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1일 멕시코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PRI) 후보다. 그의 ‘공식’ 득표율은 38.15%. 2위를 차지한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민주혁명당(PRD) 후보는 31.64%였다. 두 자릿수까지 차이를 보였던 여론조사 결과보다는 격차가 작았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즉각 페냐 니에토 후보에게 축하 전화를 했다. 언론의 관심은 12년 만에 권좌에 복귀한 제도혁명당으로 모아졌다. 그런데….
2006년에 이어 재연된 부정선거 논란
페냐 니에토 후보는 여전히 ‘당선자’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오브라도르 후보 쪽에서 “광범위한 선거 부정이 저질러졌다”며 전면 재검표를 주장한 탓이다. 미적거리던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는 결국 7월5일 “전체 14만3천여 투표소 가운데 절반이 넘는 7만8천여 투표소에 대해 재검표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검표가 끝난 뒤에도 페냐 니에토 후보가 ‘당선자’로 불리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에 따라 각 정당이 선거 부정 의혹 등을 추가로 제기하면 오는 9월6일까지 이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두 달여 동안 멕시코 정국은 혼란에 빠져 있을 게다. 2006년 대선 때도 그랬다.
“오브라도르 후보는 자신이 패배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버릇이 있다.” 페냐 니에토 후보는 7월4일 <bbc>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대선에서 국민행동당(PAN) 후보로 나선 칼데론 대통령에게 패배한 오브라도르 후보가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장기간 거리시위를 주도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멕시코 선관위는 전체의 9%를 재검표했다. 이 과정에서 애초 3%대로 알려졌던 칼데론-오브라도르 후보 간 격차는 재검표 결과 0.58%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선관위 쪽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 서둘러 재검표 절차를 마무리해, 오브라도르 후보 지지자들의 반발을 키웠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이상기류’는 도처에서 감지됐다. 주류 언론은 노골적으로 페냐 니에토 후보 띄우기에 집중했다. 편파·왜곡 보도가 판치는 가운데, 선거 부정 의혹도 일찌감치 번져나갔다. ‘오래된 버릇’은 고치기 어렵다. 집권에 다가선 페냐 니에토 후보 주변에서 온갖 추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국 는 지난 5월22일치에서 “미 마약단속국(DEA)은 최근 페냐 니에토 후보의 측근 3명이 최대 마약 카르텔로 꼽히는 ‘제타 패밀리’와 연계된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페냐 니에토 후보의 지지로 제도혁명당 대표로 선출된 움베르토 모레이라 전 코아울라주 주지사는 재임 당시 공문서 조작과 유령회사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엔 페냐 니에토 후보 선거캠프 활동가 3명이 선거자금을 미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페냐 니에토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질 줄 몰랐다. 선거 직전까지 오브라도르 후보를 15% 이상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줄을 이었다. ‘여론 조작’ 의혹까지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멕시코 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요 소이 132’(내가 132번째다) 운동이다.
유튜브에 ‘저항 동영상’ 올린 131명 대학생
지난 5월11일 오전 10시께, 페냐 니에토 후보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멕시코시티의 명문 사학 이베로아메리칸대학을 찾았다. 대학 쪽에서 마련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핵심 공약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수많은 학생들이 삽시간에 몰렸다. 환영 인파가 아니었다. 부패로 얼룩진 제도혁명당의 과거사와 페냐 니에토 후보를 성토하려는 것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제도혁명당은 무려 71년 동안 멕시코의 집권 정당으로 군림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 출신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폭력과 압제, 부패와 선거 부정으로 얼룩진 제도혁명당의 집권기를 ‘완벽한 독재’라고 표현했다. 제도혁명당의 몰락은 ‘라틴아메리카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불리기도 했다. 그랬던 제도혁명당의 ‘복귀’가 유력해지던 시점이었다. 학생들의 반발은 당연해 보인다.
“비겁자, 페냐 니에토 물러가라.” 학생들의 잇따른 공세적 질문에 예정보다 일찍 토론장을 빠져나가는 페냐 니에토 후보를 향해 학생들은 야유를 보냈다. “살인자, 우리는 아텐코를 잊지 않는다.” 구호도 터져나왔다. ‘아텐코’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산살바도르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2006년 5월3일 그 마을에서 도로를 점거한 채 토지 강제수용에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을 경찰이 유혈 진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해 10월16일 멕시코 국가인권위원회(CNDH)가 내놓은 아텐코 사건 조사보고서를 보면, 이날의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폭력 진압 과정에서 주민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린이 10명을 포함해 207명이 잔인하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다. 145명이 불법 연행됐고, 여성 26명이 진압 경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외국인 5명이 폭행을 당한 뒤, 불법 강제추방됐다. CNDH는 보고서에서 “대화를 통해 충분히 폭력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주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당시 현장에 경찰력 투입을 지시한 멕시코주 주지사가 바로 페냐 니에토 후보다.
유력 대선주자가 곤욕을 치렀다. 언론이 대서특필할 만했다. 하지만 멕시코 주류 언론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나마 보도를 한 언론은 “몰려든 사람들은 학생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이 동원한 선거운동원”이라는 페냐 니에토 후보 쪽 주장에 초점을 맞췄다. 학생들은 다시 한번 분노했다. 모두 131명의 이베로아메리칸대 학생들이 ‘유튜브’에 당일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자신의 학생증을 찍어 올렸다. 트위터를 타고 ‘내가 132번째’란 말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요 소이 132’ 운동은 이렇게 태어났다.
멕시코 방송 환경은 와 <tv> 등 2개 방송사가 95%를 장악한 기형적인 구조다. 지난 5월19일 학생·시민 등 ‘요 소이 132’ 운동 참여자들이 페냐 니에토 후보가 출연한 생방송이 진행되고 있던 의 본사로 몰려가 공정방송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나흘 뒤인 5월23일엔 멕시코시티 중심가에서 1만5천여 명이 몰린 가운데 주류 언론의 왜곡·편향 보도를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선관위 주최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가 열린 6월10일에도 비슷한 규모의 시위가 멕시코 전역에서 벌어졌다.
멕시코판 점령운동, 이제 시작이다
‘요 소이 132’ 운동은 멕시코판 ‘점령운동’이자 ‘아랍의 봄’으로 불린다. 흥미로운 점은 시위대의 표적이다. 현 집권세력이 아니라, 재집권이 예상되는 과거의 집권세력을 겨냥하고 있다. 선관위의 재검표로 대선 결과가 바뀔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바뀐 게 있다. 집권 이후 제도혁명당이 맞닥뜨릴 현실이다. ‘옛 버릇’을 유지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게다. 지난 12년 세월, 멕시코가 바뀌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tv></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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