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아부그라이브에선 산 자들이 노리개였다. 아프가니스탄 자볼주에선 죽은 자들 차례였다. 산 자의 목에 개목걸이를 걸더니, 죽은 자의 몸뚱이를 생선 두름처럼 엮었다. 전쟁이다. 전쟁터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게다.
처참하게 스러진 육신이 마냥 능욕을 당하고 있다. 뼈와 살점이 피와 엉겨붙은 옷가지, 숨진 이의 잘라진 두 다리를 끈으로 묶어 들었다. 사진 속 선글라스를 낀 미군 병사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일부는 숨진 이의 주검에서 떨어져나온 팔을 제 어깨에 대고 렌즈를 향해 허연 이빨을 드러낸다. 가 4월18일 전한 아프간 주둔 미 82 공수사단 병사들의 모습은 11년을 넘긴 ‘오만한 전쟁’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지난 1월엔 미 해병대원 4명이 탈레반으로 보이는 숨진 아프간인들의 주검에 대고 낄낄대며 오줌을 싸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2월엔 수도 카불 외곽에 자리한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서 이슬람의 성서 ‘코란’이 불태워졌다. 3월엔 미 육군 하사관이 새벽녘 민가를 덮쳐 무차별 총격을 가해 무고한 주민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 공개한 18장의 ‘주검 모욕’ 사진은 2010년 2월과 4~5월께 촬영된 것이란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게다.
탈레반의 파키스탄 교도소 습격 사건
애초 미군 당국은 신문 쪽에 문제의 사진을 게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사진에 등장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아프간 주둔 미군의 절대다수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라며 “2년여 전에 찍은 이들 사진 때문에 폭력을 부추겨 쓸데없는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커비 대변인은 이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현지 주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를 강구해뒀다”고 덧붙였단다. 사진에 등장하는 병사 7명 가운데 1명은 지금도 아프간에 주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 처지에선, 사진의 내용도 ‘악성’이지만 공개된 시점이 더욱 좋지 않을 터다. 최근 잇따른 미군의 ‘이상행동’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탈레반이 대규모 공세를 단행한 게 사진이 공개되기 불과 사흘 전이었다. 지난 4월15일 수도 카불을 비롯해 아프간 각지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대담한 공세가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였다. 미군과 나토(NATO)군이 철군 시한으로 정한 2014년 말 이후 아프간이 어떤 상황에 처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보인 게다.
그날 탈레반은 이른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다. ‘전초전’이 벌어진 것은 파키스탄 북서부 도시 바누였다. 아프간 국경과 가까운 그곳은 탈레반의 은신처로 알려진 북와지리스탄으로 가는 관문이다. 현지시각으로 이날 새벽 2시30분께 픽업트럭에 나눠 탄 중무장한 탈레반 200명가량이 바누의 교도소로 들이닥쳤다. 수류탄을 던져 정문을 부순 그들은 총질을 해대며 곧장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
“2001년 이래 가장 대담한 공격”
경비를 선 교도대원 30여 명이 응사를 했지만, 인원도 무기도 중과부적이었다. 은 “2시간여 총격전이 벌어지는 사이, 전체 수감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400명가량이 탈출을 감행했다”며 “이 가운데는 2003년 12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당시 파키스탄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하다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드난 라쉬드도 포함돼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과감한 ‘파옥’이었다. 앞서 파키스탄 당국은 탈레반의 교도소 습격 가능성을 우려해 최근 호카트와 라키마르와트 등 인근 지역 교도소에서 탈레반 출신 수감자를 대거 바누 교도소로 이감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본격적인 ‘4·15 공세’는 이날 정오 무렵 시작됐다.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복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성이 울렸다. 공세의 주요 목표물을 보면 탈레반이 이번 공세를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했는지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카불 중심가에 자리한 아프간 의회와 육군사관학교, 정부 고위 인사와 각국 외교관 공관이 밀집해 있는 셰르푸르 거리로 공세가 집중됐다. 미국·영국·독일·일본·러시아 등 각국 대사관도 어김없이 박격포탄 세례를 받아야 했다. 캠프 에거·캠프 웨어하우스·캠프 가즈니 등 카불 일대 다국적군 기지는 물론 나토군사령부와 대통령궁까지 탈레반의 표적이 됐다. 카불 공세는 이튿날까지 18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날의 공세는 카불에 국한되지 않았다. 인근 낭가르하르·로가르·팍티아 주에서도 비슷한 시각에 무장공세가 불을 뿜었다. 로가르주에선 주정부 청사가, 잘랄라바드에선 공항이, 팍티아주에선 경찰시설 2곳에 공세가 집중됐다. 이뿐 아니다. 아랍 위성방송 는 “이날 하루에만 아프간 전역에서 적어도 19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졌고, 카불 등지에서 미수에 그친 것만 17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아프간 내무부는 이날의 공세로 탈레반 무장대원 36명을 포함해 모두 47명이 목숨을 잃고, 민간인 25명을 포함해 65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자비훌라 무제헤드 탈레반 대변인은 <afp>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카불 정부와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라며 “카르자이 정부와 침략군은 얼마 전 탈레반이 춘계 공세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오늘의 공격은 춘계 대공세의 시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0년여간, 탈레반은 봄철 대공세를 그치지 않아왔다. 등 서방 언론은 일제히 “2001년 카불에서 쫓겨난 이래 탈레반이 보인 가장 대담한 공세였다”고 평가했다.
미국 쪽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라이언 크로커 아프간 주재 미 대사는 4월15일 <cnn>과 한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성명은 잘 내는데, 실전은 별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어 탈레반의 공세를 ‘비겁하다’고 비난하며 “아프간 군경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치켜세웠다. 한마디로 ‘대수롭지 않다’는 게다.
무모한 전쟁의 후폭풍은 끝나지 않아
탈레반은 지난해 9월에도 카불 주재 미 대사관과 나토군 사령부 등지를 19시간 가까이 공격한 바 있다. 그때도 이번과 비슷한 전술을 취했다. 공사 중인 빈 건물을 거점 삼아, 시위라도 벌이듯 장시간 버텨가며 총질을 해댔다. 그럼에도 아프간 군경도 미군 등 나토군도, 주요 시설물 인근의 빈 건물에 대한 감시·정찰을 강화하지 않았다. ‘4·15 공세’에서도 탈레반은 비슷한 전술로 18시간여를 버텨냈다.
요새화한 수도 한복판까지 침투했다. 치밀한 사전 계획 아래 주요 목표물을 집중 공격했다. 막강한 화력 앞에서도 18시간여를 버텨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려스러운 건, 탈레반이 다국적군과 정면 출돌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도심 게랄라전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철군을 앞둔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인터넷판 가 4월16일 한 아프간 전문가의 말을 따 “성명서 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은 탈레반이 아니라 되레 미국 쪽인 듯하다”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무모하게 시작한 전쟁, 끝내기도 쉽지 않다. 누구 탓을 할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cnn></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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