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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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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이 된 혁명가

중국 공산당 창당 90돌, ‘영웅’ 너머 ‘신’으로 추앙되는 마오쩌둥… 시장화와 경쟁 강화에 시달리는 중국 인민의 심리적 반작용이라는 해석
등록 2011-07-06 16:48 수정 2020-05-03 04:26
» 마오쩌둥은 1976년 9월9일 사망했다. 그로부터 35년이나 지난 지금, 중국인은 그를 혁명의 영웅으로서뿐만 아니라 온갖 미신의 왕으로 추앙하고 있다. 지난 6월 하순 마오의 고향인 중국 후난성의 한 가정집에 그의 제단이 모셔져 있다. 박현숙 제공

» 마오쩌둥은 1976년 9월9일 사망했다. 그로부터 35년이나 지난 지금, 중국인은 그를 혁명의 영웅으로서뿐만 아니라 온갖 미신의 왕으로 추앙하고 있다. 지난 6월 하순 마오의 고향인 중국 후난성의 한 가정집에 그의 제단이 모셔져 있다. 박현숙 제공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실타래를 일렬로 풀어놓은 것 같은 긴 ‘사람 줄’이 치렁치렁 늘어서 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달려와도 1시간 이상 줄 서는 건 기본이다. 노인에서부터 중·장년층, 처녀·총각, 꼬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목을 길게 뺀 채 하염없이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국에서 온 혁명 성지순례 인파

“마오 주석 생가를 보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왔는데도 이렇게 1시간씩 줄을 서고 있어요. 여기 오기 전에는 장시성에 있는 혁명 성지 징강산에 들렀어요. 지금 우리는 ‘붉은 여행’ 중이죠.”(줄 서 있는 한 여행객)

2011년 7월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0돌을 앞두고 후난성 샹탄시 사오산에 있는 마오쩌둥의 생가에는 하루에도 수천 명씩 참배객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 대륙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당의 혁명 성지를 순례하는 ‘붉은 여행단’의 일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유행한 ‘붉은 여행’은 올해 공산당 창당 90돌을 맞아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오 생가가 있는 후난성 사오산은 붉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애초에는 회사나 군부대, 공공기관 등에서 공산당 창당일이나 국경절 등을 전후해 우수 사원, 우수 당원을 선발해 ‘교육 차원’에서 시작된 붉은 여행 코스가 지금은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돼 거의 모든 여행사의 정규 패키지 상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부분 낙후된 오지에 위치해 황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천히 잊히던 과거의 혁명 성지들은 ‘붉은 상술’ 덕분에 주변 경제가 덩달아 달아오르고 있다. 마오 생가가 있는 사오산은 그 표본이다.

사오산에는 마오 생가 외에도 근처에 마오 동상 공원이 조성돼 있다. 마오 생전의 갖가지 기념물들을 전시하는 작은 마오 박물관과 같이 있는 마오 동상 공원은 마오 생가를 방문한 뒤 들르는 필수 코스다. 참배객들은 마오 동상 앞에 생화를 헌화한 뒤, 마치 불공을 드리듯 두 손을 합장한 채 동상 둘레를 한 바퀴 빙 돈다. 동상 입구에서 파는 생화는 가장 싼 것이 300위안(약 5만4천원) 정도다. 헌화용 생화를 500위안(약 10만5천원) 어치 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군인들이 함께 헌화 의식을 해주는 ‘VIP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상 참배객 중에는 분위기와 감정에 복받쳐 흐느끼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하얼빈에서 왔다는 한 중년 여성은 마오 동상 앞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마오 주석님 동상 앞에 서니까 가슴이 떨리고 만감이 교차하네요. 제가 얼마나 존경하고 숭앙하는 분인데요. 그분은 우리의 영웅이자 신입니다.”

마오 생가와 마오 동상 공원을 참배한 대부분의 붉은 여행객들은 생가 근처에 있는 ‘마오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 식당도 붉은 여행 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 ‘마오가 식당’의 창업주인 탕루이런(81) 할머니는 후난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이자 중국 내 식당 재벌 중 한 명이다. 마오의 이웃집에 살았던 탕 할머니는 1987년 자신의 집을 개조해 ‘마오가 식당’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후난 제일의 식당기업 재벌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단다.

‘마오’를 파는 중국 최대 식당 체인

“그때는 그냥 소박한 생각에서 식당을 차렸어. 마오 주석님 생가를 보려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노혁명가와 정부 지도자, 마오 주석님 숭배자에게 마오 주석님이 생전에 좋아하던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지. 주변에 변변한 식당이 없었거든.”

마오의 이웃집에 살았다는 ‘이력’과 그 사실에 착안해 마오를 ‘마케팅해서’ 식당을 차린 탕 할머니의 성공 신화는 중국인들의 입에 회자되는 유명한 상술 중 하나다. ‘국가 유명 브랜드’로 지정된 그의 식당은 전국 각지에 200개가 넘는 직영점과 체인점을 둔 중국 내 최대 식당기업이 되었다. 마오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다는 홍사오러우(삼겹살 조림)와 슈더우푸(삭힌 두부)는 이 식당의 대표 요리이자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마오 생가와 마오 동상 공원에서 ‘혁명정신’을 참배하고 온 여행객들은 마오가 식당에서 홍사오러우와 슈더우푸 등 마오가 즐겨 먹던 요리를 만끽하며 미각까지 ‘붉게’ 맛들이고 사오산을 떠난다. 공산당 창당 90돌을 맞은 올해 초부터 샤오샨의 마오가 식당은 넘쳐나는 붉은 여행객들을 치르느라 연일 전쟁 같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마오 주석님은 우리를 가난에서 해방시켰어. 그분은 영웅이야 영웅. 중국의 영웅이지.”

방 중앙에 마오의 대형 초상화를 걸어두고 마작을 즐기는 한 무리의 어르신들은 마오 사진을 가리키며 재차삼차 ‘영웅’을 강조한다.

마오의 고향인 후난에서는 마오의 사진과 동상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띈다. 아무 집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거실 중앙이나 방 한가운데에 마오의 사진이 ‘모셔져’ 있다. 아예 마오의 사진으로 벽 전체를 도배한 집도 있다. 상점이나 가게에서는 거의 필수적으로 마오 사진을 걸어둔다. 후난성 훙장고성 앞에서 만난 한 중년 남자는 “죽은 마오는 이제 중국인에게 전지전능한 만물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마오 주석님 사진을 걸어두면 마음이 든든할 뿐만 아니라 재물이며 복이 막 굴러 들어올 것 같아요. 집안의 나쁜 기운도 몰아내주고. 마오 주석님은 살아서는 중국을 해방시킨 영웅이었고, 죽어서는 우리 인민에게 재물과 복을 가져오는 신이 되었지요.”

생전에 미신과 돈을 가장 싫어했다는 마오가 들으면 아마 무덤에서 다시 쇼크사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오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인은 그를 혁명의 영웅으로서뿐만 아니라 온갖 미신의 왕으로 추앙하고 있다. 10년 뒤 공산당 창당 100돌을 맞을 즈음에는 어쩌면 중국에 ‘마오교’라는 새로운 종교단체가 생길지도 모른다. 사오산에서 만난 사회초년생 여성 첸찬(23)은 마오 숭배 열기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심리적 반작용’으로 해석한다.

마오, 현실의 불안 달래는 종교

“마오 숭배 열기가 잘 이해되지 않으세요? 전 아주 공감되는데. 지금 중국은 모든 면에서 안전감이 없는 사회예요. 마오 시대에는 개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어요. 그때는 ‘조국 건설’이라는 일치된 목표만이 존재했고, 당과 국가가 개인의 미래를 결정하고 책임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해요. 모든 것이 시장화되고 개인의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저만 해도 미래가 불안해 죽겠는걸요. 그래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마오 시대를 그리워하는지 몰라요. 마오를 정말 좋아하고 숭배해서라기보다 딱히 현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종교나 신앙 같은 게 없기 때문이에요. 마오를 재물신 같은 미신으로 섬긴다 한들 뭐 나쁠 게 있겠어요? 공산당을 뒤집자는 것도 아닌데….”

후난(중국)=글·사진 박현숙 중국 통신원 phschi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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