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2009년 가을 그곳을 방문했다. 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세르비아정교)의 탄압에 맞서 보스니아계(이슬람)·크로아티아계(가톨릭) 연합세력이 서로 죽이고 죽으며 10만 명 넘게 희생된 곳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라지만 우리나라의 군청 소재지 규모 남짓한 이곳에서 총탄 자국이 오롯한 전쟁의 상흔을 봤다. ‘도대체 인종과 종교가 무엇이기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수단은 인종과 종교적 차이를 둘러싼 오랜 남북 갈등 끝에 결국 갈라서는 길을 택했다. 2005년 1월 남북 수단 사이에 체결한 ‘포괄적 평화협정’(CPA)에 따라 지난 1월9~15일 남부 수단에서만 분리독립 찬반을 물었던 국민투표의 결과는 다음달 공식 발표된다. 남부 수단 자치정부는 90% 가까운 압도적 찬성을 예상하고 있다. 예정대로 오는 7월9일 독립국 출범 뒤 유엔에 가입하면, 동티모르(2002년)와 몬테네그로(2006년)에 이어 193번째 회원국이 되는 신생국이 탄생한다. 아프리카에서 54번째 나라다. 우리나라 11배 크기의 아프리카 최대 국가가 두 나라로 나뉘어, 수단 전체 인구 4400만 명 가운데 약 850만 명이 사는 남부 수단이 별개의 나라가 된다.
사라예보에서는 내전으로 10만 명이 희생됐지만, 수단 내전의 상처는 그 수십 배다. 1955~72년, 1983~2005년 두 차례의 내전에서 약 250만 명이 숨졌다. 그들은 왜 이렇게 골육상쟁을 치렀을까?
남북은 애초 많이 달랐다. 수단은 중동 아랍국가로 분류되지만, 아랍 및 아프리카 문명이 공존한다. 아랍권과 아프리카권의 경계에 위치해, 북부는 고대부터 이집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수단 주재 한국대사관도 외교통상부 아프리카과가 아니라 중동1과에서 관할한다. 이슬람 발현 뒤 홍해와 이집트를 통해 아랍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아랍·이슬람화가 진행됐다. 반면 남부는 아프리카 내륙지방과 교류가 많았다. 이슬람문화 형성 이전에 전래된 기독교나 토착신앙을 믿었던 토착 원주민들은 아랍인 이주에 따라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런 차이를 악화시킨 것은 유럽의 식민주의 분리통치다. 1880년대 유럽 제국들은 아프리카의 인종과 종족, 종교와 언어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땅을 나누고 국경선을 그렸다. 이른바 ‘아프리카를 위한 스크램블’이다. 영국이 1897년 수단을 점령한 뒤 영국·이집트 공동 통치체제를 이루면서 수단의 남북 간 이질성은 깊어졌다. 영국은 남부 수단에서 기독교와 영어를 전파하고 북부와는 관계를 최대한 막았다. 아랍어 교육도 금지했다. 반면 북부 수단에서는 이슬람 지도자와 손잡고 아랍·이슬람 정책을 지지했다. 현재 수니 무슬림이 다수인 북부 수단은 아랍어를 쓰지만 남부는 영어를 많이 쓴다. 영국은 북부와 남부를 분리해 남부를 동아프리카 연방(우간다·케냐 포함)으로 독립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영국·이집트 식민주의자들은 북부에 투자하면서도 수단 영토의 약 3분의 1인 남부는 방치했다. 분할통치론에 기반해 부족 간의 갈등을 조장한 것은 물론이다.
식민주의가 심화시킨 남북 갈등1956년 수단이 독립한 이후에도 분리통치의 병폐는 뿌리 깊었다. 독립 이전부터 고위직을 차지했던 북부의 아랍 군사정권은 수도 하르툼을 독점하면서 이슬람화 정책을 확대했다. 독립 당시 연방제 도입과 정교분리 헌법 채택 등이 논의됐으나, 북부가 남부의 자치권을 거부하고 아랍어와 이슬람문화를 강요하면서 국가 통합에 실패했고 내전의 한 원인이 됐다. 북부 엘리트들은 남부 수단인을 ‘2등 국민’으로 취급했고, 남부 수단인들에게 독립은 지배층이 영국에서 북부 수단인으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결국 이번 분리독립 투표는 북부 중심 발전과 남부의 차별과 소외에 대한 오랜 저항의 결과다. 남부의 풍부한 석유자원을 이용해 북부의 금고만 채웠으니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부와 오랜 내전을 벌였던 남부 수단인민해방군(SPLA)이 조직된 것도 독립 뒤 차별에 맞선 투쟁의 결과다. 특히 1989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이 집권 이후 이슬람 율법 등을 더욱 강력히 밀어붙이고 남부 독립운동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면서 반군 가담이 늘어나는 등 분쟁이 악화했다. 남부 수단인들은 이번 독립을 계기로 ‘남부에서 아랍인들과 이슬람주의를 영원히 없애버리자’며 축제 분위기다.
하지만 남부 수단이 꿈꿔온 독립을 이뤄도 축제가 계속되기보다는 ‘실패한 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달 초 남부 수단의 수도 주바를 방문한 특파원은 이렇게 전했다. “시내 중심가에서도 2층 이상 되는 건물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도심을 관통하는 간선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로 이어졌으며… 남부 수단의 시계는 50여 년 전에 멈춰버린 듯했다. …주민들은 파리가 날리는 움집에서 숯으로 익힌 고구마를 먹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수단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200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남부 수단만 따지만 훨씬 더 낮다. 지난 5년간 남부 수단 정부가 자치를 실시해왔지만, 행정 경험 등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남부 수단이 국가 기능을 갖추는 게 중·장기적 문제라면, 수단 남부와 북부 사이에 위치한 유전지대인 아비에이 귀속 문제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 1월7~9일 이 지역에서 남부 수단을 지지하는 딘카 부족과 북부 수단을 지지하는 미세리야 부족 간에 충돌이 빚어져 70여 명이 숨졌다. 북부 수단이 아비에이 지역의 귀속 문제를 빌미로 내전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남아있다. 분리독립 투표 이후 7월9일 남부 독립국가 출범 때까지 6개월 동안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하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동서 갈등도 남북 문제 못지않아
남부 수단이 독립하더라도 수단에 평화 대신 핏빛 내전의 위험이 도사리는 이유는 또 있다. 서부 다르푸르 때문이다.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학살로 최대 30만 명이 숨지고 27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유엔은 파악하고 있다. 사막화와 가뭄으로 방목지가 부족하자 사하라 지역 수단 북부의 아랍 유목민들이 다르푸르로 몰려들었고, 흑인 원주민과 아랍 유목민 사이에 갈등이 깊어진 결과다. 2003년 2월 흑인 원주민으로 구성된 수단해방군(SLA)과 정의평등운동(JEM)은 중앙정부가 자신들을 차별했다며 무장봉기했고, 아랍 무장세력 잔자위드는 수단 정부의 묵인하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청소’를 저질렀다. 남북이 갈라서도 이 지역의 동서 내전 위험은 현재진행형이다.
북부에 남는 기독교인들도 문제다. 2009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다르푸르 전쟁범죄 혐의로 제소돼 체포영장이 발부된 바시르가 남부 지역이 분리되면 북부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이슬람 율법’(샤리아) 체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북부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은 50만~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수단 남북은 갈라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분리가 아니라 공조가 관건이다. 석유 생산 세계 31위인 수단에는 6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매장 원유의 70%가 남부 지역에 있다. 하지만 파이프라인과 항구 등 석유 수출 시설은 북부에 있다. 석유 판매는 남부 수단 정부 수입의 98%에 이른다. 따라서 남부와 북부는 분리돼도 서로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분리독립하는 남부 수단의 이름으로 ‘나일공화국’ 등이 거론되지만 ‘새 수단’이나 ‘남수단’이 유력하다. ‘수단’이라는 딱지를 떼기 어려운 게 남부 수단의 현실이다. 지금의 사라예보가 그러하듯,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딛고 같이 살아가야 한다. 운명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참고 문헌
‘수단 남북 내전에 관한 연구’, 박찬기, , 2007
‘수단 분쟁과 평화협정에 관한 연구’, 유왕종,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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