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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 롬니에게서 부시의 냄새가…

‘부시 독트린’ 외친 PNAC 멤버들 캠프 특별자문위원, 외교안보 진용 ‘네오콘의 부활’ 조짐 뚜렷
등록 2012-05-16 14:31 수정 2020-05-03 04:26

“대통령님, 미국의 현 이라크 정책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확신을 갖고 이 편지를 씁니다. 냉전이 끝난 뒤 최악의 안보 위협이 중동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시점입니다. 다가오는 신년 의회연설(연두교서)에서 커져만 가는 이 위협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맞설 기회를 갖게 되실 겁니다. 그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초점을 맞추셔야 합니다. 어렵겠지만 꼭 필요한 그 과업을 위해,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호하게 행동에 나서주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8년 대테러 전쟁 이끈 네오콘 심장부, PNAC
1998년 1월26일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받아든 공개서한의 내용이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라크를 침공하라”는 게다. 편지글 말미에는 18명의 외교안보 전문가가 연대 서명을 했다. 이름이 낯설지 않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존 볼턴, 폴라 도브리앤스키, 로버트 카간, 윌리엄 크리스톨, 리처드 펄, 도널드 럼즈펠드, 윌리엄 슈나이더, 빈 웨버, 폴 울포위츠, 제임스 울시, 로버트 졸릭….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8년 세월 ‘대테러 전쟁’을 이끈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네오콘의 심장부라 불렸던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소속이라는 사실이다.
“침략자로부터 미국과 우방을 보호하기 위해,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세계의 지도국가가 되면, 이 혼란스런 세계에서 ‘경찰’의 임무를 맡는 수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나라와 협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에 대해선 언제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유지해야 한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밋 롬니 후보는 지난해 10월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자리한 시타델군사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연설은 롬니 후보가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을 종합적으로 발표하는 첫 자리였다. 그는 이날 △이슬람 근본주의 △이란·북한·베네수엘라·쿠바 등 반미국가 △슈퍼파워가 되려는 야심을 숨긴 채 성장하고 있는 중국 △부활하는 러시아를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어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의 퇴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지던 PNAC의 외침을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이날 롬니 후보 연설의 주제는 ‘미국의 세기’였다. 롬니 후보 선거운동본부에서 최근 펴낸 외교정책백서의 제목도 ‘미국의 세기’다. 미국 예외주의와 강력한 군사력 투사를 강조한 것도, 외교적 협상보다 국제무대에서 ‘통제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내세운 것도 네오콘의 주장과 닮아 있다.
그러고 보니, 백서의 서문을 쓴 인물도 예사롭지 않다.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 교수다. 그는 부시 행정부 말기 2년 동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네오콘의 대부’ 격인 폴 울포위츠 전 국방부 부장관과 리처드 펄 전 백악관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의 ‘후계자’로 꼽힌다. 백서 제목으로 ‘미국의 세기’가 등장한 게 우연은 아니다. 진보적 시사주간지 이 지난 5월6일 인터넷판에서 “롬니 후보 선거캠프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활동하는 ‘자문위원’ 22명 중 15명이 부시 행정부 출신”이라며 “이 가운데 6명은 PNAC의 핵심 멤버였다”고 지적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군에서도…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패배한 직후 워싱턴 정가에 새롭게 등장한 싱크탱크가 있다. ‘외교정책구상’(FPI)이라 불리는 이 단체 창설을 주도한 이사진은 에릭 에델먼, 로버트 카간, 댄 새노어, 윌리엄 크리스톨 등 4명이다. 이 단체는 지난 3년여 동안 △아프가니스탄 병력 증파와 2014년 철군 반대 △이라크 전면 철수 대신 병력 2만 명 규모 유지 △선제타격 등 군사적 수단을 통한 이란 정권 교체 △시리아 군사 개입 △국방예산 삭감 반대 등 이른바 ‘부시 독트린’을 워싱턴 정가에서 지속적으로 외쳐왔다. 네오콘의 기관지 격인 의 편집장으로 PNAC 창립 멤버였던 크리스톨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진 3명은 현재 롬니 캠프에서 ‘특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1월 대선에서 롬니 후보가 당선될 경우 들어서게 될 백악관의 외교안보 진용에 대한 하마평에서도 ‘네오콘의 부활’ 조짐이 뚜렷해 보인다. 인터넷 매체 가 지난 5월7일 워싱턴 정가를 떠도는 소문을 모아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자. 국무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부시 행정부 시절 유엔 대사를 지낸 네오콘 강경파 존 볼턴이다. 그는 올초 일찌감치 롬니 후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방장관으론 부시 행정부에서 중앙정보국장은 지낸 마이클 헤이든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대테러전쟁’의 전도사를 자처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후보군으로 꼽히는 인물은 크게 3명이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부시 행정부 초반 대테러 업무를 도맡다가 다국적 민간 경호업체인 ‘블랙워터’의 부회장을 지낸 코퍼 블랙이 첫손에 꼽힌다. 부시 행정부에서 아프간·이라크 담당 국가안보부보좌관을 지낸 메건 오설리번, 역시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부보좌관으로 활동한 엘리엇 에이브럼스의 이름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들 모두 이미 롬니 캠프에 결합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오콘의 ‘새 세기’가 열리는 겐가?




2012년 미국 선거의 화두는 ‘이념’
‘극우’ 머독, 온건파 거물 루거 잡아 이변

지난 5월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후보 공화당 경선은 애초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현직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과 도전자로 나선 리처드 머독 주 재무장관의 무게감이 워낙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루거 의원이 누군가? 1976년 연방 상원에 진출한 이래 내리 6선을 한 공화당을 대표하는 ‘거물’ 정치인이다. 임기 6년의 상원의원 생활만 올해로 36년째, 말하자면 ‘직업이 상원의원’이다. 세계적인 명성도 쌓았다. 상원 외교위원장 출신인 그는 옛 소련 해체 뒤 민주당 샘 넌 전 상원의원과 함께 이른바 ‘넌-루거 프로그램’(CTR·협력적 위협 감소)을 통해 핵군축을 주도했다. 6선 도전에 나선 2006년 선거에선 상대편인 민주당에서 아예 후보를 내지 못한 것도 이런 그의 ‘후광’ 때문이었다.
반면 머독 장관은 전국 무대에선 사실상 ‘정치 신인’에 가까웠다. 1988년 인디애나주 제8선거구에서 연방 하원의원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했고, 1990년과 1992년 거푸 당내 경선을 통과했지만 본선에서 10% 안팎의 차이로 프랭크 매클로스키 의원에게 패했다. 2006년 주정부 재무장관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는 기초자치단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번 경선 결과가 싱거울 것이란 전망이 많았던 이유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은 “개표 초반부터 약 20%포인트의 격차를 유지한 머독 장관이 거물을 잡았다”고 전했다. ‘비결’이 있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루거 의원은 ‘공화당 온건파의 상징’으로 통해왔다. 주요 표결이 있을 때마다 ‘당파성’을 따지는 대신 ‘초당적 협력’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사안에 따라선 민주당과 적극적으로 협상하고 협력해왔다. 공화당 우파로선 마뜩잖게 여길 만했다.
머독 장관이 선거운동의 ‘포인트’로 삼은 것도 이 지점이다. 등은 “머독 장관 선거캠프에서 루거 의원이 민주당과의 협력에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비판하는 정치광고에 약 3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자금은 어디서 왔을까? 극우 성향의 풀뿌리 단체인 ‘티파티’가 적극적으로 ‘루거 저격수’로 나섰다. 머독 장관은 경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공화당과 상원, 그리고 미국이 좀더 보수적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이 기적을 일궈냈다”고 주장했다.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건 대선만이 아니다.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 주지사·주의회 선거가 동시다발 실시된다. 2010년 중간선거 이후 주춤하는 듯했던 티파티가 다시 힘을 쓰기 시작한다. 다시, 미국이 ‘이념투쟁’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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