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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로 개막된 이집트 혁명 2막1장

‘독재 타도’ 1막에 이어 ‘민정 이양’ 2막의 1장인 총선에 돌입한 이집트…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 승리 확실하지만, 기득권 유지 꼼수쓰는 군부 넘어야 혁명 완성
등록 2011-12-08 14:33 수정 2020-05-03 04:26

정리해보자. 2011년 이집트 혁명은 지난 1월25일 시작됐다. 혁명은 피를 먹고 자랐다. 수도 카이로 중심가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을 비롯해 도처에서 선량한 이들이 스러져갔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 암살 이후 30년 세월 철권을 휘둘러온 호스니 무바라크를 무릎 꿇리는 데는 불과 18일이 걸렸다.
독재자의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탐욕스런 군부였다. 무바라크 정권에서 20년 동안이나 국방장관을 지낸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를 수장으로 하는 24명의 군 장성이 최고군사위원회(SCAF)라는 초헌법적 통치기구를 꾸렸다. 허울뿐이던 의회가 해산된 것을 슬퍼할 이유는 없었지만, 무바라크의 수하들이 고스란히 내각을 차지하는 꼴은 참아낼 수 없었다. 시위는 계속됐다.

혁명이 쟁취한 59년 만의 ‘자유선거’
아흐마드 샤피크 총리 정부는 결국 지난 3월3일 총사퇴했다. 타흐리르 광장에선 승리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군부는 기다렸다는 듯 반격을 취했다. 시위와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됐다. 혁명을 지켜야 했다. 애꿎은 피가 다시 거리에 뿌려졌다.
은퇴한 독재자는 동방의 재벌 흉내를 냈다. 그가 환자복 차림으로 병상에 누워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시위대는 흩어졌다 이내 다시 모이며 타흐리르를 지켰다. 군부는 비상조치법과 군사재판 따위 독재자의 무기를 휘둘러댔다. 그것으로도 둑을 무너뜨린 혁명의 기세를 막아낼 순 없었다. ‘4월1일 혁명 수호의 날, 5월27일 제2차 분노의 금요일, 7월1일 응징의 금요일, 7월8일 결심의 금요일, 9월9일 혁명의 길 수정의 날….’
권력에 눈먼 군부는 “더 이상의 혼란은 참지 않겠다”고 을러댔다. 독재자를 몰아낸 뒤 치르는 첫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으로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혁명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독재 타도’의 1막이 가고, ‘민정 이양’을 위한 혁명의 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흥분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모두들 오늘이 역사적인 날이란 걸 안다.”
지난 11월28일 이집트 제2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아침은 여느 때보다 일찍 시작됐다. 전날 밤 내린 비로 기온은 뚝 떨어졌지만, 이른 아침부터 골목마다 사람들이 넘쳐났다. 아랍 위성방송 는 인터넷판에서 대학생 하난 아메드(20·여)의 말을 따 “전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고 전했다. 이날은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치러지는 총선의 첫날이었다. 1952년 가말 나세르가 이끄는 청년장교단이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이후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치러지는 ‘자유선거’다.
8500만을 헤아리는 이집트 인구 가운데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5천만 명 남짓이다. 전국 27개 주를 9개 주씩 3단계로 나눠 상·하원 의원을 뽑는 석 달여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다. 입법권을 가진 하원의원(선출직 498명)을 뽑는 1단계 선거는 카이로·알렉산드리아·포트사이드 등지에서 11월28~29일 이틀간 실시됐다. 과반 득표가 없는 선거구에선 12월5일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2단계는 12월14일 수에즈·기자·아스완 등지에서, 3단계는 1월3일 남·북시나이와 케나 등지에서 각각 실시된다.
내년 1월10일로 예정된 3단계 결선투표가 마감되면, ‘원로원’ 격인 상원의원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270명 가운데 최고군사위가 지명하는 90명을 뺀 180명을 뽑는 선거가 내년 1월29일 1단계를 시작으로 하원과 같은 방식으로 세 차례로 나눠 권역별로 치러지는데, 3단계 결선투표는 3월11일로 예정돼 있다. 하원은 내년 3월17일, 상원은 3월24일 각각 개회할 예정이다. 헌법을 고치고, 내년 6월 말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게 이들의 소임이다.

“괴한들이 타흐리르 시위대 습격”
선거 직전 벌어진 유혈 사태에도 하원 1단계 선거는 순조롭게 치러졌다. 투표가 마감된 11월29일 이집트 주가는 정국 안정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전날에 견줘 5.48%나 올랐다. 등 현지 언론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잠정 집계한 투표율이 70%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50여 개 정당이 참여한 이번 선거의 결과는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지난 8월 이후 실시된 세 차례 여론조사에서 줄곧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며 멀찌감치 앞서나간 ‘자유정의당’의 압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온건파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한 자유정의당은 이번 선거에 카마라당 등 좌파 성향 정당들과 ‘민주동맹’이란 연대체를 꾸려 참여했다.
자유정의당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1단계 선거 직후부터 “내년 3월 꾸려질 새 의회가 과도정부를 구성해 정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게다. 아랍 위성방송 는 11월30일 인터넷판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대표의 말을 따 “의회 다수파에 기반하지 않은 정부는 실행력을 갖출 수 없다”며 “(내년 3월 구성될) 새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세력이 중심이 돼 (과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군부는 ‘이중의 꼼수’를 벼르고 있다.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 11월25일 최고군사위는 무바라크 정권에서 총리를 지낸 카말 간주리(78)를 새 총리로 임명하고, 내년 7월1일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정부를 이끌도록 했다. 자유정의당이 주도할 새 의회의 공세에 대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1단계 투표가 안정적으로 치러진 것도 군부엔 수확이다. 은 11월30일 현지 전문가들의 말을 따 “우려한 것과 달리 1단계 투표가 높은 투표율 속에 순조롭게 끝나면서, 선거를 통한 정국 안정화를 노렸던 군부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고군사위 실세 중 한 명인 이스마일 아트만 장군이 선거 직후 현지 일간 등과 한 인터뷰에서 “(민정 이양을 한 뒤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타흐리르 시위대의 주장은 민심과 다르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괴한들이 타흐리르를 공격하고 있다. (군사정권은) 시민 보호라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11월29일 밤 다급히 올린 트윗 메시지다. 이날 밤 타흐리르 광장에선 화염병과 짱돌로 무장한 괴한들이 민정 이양을 요구하며 11일째 천막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습격했다. 등 외신들은 “시위대 8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며 “산발적으로 총성까지 울려퍼졌다”고 전했다.

최루탄 대량 수입한 군부
같은 날 수에즈항에선 군부가 향후 정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가늠해볼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은 이날 오후 수에즈항 세관 관계자의 말을 따 “이집트 내무부가 미국 콤바인드시스템스사에 주문한 최루탄 21t 가운데 미국 윌밍턴항에서 선적된 첫 번째 물량 7t이 통관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며 “나머지 물량도 두 차례로 나눠 일주일 안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때 90%를 넘나들던 최고군사위에 대한 지지율은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다.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총선을 앞둔 지난 2주 동안에만 타흐리르 광장 일대에선 군경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대 40여 명이 숨지고 3천여 명이 다쳤다. 혁명은 계속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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