의 백만장자가 있다. 2위인 일본의 2배에 가깝다. 재난적인 쓰나미와 지진, 핵 위기 속에서도 일본의 백만장자는 4.8% 늘어난 182만 명으로 기록됐다. 3위는 독일이다. 유로존 전체로 번지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독일만은 꿋꿋했다. 전년 대비 3% 늘어난 95만1천 명이 백만장자로 기록됐다. 이들 3개국에만 세계 부자 인구의 53.3%가 몰려 있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 그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중국에선 전년 대비 5.2% 늘어난 56만2천 명의 백만장자가 배출됐다. 다음은 영국이다. 경제위기 속에 전년 대비 2.9% 줄어든 44만1천 명이 백만장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6위인 프랑스에선 1.9% 늘어난 40만4천 명이 백만장자로 기록됐다. 그 뒤를 캐나다(28만 명)·스위스(25만2천 명)·오스트레일리아(17만9500명)·이탈리아(16만8천 명)가 이으며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11위는 16만5천 명의 부유층을 배출한 브라질이다. 지난해 12위는 인도였다. 하지만 급격한 금융시장 불안 속에 15만3천 명이던 백만장자가 18%가량 떨어진 12만5500명까지 줄었다. 인도의 빈자리를 메운 건 어느 나라일까? 바로 한국이다.
삼성가 모두 합치면 세계 50위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83억달러,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62억달러,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36억달러, 김정주 NXC(넥슨지주회사) 회장 33억달러,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28억달러….’
한국에도 부자는 많다. 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만 20명이나 된다. 특히 삼성가는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씨, 아들 이재용 사장과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일가족 5명이 모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쪼개져 있는 이건희 회장 가족의 재산을 다 합하면, 세계 50위권 안쪽에 든다.
‘세계 부자 보고서’에서 추정한 지난해 한국의 고액자산가는 모두 14만4천 명이다. “금융시장 불안 속에 2010년에 견줘 3천 명가량 줄어들긴 했지만, 부자 순위 12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7월2일 펴낸 ‘2012년 한국 부자 보고서’도 엇비슷한 추정치를 내놨다. ‘한국 부자 보고서’가 2011년 말을 기준으로 집계한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부자는 모두 14만2천 명이다.
조금 다른 분석도 있다. 2010년에 견줘 부자 수가 줄었다는 ‘세계 부자 보고서’와 달리, ‘한국 부자 보고서’는 되레 전년 대비 8.9% 늘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를 보면, 2006년 6만8천 명에 그쳤던 한국의 부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인 2008년에만 전년 대비 1천 명가량 줄어든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09년엔 사상 처음으로 ‘부자 10만 명 시대’(10만8천 명)에 진입했고, 2010년엔 13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 ‘백만장자’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은 약 318조원에 이른다. 1인당 평균 22억원꼴이다. 보고서는 “전체 국민의 상위 0.28%가 총 개인 금융자산의 13.8%를 보유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이 326조1천억원 규모인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의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에 몰려 산다. 전국 부자 수의 절반에 가까운 6만8천 명이 서울에 살고 있으며, 경기도에도 2만7천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안에선 서초·강남·송파 등 ‘강남 3구’에 서울 지역 부자의 38%가량인 2만6천 명이 몰려 있다.
한국의 부자들 “나는 아직도 부자가 아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들이 스스로 ‘부유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현곤 KB금융지주 연구소 경영연구팀장은 “10억원 이상 금융자산 보유자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8%는 본인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보유 자산이 50억~100억원에 이르는 이들 가운데서도 본인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27.5%에 그쳤다”고 말했다.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의 68.7%는 최소 100억원 이상을 가져야 부자라고 답했다. ‘500억원 이상을 가져야 부자’라고 답한 경우도 전체의 8%를 넘어섰다. 반면 부자의 최소 기준을 50억원보다 낮게 생각하는 비율은 전체의 9.5%에 그쳤다. 이런 인식은 한국 부자들의 ‘목표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보고서를 보면, 2011년 말 한국 부자의 자산을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한가운데 있는 값을 뜻하는 중앙값은 47억원인 반면, 목표 자산의 중앙값은 100억원으로 나타났다. 목표 자산이 ‘1천억원 이상’이라는 답변도 8%나 됐다. 한국 부자의 ‘헝그리 정신’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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