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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빼앗겨 밥조차 빼앗기겠네

[세계]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케냐 면적만큼의 토지가 다국적 자본에 팔려나가…
만성적 기아 국가에 거래 집중돼
등록 2012-05-16 14:36 수정 2020-05-03 04:26

유엔인구기금(UNFPA)의 자료를 보자. 지난해 중반(또는 올해 초) 70억 명을 넘어선 인류는 오는 2030년 즈음 80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2050년께엔 90억 인류 시대를 맞게 될 전망이다. 먹을 입이 늘어나면, 먹을거리도 늘어야 한다. 경제성장에 따라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게다. 유엔은 “2050년이 되면, 인류를 먹여살리는 데 지금 수준보다 적어도 70% 많은 식량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구촌 차원에서 ‘농토 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세계은행이 자금 대서 주민 내쫓아”
지난 4월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세계은행의 ‘토지와 빈곤’ 연차총회가 개막됐다. 이날에 맞춰 ‘지구의 벗’과 ‘비아캄페시나’(농민의 길) 등 환경·농민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세계은행이 각국 정부와 기업이 전세계 개발도상국가에서 값싸게 토지를 확보하는 것을 지원해, 현지 주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영국 은 이들의 주장을 따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세계은행의 조언에 따라 농업의 규모를 키우고 외국자본에 토지를 내주는 정책을 지속해왔다”며 “세계은행은 이에 필요한 자금을 대줘, 오랜 세월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어온 현지 주민들이 농토를 잃고 쫓겨나는 현상을 조장해왔다”고 전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한 지경이다. 잠시 따져보자.
세계적 인도지원단체인 옥스팸은 지난 4월27일 ‘남반구에서 이뤄진 다국적 농지거래 현황’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6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다국적 시민·사회·연구단체가 참여해 만든 데이터베이스 ‘랜드메트릭스’가 내놓은 최신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이뤄진 추적 가능한 대규모 토지 거래는 모두 1217건에 이른다. 지구촌에서 경작 가능한 농토의 1.7%에 이르는 약 8320만ha가 ‘주인’을 바꿨다는 얘기다.
거래가 집중된 지역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였다. 모두 754건의 대규모 토지 거래가 이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대상 면적만도 약 5620만ha에 이른다. 아프리카 전체 농경지의 4.8%, 면적으로 세계 47위인 케냐의 국토 전체에 해당한단다. 특히 11개 국가에 투자의 70%가 몰렸는데, 수단·에티오피아·모잠비크·탄자니아·마다가스카르·잠비아·콩고민주공화국 등 이 가운데 7개국이 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전체 토지 거래 건수의 66%는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가에서 나타났다니, 굶주린 주민들의 농토를 다국적 자본이 채가고 있다는 얘기다.
미 오클랜드연구소가 지난해 펴낸 에티오피아 농토 획득에 나선 외국자본 현황에 대한 65쪽 분량의 보고서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 오랜 세월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려 외국 원조에 기대 살아온 에티오피아는 2008년 초반부터 자국 농토를 ‘개방’했다. 연구소의 분석 결과, 최근까지 적어도 361만9509ha의 토지가 외국자본에 넘어갔단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논리’는 분명해 보인다. “끌어들인 외국자본으로 내수를 살리는 한편, 선진 농업기술 이전을 통해 생산량이 늘어나 소농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란 게다.
현실은 어떨까? 영국 는 지난 1월18일치에서 “에티오피아 정부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고 주민 수만 명을 사실상 자기 땅에서 강제 퇴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미 300만ha 이상의 농지를 외국자본에 넘긴 에티오피아 정부가 추가로 210만ha의 농지를 중국과 중동권 국가에 투자를 미끼로 장기 임대해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적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로 인해 적어도 150만 명의 에티오피아 농민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농업 대륙으로 재탄생?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외국자본의 정체는 뭘까? 크게 세 가지 부류다. 첫째, ‘식량주권’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신흥개발국이 있다. 둘째, 돈은 많지만 경작지가 부족한 중동국가들이다. 셋째, 바이오연료 사용량을 늘리려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개발국들이다. 다시 옥스팸의 보고서를 보면, 이들의 투자는 네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2000~2010년 이뤄진 전체 1217건 가운데 442건(3020만ha)이 민간기업 독자투자였다. 국영기업은 172건에 1150만ha, 투기성 자본이 32건에 330만ha를 확보했다. 이른바 ‘민관 컨소시엄’은 12건 60만ha에 그쳤다. 외국자본이 투자된 토지의 34%만이 오로지 식량 생산에 집중했다. 고무 등 ‘비식량 부문’과 콩·사탕수수·야자 등 주로 바이오연료 생산용 ‘유연성 작물’ 재배엔 각각 26%와 23%가 활용됐다. 나머지는 ‘다용도’란다.
수지가 맞을까? 대표적 식량수입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예로 들어보자. 사우디의 한 해 강수량은 100mm 수준이다. 전체 수자원의 85~90%를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수 자원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내수용 식량 생산과 이에 필요한 수자원까지 확보할 수 있는 국외투자에 열을 올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토지 확보는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상황은 훨씬 복잡할 수밖에 없다. 톰슨로이터사가 운영하는 인도지원·구호 전문 매체 은 지난 5월2일치 기사에서 레스터 브라운 미 지구정책연구소(EPI) 소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아무런 농업 기반이 없는 나라에서 현대적인 대규모 농업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도로도 닦아야 하고, 농기계 생산은 물론 수리와 부품 공급도 해야 하고, 농산물 저장시절에 비료공장, 관개시설, 또 농기계용 유류시설까지 갖춰야 한다. 사회·경제적 흐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땅 뺏기 경쟁’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애나 로크 영국 해외개발연구소(ODI) 개발정책국장은 같은 날 과 한 인터뷰에서 “외국 정부나 기업 처지에선 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농지를 확보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될 것”이라며 “5년, 10년 단위가 아니라 50년 이상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해외 토지 임대·매매가, 갈수록 휘발성이 높아지는 국제 식량시장에 마냥 의존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굶주린 땅의 농산물은 국제시장으로
경제학은 ‘희소한 자원’의 활용에서 시작된다. 토질이 비옥하고, 용수 공급까지 쉬운 경작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희소한 자원은 미래에 ‘상품’으로 투자할 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다. ‘땅 뺏기’ 경쟁이 이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그 땅에서 생산되는 상품(식량)은 국제시장에서 거래된다. ‘지불 능력’이 있는 이들만 소비가 가능하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이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 지금껏 그래왔다. 굶주림의 세계화다. 70억, 80억, 90억 인류 시대에도 변함이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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