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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끔찍한 카다피 사후

끔찍한 최후로 추종자 사이에 ‘순교자’ 반열에 오른 카다피…공동의 적 사라진 반군은 분열할 가능성 있고 서방 개입은 갈등 키울 우려 커
등록 2011-10-28 13:32 수정 2020-05-03 04:26

“굳이 저렇게 피범벅이 된 끔찍한 사진을 신문 1면에 실어야 하나?”
아내의 말처럼 사진은 참혹했다. ‘카다피 참혹한 최후’라는 기사의 제목처럼. “쏘지 마, 쏘지 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마지막으로 외친 말이라고 전해진다. 42년 독재의 최후는 이렇게 처참하고 초라했다. 카다피가 수도 트리폴리를 반군에 내주고 고향 시르테로 달아났을 때, 사실상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

“하나의 나라였던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난 10월20일 그의 죽음은 카다피 시대의 공식 종언을 알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의 사디 하미드 국장은 10월20일 기고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전제정치가 42년은 지속될 수 있어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기억할 것이다.” 민주화 요구에 맞서 유혈 진압을 계속하는 시리아와 예멘 등의 정부를 향한 경고로 읽힌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소식은 여기까지다. 카다피의 죽음이 일시적으로 분위기 진작은 하겠지만 별다른 것은 없다.”
그렇다. 카다피가 트리폴리에서 달아났을 때 질문은 ‘카다피 이후’였다. 이제 다시 문제는 ‘카다피 이후’다. 반군들은 환호하며 하늘로 총을 쏘아대지만, 그 환호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리비아, 통합된 리비아, 하나의 국민, 하나의 미래를 실현할 때다.” 카다피의 사망 확인 뒤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 마무드 지브릴 임시 총리가 한 이 말은 카다피 사후 리비아의 과제를 잘 보여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금은 복수가 아니라 치유와 재건을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초 아랍권에서 혁명이 불붙은 뒤 3명의 지도자가 권좌에서 쫓겨났다. 맨 먼저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해외로 달아났다. 이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쫓겨난 뒤 쇠창살에 갇혀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리비아처럼 오랜 내전을 치르지 않았다. 리비아는 248일간의 내전을 겪으며 3만 명 가까이 숨졌다. 140개 넘는 부족과 동·서·남부로 갈라진 뿌리 깊은 지역 간 갈등으로 “단 한 번도 단결된 하나의 나라였던 적이 없다. 단일한 국가 정체성을 가진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던 리비아는 또다시 갈라졌다. 카다피는 무바라크처럼 재판대에 서지 않았고, 그의 모습이 담긴 처참한 사진 한 장은 열렬한 추종자들 사이에 카다피를 ‘순교자’로 만들었다. 끔직한 주검을 보고 그의 지지자들이 복수의 칼을 갈았을 것은 뻔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북아프리카 전문가 조지 조프 교수는 10월20일 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이제 성인이 된 만큼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지지자를 끌어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유엔 사무부총장 마크 멀록 브라운도 에 쓴 글에서 “카다피가 죽었다고 카다피 지지자들이 과도정부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카다피가 망명을 제안받은 나라로 도피한 뒤 지지 부족 등을 독려하며 시위를 이끌었다면 민주화 과정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그가 사라진 지금도 곪은 상처는 터지기 직전이다.

벌써 커진 과도정부 반감
문제는 공통의 적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다양한 분파로 이뤄진 반군들은 카다피라는 공통의 적 앞에 하나로 묶였다. ‘리비아에 새로운 시기가 열렸지만, 승리자들이 계속 단결할 것인가?’라는 의문표가 붙은 의 기사 제목이 불안한 미래를 잘 드러낸다. 반군들이 ‘카다피 축출’이라는 공통 목표 앞에 뭉쳤던 대로 민주화를 위해 나아갈지, 다시 내전으로 빨려들어갈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도 흘러나온다.
리비아의 갈 길은 멀다. 국가과도위원회는 향후 8개월 안에 제헌의회를 구성해 총리를 선출한 뒤 정부를 새로 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42년간 카다피의 철권통치는 리비아에서 정상적 정치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그만큼 리비아의 민주주의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과도위원회 앞에는 체제 전환 과정에 필요한 정당 구성과 허가, 선거 시행, 무장해제 등 과제가 수북이 쌓여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공습과 카다피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석유시설 복구 등도 시급하다. 알리 압두라티프 아미다 뉴잉글랜드대학 교수는 “한 세기가 끝났지만 새로운 정부 구성 등을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며 “과도정부 지도부가 어떻게 리비아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시키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이끌어갈 국가과도위원회는 지역별·부족별 갈등으로 수차례 내각 구성에 실패하는 등 신뢰를 상당히 잃은 상태다. 지브릴 임시 총리는 카다피 제거를 이끌어낸 나토의 군사개입을 조정하고 서방과의 관계를 강화했지만, 국내에서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 스스로 카다피가 잡히기 전부터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다양한 부족과 지역 출신으로 구성된 반군 사이의 갈등은 이들이 중무장한 상태임을 고려할 때 무력충돌 등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는 지난 10월20일 “리비아의 3대 도시이자 내전 과정에서 최대 희생을 치른 미수라타에서 과도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외교협회(CFR) 에드 후사인 선임연구원은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선거를 하는 것 이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법의 지배, 절차적 정당성 확립, 인권, 민주주의 문화 형성 등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이 지난하다는 것이다. 당장 일자리와 주택, 의료, 교육 등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자칫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처럼 혼란의 시기가 길어질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리비아는 이제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멀고 힘든 길을 가야 한다”.

“미국은 물러나는 것이 최선”
이런 리비아의 불안한 미래를 더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서방 등 외부의 개입이다. 카다피 축출과 제거엔 반군의 힘도 중요했지만, 나토군 등의 공습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웠다. 나토는 지난 3월 군사개입 이래 약 1만 차례나 공습하며 카다피군을 괴멸시켰다. 이 때문에 군사개입을 주도했던 프랑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이 리비아의 석유자원 배분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라임 알라프 연구원은 “나토와 미국이 실제로 즉각 물러나는 게 최선”이라며 “리비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도록 내버려두는 게 리비아의 재건과 아랍의 봄에 대한 최고의 기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다피는 세상을 떠났지만, 어쩌면 새로운 리비아의 재건은 그의 42년 독재만큼이나 길고 고단한 시기를 앞두고 있을지 모른다. 국가과도위원회가 지난 10월22일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포했지만, 리비아 인민의 진정한 해방의 날이 언제일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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