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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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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안보정상회의가 북핵을 막는다고?

이명박 정부가 ‘수주’한 핵안보정상회의, ‘비국가 행위자의 핵테러’에 초점 맞춰…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북핵 위협에서 벗어나고” 대통령 발언은 취지 오도해
등록 2012-03-23 10:34 수정 2020-05-03 04:26
“나는 시간이다. 세계를 멸망시키는 자다. 다 자랐다. 이제 나는 모든 세계를 삼켜버리러 나타났다. 네가 아니더라도, 저기 마주 서 진을 벌이고 있는 모든 무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니라.”(힌두경전 제11장 32절, 함석헌 옮김)

‘원자력 시대’의 문을 연 것은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였다. 그는 미 시카고대학의 스태그필드 축구장 지하에 자리한 스쿼시 경기장에서 세계 최초의 흑연감속 원자로 ‘시카고 파일1’을 제작했다. 1942년 12월2일 그곳에서 사상 처음으로 핵분열에 따른 연쇄반응 실험이 이뤄졌다. 그날 오후 3시25분께 원자로는 임계치에 도달했고, 핵 연쇄반응은 28분 동안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물리학자 아서 콤프턴은 곧장 제임스 코넌트 국방연구위원회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 원자력유산재단의 자료를 보면,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단다.

콤프턴: 이탈리아인 항해사가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코넌트: 그곳 주민들 반응은요?
콤프턴: 아주 호의적입니다.
“신의 힘 탐하는 불경 저질러”

인류가 사상 처음으로 얻은 ‘새로운 에너지’로 가장 먼저 한 일은 폭탄을 제조하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보다 먼저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는 연합국의 발걸음이 숨가쁜 때였다.

미 로스앨러모스역사학회의 자료를 보면, ‘핵무기 시대’는 1945년 7월16일 새벽 5시29분45초에 막을 올렸다. 미 뉴멕시코주의 ‘호르나도 데 무에르토’(죽음의 여행)라 불리는 사막지대에 마련된 앨라모고도 폭격장에서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 실험이 실시됐다. 뇌성과 벽력의 충격파가 메마른 사막을 뒤흔들더니, 이내 상공 9km까지 거대한 연기가 기둥으로 치솟았다. 핵무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버섯 모양의 구름이었다. 이로써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 당시 실험을 참관한 토머스 프랜시스 패럴 미 육군 준장은 상황을 이렇게 보고했다.

“(핵폭발의) 결과는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고, 엄청났으며, 두렵기도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현상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모든 봉우리와 크레바스와 산등성이에 불이 밝혀졌다. 직접 목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폭발 직후 엄청난 후폭풍이 실험 참관자들에게 불어닥쳤다. 거의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력한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듯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신이 독점해온 힘을 탐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폭발 현장에서 약 240km 떨어진 지점에서도 섬광을 볼 수 있었다. 가공할 파괴력의 규모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당시 실험을 책임졌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로스앨러모스원자력연구소장은 핵폭발을 목격한 뒤, 힌두경전 의 한 구절을 따 이렇게 탄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고 말았다.”

그해 8월 초 패럴 준장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명령서를 들고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의 사이판 인근에 자리한 티니언섬으로 향했다. 폴 티베츠 미 공군 대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B29 폭격기를 모친의 이름을 따 ‘에뇰라 게이’라 불렀다. 그해 8월6일 새벽 2시45분 에뇰라 게이를 몰고 티니언섬을 출발한 티베츠 대령은 같은 날 아침 8시15분께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소년’(리틀보이)이란 암호명으로 불린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탄에는 패럴 준장이 직접 써넣은 글귀가 있었단다. ‘히로히토에게, 사랑을 담아서. T. F. 패럴.’

티엔티 13킬로톤(kt) 규모의 파괴력을 지닌 인류 역사상 두 번째 핵폭탄은 히로시마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사흘 뒤인 그해 8월9일 암호명 ‘뚱보’(팻맨)로 불린 세 번째 핵폭탄이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섭씨 3900℃에 이르는 열기와 함께 티엔티 21kt 규모의 파괴력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히로시마가 9만~16만6천 명, 나가사키가 6만~8만 명을 헤아렸다. 가공할 규모였다.

»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평화단체와 진보신당 등 야당 인사들이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월26~27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대항행동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평화단체와 진보신당 등 야당 인사들이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월26~27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대항행동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20년 뒤에도 ‘핵절멸’ 위협에 시달릴 인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총알은 사람을 해치지만, 핵폭탄은 도시를 해친다. 탱크가 있으면 총알을 피할 수 있지만,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막아낼 방법은 없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우리의 방어는 법과 질서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후대의 역사는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마감한 직후부터, 인류는 다시 이념으로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참극을 경험하고도 인류는 교훈을 얻지 못했다. 미국에 이어 러시아가 1949년 핵무장을 했다. 영국(1952년)과 프랑스(1960년)와 중국(1964년)이 뒤를 이었다. 어리석은 경쟁은 갈수록 불을 뿜었다. 1966년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3만2천여 기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과도한 군비경쟁으로 몰락을 자초한 옛 소련이 1988년 보유한 핵탄두는 약 4만5천 기를 헤아렸다. 냉전이 정점으로 치닫던 1985년 지구촌에는 모두 6만5천 기의 핵탄두가 발사를 기다렸다. 숨 쉬기조차 아찔한 상황이었다.

반세기 냉전을 뒤로하고 21세기가 시작됐을 때, 인류는 모두 3만2천여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파괴력은 약 5천메가톤(Mt) 규모, 여전히 지구촌을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힘’이다.

그로부터 다시 10여 년 세월이 흘렀다. 전미과학자협회(FAS)의 자료를 보면, 2012년 3월 현재 지구촌에는 약 1만9500기의 핵탄두가 있단다. 러시아(5500기)와 미국(5천 기)을 중심으로 프랑스(300기)·중국(240기)·영국(225기)이 다수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파키스탄과 인도가 각각 90~110기와 80~100기가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80기 정도로 무장하고 있다는 게 FAS의 분석이다. FAS는 북한의 핵무장 능력에 대해선 “10기 이하”로 봤다. FAS는 “실전 배치된 핵탄두만도 4800여 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미·러가 보유한 2천 기가량의 핵탄두는 (단추만 누르면) 발사가 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2010년 3월 미·러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에 합의했다. 이로써 두 나라는 2021년까지 전략 핵탄두를 1550기까지 줄여나가게 된다.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하지만 앞으로 20년 뒤에도 인류가 ‘핵절멸’의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는 상황은 변함이 없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1989~93년)에도 미국의 핵무기고는 2만2217기에서 1만1511기로 절반가량 줄었다. ‘아들 부시’ 행정부(2001~2009) 시절에도 1만526기에서 5113기로 다시 절반가량 줄었다. 이를 두고 핵안보 전문가인 한스 크리스텐슨은 지난해 11월 미 군축협회가 펴내는 월간 에 기고한 글에서 “어쩌면 ‘부시 가문’은 보수의 탈을 쓴 진보였는지 모른다”고 꼬집었다.

노벨상 오바마가 되읊는 냉전 논리

비슷한 시기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핵태세검토보고서’(NPR) 역시 엇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보고서는 “미국의 핵전력은 미국과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는 것을 억지하는 게 근본적 목적”이라고 적었다. 냉전 시절엔 “핵공격을 받고 살아남아, 적을 궤멸시키는 것”이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목적이었다. 역시 진전이라면 진전인데, ‘억지력’에 기대 핵무기의 존재를 정당화한 것은 냉전 시절이나 매한가지다. 앞서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냉전식 사고방식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의 구실을 줄여나갈 것”이라며, ‘핵 없는 세상’을 역설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3월26~27일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NSS)가 열린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요 핵 보유국과 원전 운영국 등 47개국 지도자와 유엔 등 3개 국제기구 수장이 참가하는 이번 회의는 2010년 11월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최대의 국제회의’라 부를 만하다. 요즘 외교통상부가 입주해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는 ‘핵테러로부터 평화를 지키는 일, 대한민국이 앞장섭니다’란 펼침막이 길게 내걸려 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돼, 2010년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첫 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목적은 분명하다. 미 국무부가 펴낸 안내자료를 보면, 핵안보정상회의는 △핵테러가 지구촌 차원의 위협임을 인식하고 △핵 물질·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핵물질의 불법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공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이어진다면 인류의 꿈인 핵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첫 출발이 된다. 이것은 가히 역사적인 회의가 될 것이고, 한반도와 같이 핵 위협을 받는 나라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0년 4월 첫 번째 회의 당시 두 번째 회의 ‘유치’에 ‘성공’한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감격해했다. 생뚱맞아 보인다. 핵안보정상회의는 이른바 ‘비국가 행위자의 핵테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가 행위자의 핵군축’은 끼어들 틈이 없다. ‘북핵’도 마찬가지다. 회의의 공식 의제로 다뤄질 수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같은 회견에서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위협에서 벗어나고, 우리가 선진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국제행사를 ‘유치했다’기보다 ‘수주했다’는 표현이 걸맞아 보인다.

“핵무기 폐기 없이 핵안보 불가능”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핵테러 예방은 필요하다. 핵무기·핵물질·방사성물질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이런 것들이 테러집단에 넘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할 이는 없다. 문제는 대규모 정상회의까지 열어 핵안보를 강조하는 미국·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핵을 테러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 궁극적으로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지켜야 하는 것은 핵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우리 자신과 인류 공동체의 안전이다. 핵무기와 핵발전 감축과 폐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핵안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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