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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하다 오바마가 재미볼라

롬니가 주춤하는 사이 깅리치의 선전으로 장기전 돌입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두 후보 난타전 와중 오바마 지지율 상승
등록 2012-02-03 12:01 수정 2020-05-03 04:26

애초 올 미국 대선 판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극히 불리한 형국이었다. 지난 2008년 여름 시작된 경기침체가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탓이다. 실업률이 8.5%에 이르는 상황에서 재선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은 미국 현대사에서 전무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는 이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취임 한 달여 만인 2009년 2월 말 <워싱턴포스트>와 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68%를 기록했다. 3년여 만인 지난 1월15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그 수치가 48%로 떨어졌다. 공화당으로선 불리할 게 없는 싸움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상황이 꼬이고 있다.

깅리치의 본선 경쟁력 기대감?
[%%IMAGE1%%] ‘초단기전’으로 막을 내릴 듯하던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이 늘어지고 있다. 아이오와·뉴햄프셔 경선을 지나며 ‘대세’를 거머쥐는 듯했던 매사추세츠 주지사 출신 밋 롬니 후보의 돌풍이 주춤하고 있다. 연방 하원의장 출신이란 ‘이름값’에도 경선 초반 주춤했던 뉴트 깅리치 후보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거둔 예상 밖의 선전을 발판 삼아 판세를 뒤집을 기세다.
연방 하원의원인 론 폴 후보와 상원의원을 지낸 릭 샌토럼 후보가 남긴 했지만, 이제 공화당 경선 판도는 롬니-깅리치 두 후보의 ‘2파전’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그 끝이 조만간 가시권에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롬니-깅리치 두 후보 간의 난타전은 하루가 다르게 격해지고 있다. 1월31일 치러지는 플로리다주 경선에서 누가 앞서든, 현재로선 ‘장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1월10일 뉴햄프셔주 경선부터 1월2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까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당선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모양새다.” 정치평론가 조지 스테파노폴리스는 지난 1월23일 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과 텔레비전 토론회에서의 선전, 그리고 탁월한 언론 친화력으로 무장한 깅리치 후보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갤럽’이 공화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 1월15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롬니 후보(37%)가 깅리치 후보(14%)를 23%포인트의 격차로 크게 앞섰다. 하지만 1월22일 내놓은 조사에선 깅리치 후보(28%)가 롬니 후보(29%)와의 격차를 1%포인트로 좁히며, 사실상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같은 기간 롬니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워싱턴포스트>와 이 지난 1월22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롬니 후보에 대한 호감도는 31%에 그친 반면 비호감도는 49%에 달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14%포인트, 무당파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 17%포인트 비호감도가 높아졌다. 지난 1월8일 발표된 조사에선 호감도와 비호감도가 각각 39%와 34%였다.
바뀐 분위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경선 결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앞선 아이오와·뉴햄프셔 경선에서 롬니 후보는 48%와 63%의 지지율로, 각각 20%와 12%에 그친 깅리치 후보를 멀찌감치 앞섰다.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깅리치 후보가 51%의 지지를 얻어, 37%에 그친 롬니 후보를 18%포인트 앞서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연소득 20만달러 이상인 유권자 사이에선 롬니 후보(47%)가 깅리치 후보(32%)를 앞선 반면 연소득 10만달러 이하인 유권자층에선 깅리치 후보(41%)가 롬니 후보(25%)와 격차를 벌렸다.

‘공세 모드’로 선회한 롬니
[%%IMAGE2%%] 이를 두고 미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1월25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롬니 후보가 자초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무슨 말인가? 경선 초기부터 롬니 후보는 당내 경선보다는 ‘본선’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를 보이는 당내 주자들에 대한 공격보다,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비판에 무게중심을 뒀던 게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다. 특히 1984년 자신이 공동 창업한 투자회사 ‘베인캐피털’ 재직 시절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두고 커지는 논란을 수수방관한 것이 화를 키웠다.
안팎의 비난이 커지자, 롬니 후보 진영은 지난 1월24일 뒤늦게 2010년도 소득세 납부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롬니 후보는 “법으로 정해진 모든 세금을 성실히 납부했다”고 강조했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했다. 미국의 세법은 이른바 ‘자산소득’에 관대하다. 특히 투자수익과 이자, 배당금 등 ‘불로소득’에 부과하는 세율이 공화당 출신인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더없이 너그러워졌다.
공개된 납세 자료를 보면, 자산 규모가 1억9천만달러에서 2억5천만달러로 추정되는 롬니 후보는 2010년과 2011년 2년 동안 모두 425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가운데 2010년 소득에 대해 정해진 세율은 13.9%, 아직 납부하지 않은 2011년 세율은 15.4%가 될 전망이란다. 이럴 경우 두 해 동안 롬니 후보가 내는 세금은 620만달러에 그친다. 미국의 근로소득세 최고 세율은 35%에 이른다. 비판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했다.
롬니 후보가 최근 ‘공세 모드’로 선회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월23일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깅리치 후보를 겨냥해 “하원의장에서 물러난 뒤 지난 15년여 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앞세워) 로비스트 노릇을 해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깅리치 후보가 프레디맥(연방주택대출저당공사)의 ‘컨설턴트’로 일하며, 연간 30만달러의 사례금을 받은 게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프레디맥은 2008년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불러온 주범으로 꼽힌다.
1월31일 플로리다주 경선을 앞두고 두 후보 간 공방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1월26일 인터넷판 기사를 보면, 깅리치 후보는 롬니 후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급 판타지 속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 현안인 불법이민자에 대해,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고 합법적으로 이민 서류를 준비해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자진귀국’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제안한 롬니 후보를 비꼰 게다. 이에 맞서 롬니 후보는 “(깅리치 후보는) 한때 스페인어를 ‘빈민가의 언어’라고 비하한 인물”이라고 몰아세웠다. 플로리다주는 쿠바계 이민자 100만 명을 포함해 미 전역에서 라틴계 인구가 가장 많다.

부시 책사 칼 로브의 자제 권고
공화당의 ‘내분’이 불러온 결과일까? 2009년 1월 취임 이후 줄곧 하락세를 이어오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올 들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최근 실시된 두 차례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호감도는 48%에서 53%로 5%포인트 뛰었고, 비호감도는 49%에서 43%로 6%포인트 줄었다. 부시 행정부의 ‘책사’로 불린 선거전략가 칼 로브가 1월25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롬니-깅리치 두 후보에게 ‘자제’를 권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로브는 “의견 충돌은 어쩔 수 없지만, (인신공격 등으로) 본선 승리 가능성을 낮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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