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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어린이 7명 중 1명은 굶는다

70억 인류 시대의 지구촌에서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인구 9억2500만 명… 해마다 영양실조로 목숨 잃는 어린이 260만 명 추정되고, 98%는 ‘저개발 국가’에 몰려 있어
등록 2012-03-02 12:38 수정 2020-05-03 04:26

‘69억4615만3313명’.
미국 인구통계청이 2월23일 밤 10시38분(한국시각)을 기준으로 추정한 지구촌의 인구다. 유엔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이미 지난해 10월31일 인류가 70억 명을 돌파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긴, 지구촌이 ‘인구 60억 시대’를 연 날을 두고도 둘 사이엔 차이가 났었다. 유엔은 1999년 10월12일을 지목했지만, 미 인구통계청은 그보다 석 달여 앞선 같은 해 6월19일을 꼽았다. 둘 다 추정치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 굳이 따져 물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분명 ‘70억 인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굶주림은 ‘침묵의 살인자’
“인류 역사상 70억 번째로 태어난 아기는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 ‘70억 번째 인류’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렇게 물었다. 70억 번째 인류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또는 태어날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아기와 함께 지구촌에서 태어난 7명 가운데 1명은 굶주림에 시달리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2010년 9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지구촌 인구는 약 9억2500만 명에 이른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 전체 인구를 합한 것보다 많은 인류가 굶주림에 떨고 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98%가 이른바 ‘저개발 국가’에 몰려 있다. 특히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모여 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굶주리는 인류의 3분의 2가 집중돼 있다. 나라별로 보면, 인도·중국·콩고민주공화국·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파키스탄·에티오피아 등 7개 나라에 세계 굶주리는 인구의 65%가 모여 산단다.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은 어떨까? 어린이 구호기관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월15일 내놓은 116쪽 분량의 보고서 ‘굶주림에서 자유로운 삶’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세계적 의학전문지 은 2008년 1월치에서 “전세계 5살 이하 어린이 사망 원인의 약 35%가 굶주림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유니세프가 지난해 펴낸 자료를 보면, 2010년 한 해 동안 지구촌에서 숨진 어린이는 모두 760만 명에 이른다. 이를 근거로 ‘세이브더칠드런’은 “해마다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들이 전세계적으로 26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1시간에 300명가량의 어린이가 제대로 먹지 못해 숨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실 굶주림 자체는 사망 원인으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영양실조로 허약해진 육신을 마지막으로 쓰러뜨린 질병이 공식 사망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굶주림을 흔히 ‘침묵의 살인자’로 부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4년 펴낸 자료를 보면, 비타민A 결핍에 따른 면역력 감퇴로 숨진 어린이는 모두 67만여 명이었다. 그해 지구촌 어린이 사망 원인 가운데 6.7%를 차지하는 규모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저개발 국가 어린이의 47%가 철분 결핍에 허덕이고 있다. 이로 인한 빈혈 증세로 한 해 숨지는 임산부가 11만5천여 명, 신생아가 59만1천여 명에 이른다고 WHO는 집계했다.

세계 어린이 4명 중 1명은 발육부진
굶주림을 용케 버텨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영양실조에 허덕인 아이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를테면 요오드 결핍증에 시달린 아이는 또래보다 지능지수(IQ)가 평균 10~15 정도 떨어진다. 발육부진도 심각하다. 영국영양학회가 펴내는 월간 2011년 7월호를 보면, 전세계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약 1억7100만 명)은 만성적 굶주림으로 발육부진을 보이고 있다.
또래에 비해 발육이 부진한 어린이 80%가 단 20개 가난한 나라에 몰려 있다. 특히 아시아에선 영양실조로 발육이 부진한 어린이가 3명 가운데 1명꼴인 약 1억 명에 이른다. WHO는 생후 30개월 유아의 평균 신장을 남녀 각각 91.9cm와 90.7cm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니제르·에티오피아·동티모르·르완다·인도 등지에선 같은 연령대 어린이들이 적게는 5.8cm에서 많게는 8.5cm까지 기준 키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보고서에서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선 전체 어린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도에선 절반에 육박하는 48%가 발육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지구촌 발육부진 어린이의 80%가 몰려 있는 20개 가난한 나라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의 57%, 폐렴으로 인한 사망의 52%, 홍역으로 인한 사망의 45%가량은 굶주림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더디다.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해 펴낸 자료를 보면, 1990년엔 지구촌 어린이의 40%가 영양실조에 따른 발육부진에 시달렸다. 2010년 그 비율은 27%까지 떨어졌다. 20년 세월 동안 13%포인트, 한 해 불과 0.6%포인트가량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WHO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같은 기간 지구촌에서 결핵과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는 각 40%와 25% 포인트씩 줄어들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선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1990년 이후 20년 동안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는 33%나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굶주림으로 발육부진을 보이는 어린이 비율은 단 1%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단다. 이 또한 굶주림의 장기적인 폐해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탓이다. 은 2008년 2월치에서 “현재와 같은 흐름이 유지되면, 향후 15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약 4억5천만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인한 발육부진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되물림되는 가혹한 사슬, 배고픔
배고픔은 되물림된다.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혹한 사슬’이다. 세계은행이 2010년 지구촌 발육부진 어린이 인구의 90%가량이 집중된 가난한 나라 3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펴낸 보고서를 보면, 어린 시절 영양실조를 경험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견줘 성인이 됐을 때 평균 수입이 최소 10% 이상 낮았다. 이로 인한 국가경제적 손실은 국내총생산(GDP)의 2~3%에 이른단다. 앞서 FAO는 2004년 펴낸 보고서 ‘지구촌 식량불안 현황’에서 “지구촌 차원에서 볼 때 어린이 영양실조로 인한 직접적 경제손실은 한 해 200억~3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70억 인류 가운데 10억 명이 굶주리고 있는 이유다. 21세기에도, 아이들이 굶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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