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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한명 한명의 머리에 총을…

‘포대기에 싸인 아기’까지 어린이 49명 등 108명을 총과 칼로 죽인 시리아 친정부 무장세력의 훌라 학살
등록 2012-06-06 17:39 수정 2020-05-03 04:26

“포격으로 숨진 게 아니다. 한 명씩, 한 명씩, 무참히 살해됐다. …해 질 녘 들이닥친 무장괴한들은 아이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았다. 목에는 칼질을 했다.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로 처형했다.” 영국 일간지 가 5월30일치 1면에 올린 기사의 일부다. 포대기에 싸인 채 숨진 아기의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시리아의 훌라에서 숨진 49명 가운데 1명.’

학살당하는 손자·손녀를 보았다
지난 5월25일 정오께, 시리아 중부 훌라의 탈두 지역 중심가로 ‘금요 성일’ 예배를 마친 주민들이 나섰다. 훌라는 15개월여 전 시작된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가 왕성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2시간여가 지났을 때, 마을 외곽에 자리한 정부군 검문소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시위대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반정부 저항군이 응사에 나섰다. 정부군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무차별 포격을 시작됐다.
처음 두어 시간 동안은 탱크에서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어 박격포가 동원됐다. 포격의 진원지는 훌라 들머리에 자리한 군사학교 쪽이었다. 포격이 절정에 이른 이날 저녁 6시30분께, 도시 외곽으로 군복 차림의 무장괴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훌라 댐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형성된 그 동네는 압델 라자크 일가의 집성촌이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현지 조사와 전화 인터뷰 등을 거쳐 5월27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라자크 일가의 한 노인은 이날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손자 셋, 손녀 셋, 동서, 딸, 사위, 사촌과 함께 집에 있었다. 해 질 녘 총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데, 밖에서 남성 목소리가 들렸다. 가족들 앞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문 위에 숨어서 보니, 출입문 쪽에도 1명이 서 있었다. 군복 차림이었는데, 얼굴은 보지 못했다. 집안을 수색하려는 걸로 생각했다. 잠시 뒤 가족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모두 10살부터 14살 사이다. 무슨 일인지 보려고, 바닥에 엎드려 문 쪽으로 기어갔다. 그때 총소리가 들렸다. 너무 무서웠다. 이윽고 군인들이 집을 나서는 기척이 들렸다. 방 밖을 봤다. 가족 모두가 쓰러져 있었다. 몸에도, 머리에도 총알이 박혀 있었고….”
라자크 일가 68명이 한꺼번에 비명에 가던 그 시각, 현지 인권운동가 하디 압달라는 유엔 시리아감독위원회(UNSMIS)에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훌라에서 학살극이 벌어졌다. 빨리 와달라.” 인터넷 대안매체 이 5월28일 전한 내용을 보면, 유엔 쪽의 반응은 이랬단다. “시리아 당국이 해가 진 뒤엔 이동을 금하고 있다.” 이튿날 현지를 방문한 UNSMIS는 주민 108명이 참혹하게 살해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가운데 49명이 어린이였다.

중국과 러시아, 여전히 개입 반대
5월28일 코피 아난 유엔 특사가 시리아로 날아갔다. 분노한 국제사회는 자국 주재 시리아 대사를 잇따라 추방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최소한) 유엔 차원의 진상 조사를 거쳐 책임자를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선 ‘군사개입’을 입에 올린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반대’다.
그사이, 학살은 계속된다. 는 5월31일 인터넷판에서 현지 유엔 관계자의 말을 따 “시리아 동부 디에르아조르에서 약 50km 떨어진 아주카르에서 13구의 주검이 추가로 발견됐다”며 “희생자들의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격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날도 훌라를 비롯해 저항이 거센 홈스주 일대에 대한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쩔 것인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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