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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값마저 한 줌

아프간 주민의 위로 받지 못하는 슬픔… 미국쪽 보상금 최대 2500달러에 불과, 학살 사건 등 전말 명확히 밝히지도 않아
등록 2012-04-05 10:50 수정 2020-05-02 04:26

지난 3월12일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주 판즈와이에서 현지 주둔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 여성 3명, 어린이 9명을 포함해 희생자 수는 17명이다. 모두 자기 집에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곧바로 붙잡혔다. 미 육군 하사관 로버트 베일스(38)로 밝혀졌다. 육군 공로훈장을 여섯 차례, 선행훈장을 세 차례나 받은 ‘역전의 용사’였다.

불투명한 진실, 뻥 튄 위로금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미군 당국의 공식 발표 내용은 이렇다.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던 베일스 하사는 사건 당일 술에 취한 채 주둔지인 캠프 벨람바이를 이탈했다. 부대 인근 마을로 들어간 그는 지니고 있던 권총 1정과 자동소총 1정을 난사해 자고 있던 주민 6명을 살해했다. 사건 직후 부대로 복귀한 그는 다시 부대를 나와 인근의 다른 마을로 찾아들었다. 이번엔 11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았다.
사건 직후 미 캔자스주 포트그린워스의 군교도소로 이송된 베일스는 이미 혐의 사실을 모두 시인했다. 미군 당국도 이번 사건을 일찌감치 베일스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다. 사건 초기부터 미 당국은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미군 1개 중대가 마을 주민 400여 명을 무참히 살해한 ‘미라이 학살’과 비교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미군 검찰은 지난 3월23일 베일스를 17건의 의도적 살인과 6건의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아프간 현지에선 전혀 다른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은 3월29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아프간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베일스가 집안으로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던 때, 또 다른 미군 병사가 집 마당에서 손전등을 들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말이 나온다”며 “일부 주민은 15~20명의 미군이 사건 현장 부근에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베일스가 기소된 다음날인 3월24일, 이번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이 칸다하르주 주지사 집무실로 불려갔다. 은 칸다하르주 의회 의원 아가 랄라이의 말을 따 “미군 당국이 희생자 가족들에게 지급할 보상금을 마련해와 이날 전달했다”며 “사망자는 1인당 5만달러, 부상자는 최대 1만1천달러씩 그 가족에게 지급했다”고 전했다. 그간 미군 당국이 아프간에서 민간인 피해자에게 통상 지급해온 ‘위로금’에 견줘 20배가량 많은 액수다.
미 인권단체 ‘분쟁지역 민간인 피해자를 위한 캠페인’(CIVIC)이 지난해 2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재산이 손실되는 등 민간인 피해를 입힌 뒤 내준 보상금의 최대 액수는 2500달러(약 280만원)에 그친다. 특히 2001년 아프간 침공 직후부터 2005년 10월까지는 “문화적으로 적절치 못한 대응”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피해에 대한 아무런 보상 기준을 정해놓지 않았단다. CIVIC는 “이후 사망 사건은 최대 2500달러, 중상은 1600달러, 경상은 600달러로 보상금 지급 상한선을 정했다”며 “재산 피해 사건 역시 심각한 사안에 대해선 최대 2200달러, 그렇지 않은 사건은 200달러로 기준치를 책정해놨다”고 전했다.

“차라리 독일·이탈리아군에게 죽자?”
다른 나라는 어떨까? CIVIC가 지난 3월 초 내놓은 아프간 주둔 다국적군의 민간인 피해 보상 관련 보고서를 보면, 영국군은 군 작전 중 벌어진 인명 피해(사망 포함)에 대해 최소 210달러에서 최대 7천달러까지 보상금을 지급했다. 반면 독일군은 최대 2만5천달러, 이탈리아군은 1만3500달러 수준이었다. <로이터통신>이 지난 3월14일치 보도에서 “아프간에선 가족이 외국군에게 죽임을 당하면, 미군이나 영국군보다는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이기 바라야 할 형편”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애꿎은 목숨이 스러지면, 그 목숨에 값을 매긴다. 전쟁터에서, 목숨이 아깝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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