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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에서는 환경운동하면 죽는다

‘반석탄’ 운동하다 무참히 살해당한 국숫집 아저씨… 자본·마피아·관료의 카르텔 속에 16년 동안 타이 환경운동가 27명 살해당해
등록 2011-09-02 17:24 수정 2020-05-03 04:26
» 환경운동가 통낙 사웻친다 암살 배후 혐의를 받고 있는 석탄운송업자의 가택을 수색하려고 경찰이 도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 환경운동가 통낙 사웻친다 암살 배후 혐의를 받고 있는 석탄운송업자의 가택을 수색하려고 경찰이 도로를 차단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7월28일 오전 9시께였다. 타이 중부 사뭇사콘 지방, 타사이 탐본(Tambon·마을 바로 위 단위로 지방정부의 가장 작은 행정단위) 길은 인근 공장으로 출근하는 발걸음들이 총총히 사라진 뒤였다. 그 길로 들어선 오토바이를 탄 사내는 길목 한쪽의 국숫집 앞으로 가, 주인 통낙 사웨친다(47)에게 40구경 반자동 권총을 난사했다. 여덟 군데에 총상을 입은 통낙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숨졌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순박한 사람이었는데….”

자녀가 없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내 좀크완 사웨친다(46)가 버겁게 입을 열었다. 사건 직후 타이 언론은 ‘저명한 환경운동가 살해 사건’을 보도했다. 동네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순박한’ 국숫집 아저씨 통낙은 어찌하여 ‘저명한’ 환경운동가가 되어 살해되는 운명을 맞이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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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레진 밭, 망한 코코넛 농사

8월 초순께, 방콕 서남 지역과 경계를 나눈 사뭇사콘 지방에 들어섰다. 칼칼한 목과 답답해지는 콧구멍, 오염도시 방콕을 능가했다. 이 지역 노동단체 ‘노동권신장네트워크재단’(LPN)에 따르면 사뭇사콘에는 7천여 개의 크고 작은 공장들이 있다. 절대다수가 해산물 가공 공장이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는 석탄을 다루는 공장도 수십 개로 추정된다. 사뭇사콘을 포함해 타이 전역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단의 연료와 에너지로 각광받는 건 바로 석탄이기 때문이다. 그 석탄이 국숫집 주인 통낙을 환경운동가로 바꿔놓은 주범이다.

“밭이 다 누레졌다. 코코넛 농사도 망했다. 폐도 안 좋고, 가려움증에….”

타사이 마을 주민 깃스나 파완(60)의 말처럼 석탄공장 인근 밭들은 누리끼리했다. 사뭇사콘에 석탄공장이 들어선 건 2006년이다. 아랫동네 사뭇송크람 지방 주민들이 반대해 공장이 이곳에 옮겨온 순간부터 주민들의 시위는 시작됐다. 귀 막은 당국과 언론의 눈을 피해갔을 뿐이다. 그러다 지난 7월13일 주민 1천여 명이 ‘라마 2’ 고속도로를 막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결국 ‘석탄 운송 중단’이라는 주지사 명령을 끌어냈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주지사의 명령을 위반하는 트럭을 모니터닝했다. 7월22일, 통낙은 석탄운송회사인 ‘테크닉팀’의 트럭을 막아선 적이 있다. 통낙 살해의 핵심 배후로 지목된 이 회사의 대표는 통낙을 위협하고 거친 말을 뱉어온 인물이다. “당신 국수에 석탄 알갱이가 빠지기라도 했나? 그렇게 설쳐대다가 당하는 수가 있어. 조심하라고!”

석탄 알갱이가 통낙의 국수에 빠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석탄운송 트럭들이 뿜어내는 가루와 공장들이 내뿜는 ‘석탄 빠진’ 물은 이 지방의 젖줄인 친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모니터링한 자료와 위반 증거 사진 등을 7월29일 주지사에게 보낼 참이었는데, 그 전날 통낙이 살해당했다.” 함께 캠페인을 이끌어온 캄폴 통치우(51)도 통낙이 죽기 이틀 전 밤 10시께, 석탄 운송 차량을 모니터링하던 중 미행당했다. 다행히 그는 작은 길로 차를 돌려가며 위기를 모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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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이익과 주민 인권 충돌

지난 16년간 타이에서는 환경운동가 27명이 살해됐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석탄 아니면 불법 벌채에 맞선 지역 운동가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콕과 달리 지방 활동가들은 더 많은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인권운동가들이 처한 인권침해 현실을 고발해온 인권단체 ‘프런트라인’(Frontline)의 짐 라프란도 과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경제개발을 내건 업체들의 이익과 주민 인권, 토지권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소수 권력자들의 부를 위해 주민 인권을 희생시키는 정책은 있어서는 안 된다.” 짐 라프란의 호소다. 그는 무엇보다도 암살범 뿐 아니라 배후 세력을 분명하게 처벌해, 운동가들을 겨냥한 청부 살해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현직 군인과 마피아가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를 건드리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총잡이 요틴 테프리안(25)이 자수하고 혐의자 7명이 체포되는 등 초동수사에 속도가 붙는 듯하다. 그러나 당국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덕분이라고 주민들은 받아들였다. 수사를 담당하는 사뭇사콘 경찰 서장 차이찬 푸라타나농(41)도 CCTV의 공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핵심 공모자 3명 중에 사뭇사콘 지방 내 ‘푸야이 반’(마을 이장 격) 1명이 포함돼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시스템의 실패다. 경찰, 군부, 지방정부 등 관련 기관들의 총체적 개혁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절실히 요구돼왔다. 이번 사건을 단순 범죄사건 다루듯 해선 안 된다.” 인권운동가 수나이 파숙은 6년 전 통낙처럼 살해당한 운동가 자른 악 왓슨을 회상하며 총제적 개혁을 강조했다.

통낙에게 법률 지원을 해온 변호사 수리스완 잔야는 타이의 수많은 환경 관련 법안들만 제대로 준수해도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관련 법안들은 주민 공청회를 거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토지 사용과 운송의 경우 통과 지역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뇌물에 약한 부처들이 이런 조항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허점과 공무원의 부패 수준을 모를 리 없는 업체들은 얄팍한 해결책에 기대는 듯하다. 한 예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시아그린에너지는 지난 8월3일 보도자료를 통해 “(7월29일) 중앙행정법원의 (석탄 운송) 중지 명령은 우리 회사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라고 운을 뗀 뒤, “우리는 펫차부리·촌부리·아유타야 지방에 이미 석탄 저장고와 공장이 있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객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10일, 이번에는 아유타야 지방에서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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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가장 더러운 에너지

1992년 북부 람빵 지방 매모마을에 들어선 석탄화력발전소가 유황가스 방출로 이후 10년간 약 120명의 주민 목숨을 앗아간 데서 보듯, 석탄의 파괴력은 묵인할 수준이 결코 아니다. 그날 이후 ‘반석탄’ 시위가 멈추지 않는 이유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과학자 제임스 한센은 석탄을 ‘지구 생물체에게 가장 위험한 물질’로, 석탄공장을 ‘죽음의 공장’으로 정의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석탄을 ‘가장 더러운 에너지’라 부른다. 하여 수십 명의 환경운동가와 수백 명의 주민 목숨을 앗아간 ‘검은 연기’와 ‘수은 독극물’이 멈추지 않는 한, 죽음의 공장에 대항한 공동체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뭇사콘(타이)= 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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