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은 리비아에서 내전으로 타올랐다. 지난해 2월15일이 시발이었다. 그날 리비아 제2의 도시인 북동부 벵가지에서 벌어진 반정부 집회에서 시위대에 총격이 퍼부어졌다. 숱한 목숨이 스러졌다. 시위대는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리비아와 시리아가 무엇이 다른지 알 길은 없다. 정부군의 살육이 오래도록 이어지지만,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대해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리비아에선 달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2월26일 발 빠르게 리비아 관련 결의를 채택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카다피와 그 측근들의 해외여행을 금하는 등의 압박 조처가 뼈대였다. 봉기 초기 제법 위세를 떨친 저항세력은 정부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 무기력했다. ‘저항의 거점’ 벵가지가 위태로워질 즈음 유엔이 다시 나섰다.
9700여 차례 공습, 애먼 민간인도 초토화
지난해 3월17일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 제1973호는 “리비아에서 공격 위협에 처한 민간인과 민간인 거주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이를 근거로 이틀 뒤인 3월19일 미국·영국·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카다피군을 겨냥한 해상·공중 폭격을 시작했다. 리비아 영공 전체는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됐고, 나토군은 같은 달 23일 “리비아 공군의 전투 능력을 궤멸시키고, 영공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치열한 교전이 한참 이어졌다. 더러 한쪽이 앞서다가도 이내 뒤집히기를 되풀이했다. 그해 8월 들어 저항세력이 총공세에 나섰다. 나토군의 힘에 기댄 바 컸다.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됐고, 독재자는 도망쳤다. 9월16일 유엔은 저항세력이 구성한 국가과도위원회(NTC)를 ‘리비아를 대표하는 법적 기구’로 인정했다. 같은 해 10월20일 고향 시르테 부근에서 붙잡힌 ‘은퇴한’ 독재자는 주먹질·발길질 끝에 총질을 당했다. 비참한 최후였다. NTC는 10월23일 내전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그때까지 7개월여, 나토군은 모두 5900여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9700여 차례의 공습을 퍼부었다.
나토군의 리비아 공습 1년을 맞은 지난 3월19일, 세계적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보고서를 내놨다. 22쪽 분량의 짤막한 보고서의 제목에는 ‘리비아: 나토군 폭격의 잊혀진 희생자들’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나토군의 공습이 집중됐던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를 비롯해 즐리탄·시르테·브레가 등지에서 지난 1~2월 진상 조사를 벌인 결과를 담은 증언록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리비아 공습 당시) 나토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보인다. 정밀유도무기를 이용했고, 공습은 주로 야간에 집중됐다. 공습 이전엔 목표 지역 주민들에게 미리 경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나토군 공습으로 교전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애먼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내전이 끝나고, 군사작전도 막을 내렸다. 다섯 달이 흘렀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의도치 않은 희생자’에 대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앰네스티가 현지로 찾아간 이유다. 짧은 기간 이 단체가 현지 조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 민간인 사망자 수는 모두 55명에 이른다.
지난해 9월15일 나토군은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에서 카다피군이 타고 있던 차량 2대를 폭격했다. 차에 타고 있던 이들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공습 직후, 부근에 있던 주민 40여 명이 사건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두 번째 공습을 예상하지 못했던 게다. 이들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잘못된 정보에 자다가 몰살당한 가족
민가에 폭격이 퍼부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해 6월19일 새벽 1시30분께 트리폴리의 수크알주마 지역 민간인 주거지역에 자리한 무크타다 가라리의 집이 공습을 당했다. 가라리의 아들 파라즈(48)와 딸 카리마(38), 사위 압둘라 님르 쉬하브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생후 7개월이던 칼레드와 2살 난 조마나 등 손자 2명도 즉사했다. 공습 당시 18명이던 가라리의 대가족은 집안 여기저기에 흩어져 잠을 자고 있었단다. 참변을 당한 이들은 대부분 집 2층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가라리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알고 싶다. 내 집이 왜 폭격을 당해야 했는지. 나토는 솔직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내 아들과 딸, 사위와 손자 2명을 잃었다. 이런 일이 왜 벌어져야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 우리 집에선 3대가 함께 살았다. 폭격으로 집을 잃었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갈 곳이 없다. 내 동생은 시내 반대편에서 간신히 거처를 구했지만, 난 누더기 같은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한뎃잠을 자는 탓에 막내아들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잘못된 정보에 기댄 공습으로 비명에 간 이들도 있다. 지난해 8월4일 오전 6시30분께 북서부 미스라타 서부 즐리탄에 사는 무스타파 나지 모라비트의 집에도 폭탄이 퍼부어졌다. 이 폭격으로 모라비트의 부인 입티삼(37)과 모타즈(3)·모함메드(6) 등 세자녀 중 둘, 어머니 파티마 오마르 만수르(60)가 잠을 자다 목숨을 잃었다.
모라비트의 집에서 약 50m 떨어진 민가는 사건 발생 나흘 전까지 카다피군의 회합 장소로 쓰였다. 이 때문에 나토군의 공습을 우려한 모라비트 일가족은 낮에는 집에서 머물다, 밤이면 친지의 집에서 잠을 청했단다. 나토군의 공습이 주로 밤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항세력이 도시 외곽까지 밀고 들어오자 문제의 카다피군 회합 장소에 살던 사람들이 8월2일 피란길에 올랐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달아난 것으로 봐, 다시 돌아올 것 같진 않았단다. 모라비트 가족이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이유다. 사건 발생 이틀 전인 8월2일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다시 잠을 청했다. 사위는 고요했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참극이 모라비트의 일가족을 덮쳤다. 모라비트는 앰네스티 조사단 쪽에 “가정이 송두리째 날아갔지만, 나토 쪽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혹한 사연은 끝이 없다.
나토 “어떤 활동도 할 법적 권한 없다”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앰네스티는 지난 3월5일 나토 쪽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조사 결과에 대한 나토 쪽의 해명과 추가 조사, 나토 쪽이 그간 자체 파악한 애꿎은 민간인 피해에 대한 현황 자료를 물었다. 또 나토군 공습으로 인한 리비아 민간인 피해에 대해 지체 없이 전면 조사를 벌일 것과, 그 결과를 공개하고 적절한 보상 조처를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나토 쪽이 일주일여 만인 지난 3월13일 앰네스티에 보내온 답변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단다. ‘인도적 개입’이란 원래 이런 건가?
“(나토군은 리비아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복잡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위험이 없을 수는 없었다. 2011년 10월31일로 유엔 안보리가 나토에 부여해준 리비아 활동은 모두 막을 내렸다. 현재 나토는 리비아에서 (민간인 피해 조사를 포함한) 어떤 활동도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모든 것은 이제 리비아 새 정부의 몫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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