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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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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라덴은 정말 죽었을까

오사마 빈라덴 사살 1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프간 날아가 ‘임무 완수 코앞’ 주장…
국내 정치용 연설과 달리 빈라덴 없는 알카에다 네트워크 건재하고 아프간 평화는 요원해
등록 2012-05-11 15:28 수정 2020-05-03 04:26

‘단 한 번의 기회.’
지난 4월27일 ‘유튜브’에 올라온 1분29초 분량의 짤막한 동영상에는 이런 제목이 달려 있었다. ‘군 최고통수권자에겐 올바른 결정을 내릴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뿐이다’란 자막으로 시작되는 이 영상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내레이터로 등장한다. 그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한 가지는 옳은 소리를 했다.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자다. 그 누구도 결심을 대신 해줄 순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 5월2일 새벽 촬영한 적외선 카메라 영상이 이어진다.

밋 롬니 비판에 이용된 빈라덴 사살
그날 파키스탄 북서쪽 가지에 있는 공군기지에서 미 해군 특수전부대(네이비실) 정예요원들이 중무장한 전투용 헬기 4대에 나눠 타고 이륙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km가량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비랄 마을 주택가가 목적지였다. 새벽 1시15분께 마을의 한 이층집으로 다가서던 헬기를 향해 로켓유탄발사기(RPG)가 화염을 뿜었다. 헬기 1대가 추락했다. 이내 헬기에 장착된 중화기가 불을 뿜었다.
교전이 시작된 때로부터 네이비실 요원들이 현장을 빠져나가기까지는 고작 40분 남짓이 걸렸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표적이던 ‘제로니모’를 잡은 게다. 보고를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시각으로 5월1일 밤 11시35분께 백악관에서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섰다. 9·11 동시테러의 배후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는 발표가 전세계로 타전된 순간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네이비실 요원들이 (남의 나라 영토에서) 침투작전에 나섰는데, 그곳에 빈라덴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요원들이 붙잡혀 사살되기라도 했으면 또 어땠을까? 재앙적 상황이 닥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고심 끝에, 그대로 있을 순 없다고 판단했다. 어렵고도 존경할 만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내레이션이 계속되는 동안 자막이 등장한다. ‘밋 롬니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화면에는 2007년 8월4일 이 전한 “롬니 후보, 파키스탄 영토에서 알카에다 타격 가할 수 있다는 오바마 후보 비판”이란 기사가 등장한다.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대통령이란 무릇 그래야 한다.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최종 결심을 하는 게 바로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올린 이 동영상은 일주일 남짓 만에 5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빈라덴 사살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3년여 임기 중에 한 일 가운데 최고의 업적으로 꼽힌다. 빈라덴 사살 1년을 맞은 지난 5월1일 오바마 대통령이 아예 아프간으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교안보 정책도 결국 ‘국내 정치용’이었던 게다.
이날 밤 10시께 아프간 수도 카불 외곽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자정 무렵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 ‘전략동반자협정’ 조인식을 열었다. 모두 10쪽 분량으로 알려진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산이나 주둔군 규모 등에 대해선 적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징적인 조처’였던 셈이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 장병들의 환호 속에 대국민 연설을 했다. 백악관이 내놓은 연설문 전문을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했다.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을 근거지로 테러조직을 꾸리고, 9·11 동시테러를 준비했다. 그래서 10년여 전 전쟁이 시작됐다. 초기 성공적으로 전투를 수행했지만, 전쟁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 빈라덴과 그 수하들은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은신처를 옮겼다.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최근 3년 새 상황이 바뀌었다. 탈레반의 동력을 무력화했다. 아프간 군대를 강하게 육성했다. 알카에다 지도자급 30명 가운데 20명을 사살했다. 1년 전에는 오사바 빈라덴을 사살했다. 임무 완수가 코앞이다.”

‘알카에다 종말론’은 어디로 갔을까
부시 전 대통령도 비슷한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있다. 이라크 침공 이후 한 달여 만인 2003년 5월1일 미 항모 ‘USS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오른 그는 이라크에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선언했다.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마친 것은 그로부터 7년7개월여가 흐른 지난해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코앞’이라고 말한 ‘임무’는 어떨까?
사실 지난해 5월 빈라덴 사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알카에다 종말론’이 미 정치권 안팎에서 심심찮게 들려왔다. 빈라덴 사살작전 당시 중앙정보국장을 지냈던 리언 파네타 국방장관도 지난해 7월9일 아프간을 방문한 자리에서 “알카에다 궤멸이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앞다퉈 ‘알카에다 흥망사’를 주제로 한 책을 쏟아냈다. 현실도 그런가?
미 외교안보 전문 격월간지 는 최근 발행한 5~6월호에서 “오사바 빈라덴이 숨진 지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알카에다의 종말을 말하기는 이르다”며 “되레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부활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지고 보면 9·11 동시테러를 빌미로 이뤄진 아프간·이라크 침공 이후 알카에다는 지속적으로 세력을 키워왔다. 이라크에서, 예멘 등 아라비아반도에서, 북아프리카 일대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에서 알카에다 ‘지부’가 만들어졌다.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에선 자생적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알사하브’가 지난 2월 알카에다와 공식 통합을 선언하고, 빈라덴의 후계자로 알려진 아이만 알자와히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는 이렇게 분석했다.
“자와히리 등을 정점으로 하는 알카에다 핵심 지도부는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지대에 은신하고 있다. 이들이 안전 문제로 바깥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알카에다는 네트워크를 통한 분화를 거듭하고 있다. 개별 국가 안에서 나름의 신망을 얻고 있는 단체와 결합해 싸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만약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미군 철수 이후)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을 무너뜨린다면, 알카에다는 최대의 정치적 승리를 챙기게 될 것이다.”
2001년 10월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됐다. 그간 쏟아부은 예산만 5230억달러에 이른다. 약 2천 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고, 1만5300여 명이 다쳤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월1일 밤 연설에서 “(2014년 철군 이후에도) 미군 훈련교관 등이 10년 더 아프간에 주둔하며 지원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구 주둔 기지를 만들지는 않겠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2024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수순처럼 이어진 탈레반의 보복공격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아프간에 머문 건 6시간 남짓이다. 그를 태운 ‘미 공군 1호기’가 이륙한 직후인 5월2일 새벽 수도 카불 중심가에 자리한 외국인 거주지역 ‘그린빌리지’에선 굉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차량폭탄 공격과 이어진 총격전으로 7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누구 짓인지는 뻔하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등 외신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아프간 방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이번 공격을 서둘러 준비했다”고 말했다. 빈라덴이 숨진 뒤 1년이 흘렀어도, 아프간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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