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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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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몰디브를 구할 대통령을 구하라

기후위기 알린 나시드 전 몰디브 대통령 사연 담은 영화 <아일랜드 프레지던트> 미국 개봉…
그가 ‘쿠데타’로 밀려나자 탄소가스 배출 규제안 반대국들 앞다퉈 새 정부 승인
등록 2012-05-05 16:15 수정 2020-05-03 04:26

스리랑카 남서부에서 약 700km, 인도 남동부에서 약 400km 떨어진 인도양 한가운데에 몰디브공화국이 있다. 1192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나라지만, 유인도는 200개에 불과하다. 2012년 1월을 기준으로 인구는 약 33만 명이다. 면적도, 인구도 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몰디브의 평균 해발고도는 고작 1.5m, ‘간신히 물 위에 떠 있다’는 표현이 옳겠다. 그나마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침식이 장기간 이어져왔다. 육지도 점점 줄어든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오래잖아 나라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3월 말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존 셴크 감독의 (The Island President)는 그 나라에서 두 달여 전까지 대통령으로 일했던 모하메드 나시드에 관한 얘기다.

30년 독재 맞선 몰디브의 만델라
1887∼1965년에 영국의 보호령이던 몰디브는 1965년 7월 독립했다. 3년여 뒤인 1968년 5월 국민투표를 거쳐 공화국이 선포됐고, 5년 임기의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몰디브 역사에서 두 번째 공화국이다. 제2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브라힘 나시르가 재선을 한 뒤, 마우문 압둘 가윰 대통령이 내리 6선을 했다. 옹근 30년 세월이다. 인도양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몰디브가 떠오르는 동안 정치는 전혀 바뀔 줄 몰랐다. 조그만 섬나라의 정치에 국제사회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08년 10월 치른 대선은 건국 이래 처음으로 ‘복수 후보’가 출마한 선거였다. 그전까지는 단 1명의 후보가 출마해, 찬반 투표를 했다. 7선을 노리는 가윰 대통령에 맞선 것은 민주화운동가 출신 모하메드 나시드 몰디브민주당(MDP) 후보였다. 1차 투표에선 가윰 대통령이 40.34%(7만1731표)를 득표해, 24.91%(4만4293표)를 얻은 나시드 후보를 제쳤다. 하지만 결선 투표에서 사회민주당·이슬람당 등 야권과 연합한 나시드 후보가 전세를 뒤집어 54.2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새 시대’가 열린 게다.
나시드 대통령은 1967년 5월 몰디브 수도 말레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스리랑카·영국 등지로 유학길에 오른 그는 1989년 리버풀의 존무어스대학을 졸업한 직후 고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 그는 시사잡지를 창간하고, 가윰 대통령 정권의 부정부패를 집중 보도했다. 대가는 가혹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16차례나 투옥돼 모두 6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 가운데 18개월은 독방 신세였다. 그러는 새 그는 ‘몰디브의 만델라’란 별명으로 불리게 됐다.
집권 이후 나시드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기후변화 대응이었다. 기후변화로 수위가 높아져 ‘나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던 터다. 그는 취임 넉 달여 만인 2009년 3월 몰디브를 10년 안에 풍력·태양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만을 사용하는 ‘탄소중립국’으로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스쿠버 장비를 착용한 채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중 국무회의’를 열어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끈 것도 몰디브의 절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총구 들이대고 위협해 사임”
2009년 11월 그는 기후변화에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영향받는 나라의 지도자들과 함께 ‘기후취약국포럼’(CVF)을 창설했다. 같은 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정상회의(COP15)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나시드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코펜하겐 회의에선 미국·중국·인도 등 주요 탄소가스 배출국들이 이룬 합의는 말뿐이었다. 는 나시드 대통령의 집권 첫 1년 동안 벌인 ‘기후변화와의 투쟁’을 촘촘히 담아낸 기록물이다.
나라 밖에서 ‘기후변화의 전사’로 이름이 높아가는 동안, 나라 안에선 정치적 위기가 싹트고 있었다. 나시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슬람 장관직을 신설하는 등 대선 과정에서 합의한 연립정부 구성에 나섰다. 각당 대표자들이 합류한 초대 거국 내각은 모두 14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취임 넉 달여 만인 2009년 3월부터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이 하나둘 정부에서 빠져나갔다. 집권 1년 만에 내각에 남은 것은 그가 공동 창설한 몰디브민주당 출신 인사들뿐이었다.
2010년 6월엔 장관 13명이 한꺼번에 사임서를 제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의회를 장악한 야당이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해, 더 이상 헌법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시드 대통령은 이들 모두를 재임명하고, 임명 동의안을 의회로 보냈다. 차일피일 동의안 처리를 미루던 의회는 신임 장관 가운데 5명을 제외한 나머지의 동의안을 부결했다. 의회를 장악한 가윰 전 대통령의 ‘몰디브인민당’(DRP)의 ‘작품’이었다. 교착 상태는 장기간 이어졌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DRP의 주도로 야권은 연대체를 꾸리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위기가 짙어지자 나시드 대통령도 조급해졌다. 그는 지난 1월16일 부패 정치인들의 기소를 미루며 정부와 맞서온 압둘라 모함메드 판사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헌법의 보호를 받는 현직 판사에 대한 체포 명령은 곧장 ‘위헌 시비’로 번져 시위가 격화하는 빌미가 됐다. 치명타였다.
결국 지난 2월6일 경찰이 시위대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동참했다. 이튿날, 나시드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 나서 “내가 대통령직을 유지하면 국민의 고통이 커질 것”이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30년 독재를 청산하고 집권한 지 3년3개월 만의 일이다. 그는 며칠 뒤 “총구를 들이대고 위협을 해 강제로 사임해야 했다. 명백한 쿠데타다”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미 정국을 장악한 야권은 ‘자발적인 정권이양’에 따라, 무함마드 와히드 하산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승계하도록 했다. 시위대는 이내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해수면은 계속 상승한다”
‘쿠데타’ 이후 두 달여 몰디브 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끌어온 나시드 대통령은 지난 4월18일 인도 방문길에 올랐다. 그는 그날 뉴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몰디브에서 조기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는 나시드 대통령의 말을 따 “(쿠데타로 들어선 몰디브의) 새 정부를 발 빠르게 승인해준 나라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탄소가스 배출 규제안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나라는 거의 일치한다”고 전했다. 그러고 보니, 우연이라기엔 묘하다. 개봉을 앞둔 미 미시간주 일간지 는 4월26일 인터넷판에 올린 영화평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해 9월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소개되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나시드 대통령의 싸움에 크게 힘이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 2월 나시드 대통령은 몰디브의 옛 정권에 충직한 세력들에 의해 축출됐다.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던 지도자가 그 직을 잃었다. 그리고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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