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9일(현지시각) <abc>의 간판 아침 프로그램 에 출연했다. 현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간 끝에 ‘동성결혼’ 허용 문제로 질문이 이어졌다. 잠시 뜸을 들인 오바마 대통령은 작심한 듯 이렇게 말했다.
“오랜 기간 주변 친구들과 이웃을 둘러봤다. 평생 배우자에게 충실하며, 함께 자녀를 키우는 동성커플이 많다. 그럼에도 부부의 연을 맺지 못한다. 동성커플이 결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그런 개인적인 생각을 이제는 밝힐 때가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바마의 ‘진화’가 마침내 완성됐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것이 1789년 4월30일이니, 무려 223년이나 걸린 셈이다. 동성애 인권단체 ‘전미 게이·레즈비언 태스크포스’(NGLTF)가 이날 성명을 내어 “오바마 대통령의 ‘진화’가 마침내 완성됐다”고 반긴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단체의 레아 캐시 사무총장은 “동성커플의 합법적인 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선거의 해다. 따질 건 따져보자.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4월25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7%가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43%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에 실시된 같은 조사에선, 찬성 의견이 39%에 그친 반면 반대 의견이 51%였다. 그보다 4년 앞선 2004년 조사에선, 반대의견이 60%인 반면 찬성의견은 31%에 그쳤다. 미국이 변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abc>은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며 두 가지 점에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개인적인 의견’이란 점을 강조했고, 동성결혼 허용 문제는 각 주에서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는 게다. 오바마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떠올려보면, 이날 발언의 비중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성인 부부가 누리는 것과 똑같은 법적 권리와 보호장치를 동성커플도 누려야 한다”는 말을 그는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해 왔다. 달라진 건 뭔가?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는 ‘공적’을 이뤄냈지만, 외교·안보 정책이 올 선거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폐허’로 만들어버린 미국 경제는 3년여가 흘렀음에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에 나선 역대 미 대선에선, 어김없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구호가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억울할 터다.
‘게이’ 대변인 사퇴 압력에 침묵한 롬니
그래서다. 새삼스럽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정치인이, 특정 언론에 대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일부러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더구나 ‘동성결혼’에 대한 찬반 의견은, 미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리트머스시험지’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폭발력이 있는 주제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림수’는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다가오는 11월 미 대선의 화두로 ‘이념’이 전면에 내세워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오바마 대통령의 ‘프레임’ 전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외교·안보 정책 분야에서 대변인 노릇을 해온 리처드 그레넬이 지난 5월2일 전격 사퇴한 것도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레넬이 게이란 사실이 알려져 공화당 우파의 사퇴 압력이 집중됐을 때, 롬니 후보는 침묵을 지켰다. 이쯤 되면,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건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bc></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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