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나라’ 이집트에서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6월24일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했다고 확정·발표했다. 애초 예정보다 사흘 늦은 발표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마지막 총리였던 아흐마드 샤피끄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3.46%, 정확히 98만3751표 차이였다. 선관위의 발표가 나온 직후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무르시 당선자가 “모든 이집트인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단합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각 임명권도 온전히 갖지 못하고
이튿날인 6월25일 그가 제일 먼저 만난 것은 군부였다. 지난 6월17일 대선 결선투표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일주일 동안 이집트 현지에선 “무슬림형제단과 군부가 물밑 정치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직후부터 16개월여 실권을 휘둘러온 최고군사위원회(SCAF)가 새 대통령에게 순순히 권력을 넘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날 군부가 임명한 과도내각은 무르시 당선자에게 일괄사퇴서를 제출했다. 무르시 당선자 쪽도 곧바로 내각 인선 절차에 들어갔다. 지금으로선 그게 이집트의 새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전부다. 대선 결선투표가 마무리된 6월17일 군부가 내놓은 ‘헌법 부속조항’에 따라, 총선을 다시 치러 새 의회가 들어설 때까지 이집트의 입법·사법·행정권과 군 통수권은 군부가 틀어쥘 수 있게 됐다.
하긴 내각 임명권도 온전하지 않다. 대선 결과가 확정되기 전부터, 국방장관은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군부는 헌법 부속조항에 “현직 최고군사위 위원장이 군 총사령관과 국방장관을 겸한다”고 규정해놨다. 현직 최고군사위 위원장은 무바라크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무함마드 탄타위다. 무바라크 정권을 무너뜨리고 들어서는 무르시 정부에서 탄타위는 초대 국방장관을 맡게 된다. 묘한 그림이다.
군부는 이미 내년 예산안까지 짜놨다. 이대로라면, 새 대통령은 군부가 정해놓은 경로를 이탈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6월27일엔 최고군사위 핵심들이 줄줄이 언론에 출연해 “무르시 당선자는 전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면서도, “대통령 취임 선서는 헌법재판소에서 하는 게 좋겠다”는 등 ‘훈수’를 두기도 했다. 군부가 민정이양 기한으로 제시한 6월30일 이후에도, 이집트의 권력 지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권력투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
이집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의회가 사실상 해산된 지난 6월15일 시작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대선 결과 발표가 연기되자 무슬림형제단 주도로 집회가 열렸던 6월22일에 이어, 6월28일엔 혁명을 주도한 정파 대부분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한 가지는 바뀌었다. 시위대가 외치는 구호다.
대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시위대의 으뜸 구호는 ‘군부 타도’였다. 6월28일 집회를 앞두고 주최 쪽이 내놓은 구호는 ‘권력을 넘겨라’다. 이집트 일간 은 6월28일 인터넷판에서 무바라크 정권 붕괴 직후 혁명세력이 군부와 협상을 하려고 꾸린 ‘혁명신탁위원회’ 쪽이 △헌법 부속조항 폐기 △의회 복원 △정치범 석방 △제헌 과정 불개입 등을 군부에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집트의 ‘권력투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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